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체론 - 천황제 속에 담긴 일본의 허구
시라이 사토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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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은 어떻게 해서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았을까? 왜 천황제가 아직도 유지되는 것일까? 천황제 유지에 적용된 논리는 과연 무엇일까?

"국체론"이라는 책은 이런 저의 의문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읽게 된 책입니다. 책의 저자인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의 정치학자로, "영속 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이라는 다른 저서에서 일본이 아직도 대미 종속 하에 놓여있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본 저서에서, 영속 패전론을 '국체(國體)'라는 개념을 이용해 좀 더 역사적인 맥락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즉,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의 일본이 모두 국체의 형성-안정-쇠퇴의 3단계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천황과 국민과의 관계에 따른 오사와 마사치의 시대 구분을 인용해 이른바 전전 레짐이라는 '국체'를 묘사합니다. 즉 국체의 형성기는 '천황의 국민', 상대적 안정기는 '천황 없는 국민', 쇠퇴기는 '국민의 천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체의 시기 구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저자는 '국체=천황'이라는 단순 도식화를 한다면 전후의 국체는 다름아닌 미국이며, '전후 레짐' 혹은 대미 종속 레짐 또한 전전 레짐과 같은 방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저자는 역사적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두 '국체'를 비교하고 이론을 전개해 나갑니다.

저자에 따르면 당초에 국체는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었다가, 근대 초기에 '신으로부터 유래된 천황가라는 왕조가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일관되게 통치하고 있는,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본국의 존재 방식'이라는 관념으로 정리됩니다. '천황이 국가의 통치 대권을 쥐고 있는 체제'와 같은 표면적인 번역은 포츠담 선언의 수락 조건을 '국체호지(國體護持)'로 내걸면서 국체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미이며, 실제로 일본인이 받아들이는 국체의 의미는 상당히 달랐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그런데 '만세일계의 통치자'로 상정된 천황과 국체라는 개념은 후지와라 섭관가나 막부의 정이대장군과 같은 역사적 사실과는 괴리가 있었고, 이것이 '정체(政體)'와 '국체'의 분리로 이어졌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메이지 헌법이 내용상 입헌군주제 요소와 '제정일치적'인 절대군주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과도 연결되며, 후대로 갈수록 헌법 해석이 전자보다 후자에 무게가 실리게 된 것도 이런 모순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이런 모순이 나타나게 된 것은, 근대화를 추구하는 시대적인 분위기와 함께 일본 통합의 '상징'으로 천황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결합하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무튼 헌법 제정과 교육칙어 반포를 통해 '천황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국가에 대한 의무만을 강요하는 전전 레짐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한 일본의 열강 진입과 불평등 조약 개정 등 목표한 바를 달성하면서 점차 존재 의미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천황제 폐지를 외친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제외하면, 일본 국민들이 천황의 신성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고 이것이 '국민의 천황'으로의 개념이 등장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 '국민의 천황'이라는 개념을 처음 이끌어낸 기타 잇키는 저서 "국체론 및 순정 사회주의"에서 '천황기관설'을 주장하면서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민주 국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그의 주장이 황도파 장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그 결과 1936년 2.26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잘 알려져있듯이 2.26 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저자에 따르면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신성한 천황'의 독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상의 모순을 실패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로 '천황'의 뜻을 앞세우는 전쟁이 이어졌고 끝내 전전 레짐은 파멸을 맞게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전개가 전후에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논지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일본인의 저항을 무마하고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고 유지시킴으로써, 전전 '국체'의 3단계 전개 과정을 새롭게 수정된 전후 '국체'가 그대로 뒤따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의 논리에 따르지면 전전 레짐에서 국체의 중심이 천황이었다면, 전후 레짐에서 국체의 중심은 미국이며 현 일본의 친미 보수파는 전전의 천황파 파시스트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존재들입니다. 즉, 미국이 천황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극우파들의 지지 대상도 천황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됩니다. 또한 점령 초기에 쫓겨났던 이 극우세력들이 공산주의의 위협 앞에서 미국에 의해 다시 기용되었고, 이후 정치적으로 대미 종속이 심화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패전에 대한 책임의식은 '일본의 미국의 친구'라는 구호 속에 의도적으로 잊혔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입니다.

한편 저자는 패전 이후 일본이 철저히 미국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면서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얻었지만, 동서 냉전의 붕괴 등 대미 종속의 의의가 없어졌음에도 대미 종속 체제는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마치 전전 레짐이 목표를 잃자 천황의 신성함을 앞세워 폭주했던 것처럼, 현재 일본의 보수파도 친미를 운운하며 대미 종속 체제 수호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아베 내각의 집단적 자위권 법안 통과와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언급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일본의 독자적인 권한 행사가 아니라 중국과 북한에 맞서 일본을 방패막이로 세우려는 미국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의 보수파는 미국의 뜻을 전전의 천황처럼 신성한 것으로 받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입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지적은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천황제가 유지될 수 있었는지라는 질문 외에도 천황제의 존속 여부 문제,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 미일 간의 밀월 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1945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체제가 바뀌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식에 대치되는 주장을 바탕으로 책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자의 논지 전개에서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후 체제의 전개 과정을 전전 체제의 그것과 유사하게 도식화하려다 보니, 1990년대 이후의 역사를 무리하게 '쇠퇴기'로 단정하는 듯한 점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근거가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20년/30년'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도쿄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중 하나로 꼽히는 점이라든지 일본의 선진국 지위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 시점을 체제의 쇠퇴기로 꼽는 것은 조금 무리한 논리 전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와 연결해서 경제 개념에 대해 저자가 약간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레이건 집권 1기 미 연준의 통화정책을 미국 정부의 의도가 들어간 것으로 잘못 서술하거나, 세계화 기조에 따른 미국의 요구(이를테면 불공정 무역관행 개선)를 '대미 종속 레짐'에 따른 미국의 견제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로 볼 때 저자는 순수한 경제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동서 냉전의 붕괴로 '대미 종속 레짐'의 존재 이유가 희미해졌으며, 아베 내각에서 진행되었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과 개헌 논의에 대해 '친미 보수세력이 미국의 요구에 맞춰 움직인 것'일 뿐이며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는 대미 종속 레짐을 공고히 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날로 커져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그렇게 옳은 분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 개헌 움직임에 대해 '일본의 지위를 높이려는 행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데, 저 또한 이 부분은 일본이 미국의 보조에 맞춰 움직이면서 운신의 폭을 넓히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단지 미국이 시켜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또한 미국의 압박이 북핵 위기를 불러온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뒤바뀐 듯한 주장을 펴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친미 기조를 이어나가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친미 정책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태도로 보아 저자는 당면한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단지 미국 때문에 일본이 끌려 들어간 것이지 원래 일본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을 전전의 파시스트와 동치하면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를 드러내서, 논리의 정교함을 까먹는 듯한 감상도 들었습니다. 특히 일본 보수세력의 친미 성향에 대해 우둔하다느니 어리석다느니 하는 격렬한 언사를 내뱉으며 비난하는 모습이 그렇게 바람직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책으로 출간한 만큼 표현을 좀 더 정제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런 단점들을 차치하고라도, 이 책은 '천황제'라는 특이한 요소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돋보였습니다. 또한 저자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작성해서, 읽는 데에도 크게 부담이 없었습니다. 한국인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역자가 풍부한 역주를 달아놓아서 더욱 좋았습니다. 일본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7643)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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