시로밤바 - 1915 유가시마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나지윤 옮김 / 학고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한창 재밌게 봤던 애니매이션 '검정고무신'과 어린 유승호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집으로'가 생각나는 책이다.
제목의 뜻이 뭘까 싶어 보게 된 책이다.
초반에 하얀 벌레무리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나와서 웬 벌레지 했는데 알고보니 하얀 할머니라는 뜻이었다.
1915년이면 세계 정세가 한창 불안정한 시기였을 텐데 유가시마라는 시골은 세상 돌아가는건 나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 평화롭다.
이 잔잔하고 조금은 나른한 분위기의 마을에서 주인공 고사쿠의 성장스토리가 시작된다.

고사쿠의 가족관계도는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의 뺨을 후려 칠 수준이다.
이때까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첩을 둘 수 있는 모양이었나 보다.
고사쿠를 키운 할머니가 원래 고사쿠 증조외할아버지의 첩이었다가 어찌어찌 호적정리를 해서 고사쿠 엄마의 양어머니가 되었다.
아침드라마처럼 끈적끈적한 가족관계도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할머니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고사쿠에게 이보다 더 애지중지 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애정을 쏟아 붓는다는 거다.
할머니와 고사쿠의 소소한 일상들을 보면서 나도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어렸을 때 우리집에 한번 오시면 자꾸 베란다 청소하시고 집안 정리하시고 반찬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어 놓고 가려고 이것저것 해놓고 그러셨는데 지금은 몸이 불편하셔서 요양원에 계신다.
멀지 않은 곳에 계신데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내가 참 싸가지 없다 싶다.
생각난 김에 들려야겠다.

고사쿠의 일상을 보며 엄마가 어린시절에 대해 얘기해줬던 것도 떠올랐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외할아버지랑 같이 소끌고 풀뜯기러 갔다는 얘기,
친구들이랑 공기놀이 하면서 놀았던 얘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외삼촌을 그 때 당시 가끔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는 얘기,
등등 그 당시 시골 향기가 가득 담겨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고사쿠가 학교에서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기고 또 복잡한 관계의 가족들 사이에서 나름 눈치를 보고 또 유가시마를 떠나 도착한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조금씩 어른이 되가는 모습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한테 이 책을 보여주면 진짜 재밌게 읽을 것 같다.

일본 문학 소설 답게 특유의 잔잔함과 지루함이 섞여 있는 책이다.
너무 별 사건이 없어서 심하게 심심하기도 했지만 100년 전 일본의 시골모습을 이토록 상세하게 그린 작품이 또 어디있을까 싶다.
옛 일본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내 어린시절은 어땠었나 되돌아보는 시간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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