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건축 -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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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갓 입학한 시절, 막 보급되기 시작한 386 컴퓨터를 통해 심씨티 (SimCity)’라는 게임을 즐긴 적이 있다. 네모 반듯한 공간 위에 도시를 건설해야 하는데, 집과 도로를 짓고, 적당한 위치에 공원, 경찰서와 소방서가 있어야 하고, 인구가 늘어나면 건물, 주택, 도로 등을 증축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재가 발생하거나, 범죄가 증가하고, 교통체증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다시 도시 인구의 감소와 세수의 감소로 이어져 도시를 건설할 사이버 머니(cyber money)를 잃게 된다. 계속해서 게임을 이어나가고 도시를 확장하려면 유기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 시절 잠시 접해 본 이 게임은 내게는 큰 흥미를 끌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현실과 너무도 흡사한 생존과 경쟁, 경영의 논리를 게임에 그대로 적용했던 탓에 내게는 게임 자체가 일이 되고 힘겹게 느껴졌던 듯 하다. 그런데 이십 여 년이 흐른 지금 김성홍 교수님의 길모퉁이 건축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왜 하필 이 재미없는 심씨티라는 게임이었을까?

 

그동안 해외 출장이라는 명목 하에 전 세계 여러 나라와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여 보았지만, 문화재나 자연 경관에 치중한 관광이었지, 그 도시의 특색이나 건물의 배치 그리고 그 안에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관광지 중 하나인 작은 네덜란드 마을 솔뱅(Solvang)을 아내와 함께 가장 별 볼일 없었던 방문지 중 하나로 꼽아왔던 것 같다. 미국 방문객에게 관광지로 알려진 로스엔젤레스에서 잠시 살았던 탓에, 도시는 삶의 공간이라는 기능적 역할 외의 의미를 두지 않았던 연유인 듯 하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의 마천루에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방문객에게는 이채롭게 보이는 이국적인 거리들도 결국에는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민생고를 해결하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늘 뇌리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 때문에 무언가 다른 것을 보려면 우리 나라에서 보지 못한 수려한 자연이나, 오래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나 문화재 정도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은 건축이라는 인류가 태곳적부터 고민하고 발전시켜온 보편적(?) 지식과 상식으로부터 현대 사회의 도시 건축이라는 논제에 대해 일반인이자 건축에 문외한인 내게 새로운 사고의 폭과 새로운 문화의 측면(Phase)을 제시해 주었다. 그동안 전자공학도인 필자에게 도시 건축은 수학 공식과 같은 법규와 기계적 설계에 의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의 일년 여 미국 생활과 서울과 수도권에 주거를 두었던 덕에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동차 접근성에 의존한 위성도시와 고층 건축에 의한 수직화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용이하였다. 김성홍 교수님은 자동차 접근형 위성도시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고층형 수직 건축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 입장(물론 고층 건물의 지상부를 오픈(open)하는, 길과 접목된 형태를 전제 조건으로 걸고 결론적으로는 중간 건축을 이상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셨으나)으로 집필을 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필자의 생각을 밝히면 둘 다 도시 건축에 불가피(?)하나, 피할 수 있다면 지양해야 할 도시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현대 도시는 인구 밀도가 낮은 자동차 접근형 위성도시나 밀집형 고층 건축에 의한 마천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난관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는 점점 더 커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큰 도시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도시 계획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도시는 외부로 또는 높은 곳으로 성장해 나간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다. 도시의 성장 또한 유기체와 같기 때문에 아픈 곳에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좋은 것에 대해 반응하는 성장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밀집되고 비대해지는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는 경고등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를 기능적으로 분할하여 여러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다시 한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탓에 특이한(?) 건축 설계나 그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책에서도 몇몇 제시한 Re-modeling Re-novation에 대해서는 소박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기업체 연구소 재직시절 러시아 모스코바 소재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1년에 두 차례 정도씩 모스코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러시아는 모스코바와 비 모스코바로 나눈다고 말할 정도로 모스코바의 소득 수준과 물가 수준은 세계 최고라 할 만 하다. 주택 임대료가 뉴욕 맨하탄 보다 비싸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여느 개발도상국 수도 정도의 청결함과 치안, 교통 수준을 갖고 있었다. 특히 교통은 솔직히 실망스러운 정도였다. 택시의 경우, 세계 최고를 자처하는 서울의 택시 운전사는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의 초고속 골목 운전을 구사한다. 이유인 즉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와 같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스코바는 환형(環形)도시인데, 총 일곱 개의 환이 있고, 그 중심의 1환은 크레믈린이고, 최 외각의 7환을 한바퀴 도는 데는 차로 여러 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서 몇(?) 환 이내의 모든 건물들이 시에 의해서 관리되고 개보수도 시의 엄격한 관리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한다. 때문에 도로를 만들기 위해 건물을 부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상이 되어 있지만 말이다. 비단 오래되고 가치 있는 건축물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도시 건축에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데 너무 익숙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방법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이어서 일까? 내부는 생활에 편리한 인테리어와 엘리베이터로 단장을 하고, 외부는 옛 모습을 보존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을 가미하는 것으로 도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도시의 유기체적 성장을 반드시 소멸(extinction)과 창조(creation)를 통해서만 진행시켜야 하는지는 분명 되새겨 볼 일이다.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중간 건축중층 주상복합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필자도 주상복합 형태의 주거 공간이 우리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든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의 이면 도로를 보행과 차량이 공존하는 중층 정도의 건축 밀도를 갖는 도시 환경 (아마도 유럽의 오래된 도시 이면도로가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이 넓은 자동자 위주의 도로와 마천루 이면에 사람의 휴식과 같은 도시 모습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들 건물을 리모델링과 리노베이션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필자는 얼마 전 아틀란타 인근의 소도시인 메디슨(Medison)을 거쳐 사바나(Savannah)를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왔다. 분명 이 책을 접하기 전과는 다른 시선과 시각을 가지고 도시를 둘러보게 되었다. 물론 이 도시들이 갖는 미국 도시의 역사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분명 필자의 눈에 도시의 건축물들이 이 자리에 있고 이런 모습으로 있는지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되었다. 강북의 일반 주택이 많았던 지역의 저층 아파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필자는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유럽형의 골목이 주는 편안함과 접근성에 매력을 느낀다. 이들 두 도시 역시 차로 이동하며 보기에는 충분치 않은 모습이었다. 유럽의 고()도시를 둘러 보듯 천천히(slow),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걸어야 한다. 마치 심씨티의 게임자가 게임의 완성을 위해 도시의 설계와 운영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 왔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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