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과학과 신앙에 얽힌 해묵은 편견 걷어 내기
우종학 지음 / IVP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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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우종학, Ivp>

Ⅰ 들어가며
Ⅰ-1 성경과 과학
재작년 SNS 상에서 열띤 논쟁이 이루어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서울대학교 천체물리학 교수이신 우종학 교수님과 창조과학선교회의 회장이신 이재만 선교사님의 창조과학에 대한 논쟁이었다. 사건의 발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결과는 확실하다. 하지만 성경과 과학이라는 너무나도 상이한(학문의 관점에서) 두 토픽 모두에 대해 알지 못하면 감히 끼어들 수 없었다. 이 논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만 지식이 부족한 나 역시 그저 한 발자국 물러나 휴대폰만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Ⅰ-2 나는 창조과학선교사를 꿈꾸었.었.다!
나는 약 7년 전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일 때, 이재만 선교사님께서 진행하는 창조과학탐사여행에 참여한 바 있다. 어려서 누구든 멋져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엄청난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사역을 하시는 이재만 선교사님께 매료되었었다. 그래서 나도 창조과학선교사가 될 것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펴낸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올라온 창조과학 강의를 들었으며, 국내에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는 창조과학 강의를 듣기 위해 여러 교회를 찾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미래가 점차 바뀌게 되는 사건들이 찾아왔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4월 말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모 교회에 다니던 나는 청년부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참가 후 주어진 자유 시간에 청년부 회장님과 나의 은사이시며 현 스승님이신 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맹신하고 확신하고 있던 창조과학의 문제점들에 대해 들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창조과학을 향한 나의 시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던 나를 완전히 바뀌게 해주신 분은 우종학 교수님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지 교수님과 한 번도 인사해본 적 없지만, 교수님 당신의 여러 글들을 통해 창조과학에 관한 나의 스탠스가 정리되었음은 확실하다. 진화 창조론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남지 않도록 확신시켜 준 텍스트가 바로 본 서적이 아닐까 사료된다.

Ⅱ 독자들을 위한 배려
Ⅱ-1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
본서, 약칭으로 ‘무크따’는 진화 창조론의 입문서로써 과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 그 근거 중 하나는 저자가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했다는 것이다.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다른 인물(한 교수)의 심리보다는 특정 인물(박 기자)의 느낌이 중심을 이루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두 명이다. 한 때 주일학교 선생과 학생의 관계였던, 한국의 어느 대학 교수인 ‘한 교수’와 교회를 떠나고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과학부의 신입 기자인 ‘박 기자’가 바로 그들이다. 본서의 시작은 교회를 떠난 박 기자의 현 실정과 교회에 대한 그의 미련에 대한 서술이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한 교수와의 대담 후 느끼는 감정이 자세히 나타나 있으며, 한 교수와의 긴 대화 후 신앙과 과학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성경책을 사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막이 내린다.
보통 입문서라고 하면 특정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준다. 물론 더 자세히 연구한 내용들을 알려주는 책들보다야 상대적으로 쉽겠다만, 그 분야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입문서 또한 어렵기는 매한가지이다. 저자는 입문하는 분야의 지식에 대한 부담감을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덜어주었다. 박 기자의 고민이 조금 조금씩 해결되는 과정 가운데 그가 느끼는 감정들을 서술함으로써 딱딱한 입문서를 읽기보다는,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인상을 주어 책의 마지막 장까지 가볍게 다다를 수 있다.

Ⅱ-2 가상 대담
또 본서의 서술 방식 가운데 인상 깊은 점은 전문적인 지식의 나열이 아닌 ‘가상 대담’이라는 서술을 택했다는 것이다. 입문서라고 하면, 책의 저자가 전문 지식을 근거와 예시를 통해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가상 대담이라는 서술 방식을 이용하여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의 사용과 더불어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흥미를 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상 대담이라는 것을 책의 표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첫 장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박 기자와 한 교수가 실존 인물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책을 한 장 한 장 읽는 중에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던 것이, 한 교수는 저자인 우종학 교수님이고 이 책은 우종학 교수님의 실제 경험담이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대화를 일일이 녹취하지 않고서는 대화 내용을 전부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한 교수의 ‘한’이란 박 기자처럼 성씨일 것이며 우 교수가 아니라 ‘한’ 교수이기에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실제 대담이 아니라 가상의 대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가상 대담이라는 서술 방식인 것을 책의 표지뿐 아니라 책의 서론에도 기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본서가 제한적 작가 시점이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설의 형식을 띈다는 것까지 파악하여, 박 기자와 한 교수가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더 큰 유익이 있다고 본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쉽게 책 장을 넘기게 하는 것, 이것이 저자의 빅 픽쳐가 아니었을까?

Ⅱ-3 각주 처리
논문이나 에세이가 어려운 이유는 아마 주장들에 달린 각주 때문일 것이다. 한 페이지 중에 각주가 반절 이상 되는 페이지는 심리적으로 두려울 때도 많다. 먼저 각주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각주란 인용하는 책들을 명시함으로써 인용된 내용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타인의 생각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일차적으로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권위 있는 분들의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글에 신뢰와 권위를 가져다준다.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는 모두 각주를 다는 것, 이것은 글을 쓸 때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무크따에는 각주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인용하는 책을 명시하긴 했지만 각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많은 강의를 하시고 많은 글을 쓰시는 분께서 각주를 넣지 않았다니... 책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다. 저자는 어떤 생각으로 각주를 달지 않은 것인가?
그 답은 마지막 부록에서 제시되었다.

책이 너무 어렵게 보여 독자를 제한할 것 같아 책에 인용된 여러 내용들에 대해 일일이
각주를 달지 않았음을 밝혀 둔다.(255p)

각주의 생략은 입문서조차 어려워할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배려이다. 이를 통해 무크따의 독자층은 한 층 더 넓어지며 그들의 이해도는 한 층 더 향상한다.

Ⅲ 나가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박 기자의 내면이 서술된다. 한 교수와 그리도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 박 기자의 모든 가려움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기독교에 관한 의문과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철옹성 같이 닫혀 있던 그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채워지지 않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갈망(p25)과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꺼지지 않는 불씨 같은 기억(p24)들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서점에 들려 성경책을 구입하는 장면이 엔딩씬인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가상인물인 박 기자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닫혔던 문을 열면 함께 먹겠다 하신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비추어 보건대, 박 기자는 매 주일이 되면 서점에서 샀던 성경책을 들고 예배를 드리러 갔을 것이다.
이 책은 한 교수를 위한 책이 아니다. 바로 박 기자를 위한 책이다. 과학과 신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지 못하여 교회를 떠난 자들, 교회에서 배우는 창조와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 사이에서 발을 어디에 대야 할지 모르는 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들이 무크따를 펼친다면 무신론자였던 박 기자가 다시 한 번 성경을 손에 쥐는 것처럼 낙원에 대한 갈망을 다시 한 번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가지던 편견을 벗어버리고 자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교수가 카페에서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커피 한 잔 하러 같이 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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