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더불어 - 신영복과의 대화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한 지도 벌써 한 해가 훌쩍 넘었군요. 선생님께서 20년 동안 옥고를 견디시며 옥중 생활 속에서 느끼셨던 소회를 담아 가족들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손잡고 더불어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들과의 대담 형식이라서 선생님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출생과 유년기의 성장과정, 대학에서 학생운동 1세대로서 경험했던 4·195·16,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0년 동안 옥고를 치르며 경험했던 수감사자들과의 인간적 교류와 사상의 완성,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강단에 오르신 선생님의 감회가 대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서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에서 감옥생활 20년은 나의 대학생활이었다는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형 생활에 무기수들이 더러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는데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그 인간관계 속에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긴 여행톨레랑스정신으로 더욱 깊이 있고 견고한 사상과 삶의 철학을 보여주신 선생님의 강인한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감옥에서의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에 문득 천상병 시인의 <귀천>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선생님께서 생의 철학으로 수차례 언급하신 여럿이 함께 가는 더불어 숲정신과 좌절이 아닌 희망을 위한 성찰에 비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삶도 아름다운 소풍이었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혹자나 극우보수 세력에서는 아직도 선생님을 위험인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와 조국 근대화를 앞세우며 적대성과 공포를 재생산해 내는 수구적 보수가 우리나라의 담론 지형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경제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계론적 패러다임 속에서의 공존과 평화의 원리를 주창하신 선생님의 지론이 언제쯤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조선시대 노론 지배세력의 역모프레임이 현대 보수세력의 종북프레임으로 이어져 인간적 유대는 사라지고 이념의 대립만 남은 정치현실을 볼 때면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선생님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평소에 동북아 정세와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최근 붉어진 사드 문제와 미국발 한반도 위기설에 남북문제가 가장 큰 사회적 화두가 되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네 번째 대담인 이라크 전쟁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발() 대안의 모색에 더욱 주목했었고 수차례 되짚어 보며 꼼꼼히 읽어 보았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원인과 결과를 보며 미국 중심의 이해관계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압력이 한반도 문제를 어떤 방향을 끌고 가려 하는지, 그에 맞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북한 핵문제와 통일 문제, 미국 MD편입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통해 큰 깨달음과 배움을 얻었습니다. 여지껏 통일에 방점을 두고 남북문제를 생각해 왔는데 통일은 차후의 문제이고 남과 북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장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남북 간의 원활한 교류를 통해 역사적 관점, 열린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민족의 미래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서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과 안목을 느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사회는 87체제, 97체제, 2007체제를 지나 새로운 시대와 담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새 시대에는 선생님의 관계론적 패러다임이 큰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소모적 대화가 주는 단순 유희에서 벗어나 진지한 자기 성찰을 통해 비판과 저항 정신이 담긴 하방연대로서의 공동체적 담론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죠. 나무가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작은 숲이 모여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더불어 숲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 달에 한 번 허락되는 집필의 자유시간, 가족들에게 보내는 엽서 한 장에 그간의 생각과 사상을 정리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없었다던 선생님의 집필에 대한 열정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 속에서도 생의 마지막 연기에 혼신을 다했던 여배우의 아름다운 열정에 오버랩 되어 다시 한 번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춘풍추상’, ‘남을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자기 자신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게를 더욱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라는 우리 시대의 지성, 당대의 스승이자 사표이신 신영복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대화와 공감으로 만들어지는 위대한 집단지성을 통해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더불어 숲을 반드시 후대의 저희가 이루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 푸르른 숲 속에서 선생님과 함께 당신의 애창곡 시냇물을 목놓아 부르고 싶습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신영복 선생님을 추모하며 당신께서 남기신 <손잡고 더불어>를 읽고 감사의 편지를 남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