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어릴적 아버지가 너무 어렵기만 하고 불편하면 이런생각을 했어
'나는 내 아이에게 무조건 따듰한 품을 주어야지'하는 생각 말이야.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나니까 아이를 갖는게, 부모가 된다는것이
너무 두려웠다. 보고 배운다던데 나도 똑같이 그런엄마가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사실, 더 큰 공포는 남편때문에 생겼지.
한국에서 남편을 만났더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좀 더 빨리 알아차리고
결혼을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외국에서 만난게 잘못이었던 것 같아.
p. 296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꽤 지난것 같은데, 당시 친했던 친구들 3명과 만나면

너무나도 판이하게 인생이 갈려있어서 열등감도 느껴지고,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있는듯한 생각이 절로 든다. 지성과 능력을 고루 갖추고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명성을 갖고 있는 그녀가 돌연 소설을 쓰게된 계기가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게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월에 책의 출간소식을

듣고 반가우면서도 그녀의 첫소설은 과연 어떠한 내용일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던것도 사실이다.

책을 받아들고, 여섯명의 중년 여성들의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통해 그녀들의

인생의 성공과 단절, 욕망, 허영심, 억압, 고통, 결핍을 골고루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인생의 굴곡이 있겠지만 죽음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하정의 죽음은 그저 안타깝고

한국사회에서 그녀들이 겪어야만 했던 암울했던 일들이 그저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호소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은건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예측불가의 불행이 일으키는 삶의 반전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어 자연스러운 대화체로 매끄럽게

내용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의 주체성와 정체성도 화두로 삼아서인지

더욱 센세이션하면서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크게 공감하는데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소설을 쓰게된 계기가 자신의 죽마고우 친구의 죽음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났던 95년 당시 난 중학생이였는데, 굉장히 혐오스러운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피해자를 친구로 둔 작가의 심정이 어땠을지 참으로 참담하고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언변에만 능통할 줄 알았던 그녀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여 남다른 필력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전달 하기까지 얼마나 큰 심사숙고를 했을지 이 책을 읽으면 고스란히 그 조심성이 느껴진다.

글과 말의 차이점은 아마도 어마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글은 유연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읽는 내내 필자의 강단을 자연스레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민수, 수경, 승미, 문희, 미연, 하정이라는

여섯명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그녀들의 삶이 순탄하거나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이 여섯명의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속에서 내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고, 나와 같은생각을 갖고 있는 승미의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아버지에대한 분노가 얼마나 컸으면 결혼도 잘못된 선택으로 치달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매우 쿨하면서 당찬 모습으로 다시 재기하고 민수에게 매우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얼굴에 난 흉터보다 깊숙히 패인 마음의 상처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극복하며 살고있는 승미의 모습에서

또다른 내 미래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짠했다.

인생을 한가지 시선으로 바라볼순 없지만, 체육시간에 물구나무를 서지 못해 서로 친해진 이 친구들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하다. 민수가 자신을 제외한 다섯명이

몰래 미팅하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 때문에 그들과 인연을 27년간이나 닫고 살아간다. 그러던중 수경에게서

하정의 의문의 죽음에 관한 연락을 받고, 자살/타살 여부를 검사하기 위한 부검 공방이 벌어지고,

파리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미연은 하정에게서 이메일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버지를 피해 외국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편지의 내용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위아래가 바뀌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속에서 두렵기도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안타까움을 더욱 증진시켰다.

재벌가 사모님으로 살아온 수경이 남편의 외도사실앞에서도 당당하면 한달 이상을 이혼공방을 벌이며

살고있는 이야기, 와인들을 마시며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고있는 모습에서 안타까운 죽음으로

궁금증을 자아냈던 하정의 죽음의 퍼즐들을 서서히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민수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이 여섯명을 보고있자니 진짜 이 이야기중 하정이만 실제 인물일까? 다른 캐릭터도

백지연 작가님의 또다른 실존하는 친구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어,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

自繩自縛 이라는 말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요약해놓은 사자성어가 아닌가 싶다.

달걀속에서 힘겹게 알을 깨면서 나왔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민수, 수경, 승미, 문희, 미연, 하정이라는 캐릭터들을 우리 한국에서 어렵지않게 볼수있는

중년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겪고, 감당해야 하는일들을 어찌나도 힘겨워

보이고, 공감이 가던지... 말을 이어갈 때마다 작가의 회고록같은 느낌도 들고해서 가슴이

아련해지기까지했다. 자신의 지난날을 공개하고, 죽은 친구가 실제 자신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이 소설의 하정이라는 캐릭터로 탄생시키기 까지의 마음고생이 보였다.

상상속 인물인 민수가 마치 작가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현재 자신있게 당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님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출간될 두번째 소설을 기대해보고 싶다.

실제 있었던 일도 좋고, 살면서 겪었던 일중에 가장 크나큰 시련의 이야기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인터뷰의 형식이나 상대방과의 공감을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었고, 책의 구성이나 편집이 매우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게 읽어볼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앞으로 더욱 잘 살기 위한 복지정책과

제도가 하루빨리 마련되길 기다려본다. 소설속에 명렬한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상이 신랄하게

나와있어 보는 여성들로 하여금 다시금 오기를 아로새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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