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
권김현영 엮음, 권김현영.루인.엄기호 외 지음 / 교양인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특히 식민지 남성성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투리드 트윈링 노트 - 작은 아씨들

평점 :
절판


내지 질이 좋아서 연필로 쓰기 참 좋네요. 하나 사고 또 샀어요.

저렴하게 적당한 노트를 쓸 수 있어서 좋네요. 

종이가 너무 미끄럽지도 않고 너무 거칠지도 않고.

반듯이 깎은 연필로 쓰시기를 추천해요.


줄 간격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줄 인쇄 색상이 옅은것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춘기 1
이진경 지음 / 유어마인드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참 매력적이에요. 중간중간 깊게 박히는 대사들도 좋구요. 다음권이 기다려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사회성을 학습하는 것에서의 성별권력의 차이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에 대한 고민 

 

<편의점 인간>을 읽기로 한 것은 최근에 독서 경향이 페미니즘에 너무 치우쳤던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쇼핑몰에 떠 있던 광고 페이지를 보고 읽게 된것이 계기였다. 야쿠타가와상 수상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끌린 것도 그렇지만 광고카피의 내용을 보니 소설을 꼭 읽고 싶어졌다. <편의점 인간>의 저자 무라타 사야카는 실제로 18년 동안 편의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상을 하러 간 날 또한 편의점 일을 마치고 행사장에 왔다고 한다. 18년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단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불안한 것도 있으나 일단은 한 사람이 18년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가만두지를 않을 테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페미니즘 도서를 너무 많이 읽은 것 같아서 였는데 소설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편의점 인간>을 올해의 페미니즘 소설로 꼽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본 이야기에 앞서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전체 줄거리는 이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후루쿠라 게이코다. 서른여섯인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18년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후루쿠라는 공원에서 죽은 새를 보고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빠의 안주를 만들면 되겠다고 좋아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녀의 엄마와 주변 사람들은 경악한다. 그 후에도 그녀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가족들은 그녀의 성격이 언제쯤 '고쳐질까'근심한다. 그녀는 그런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런 자신을 숨기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조용히 티가 나지 않게 보낸다. 그러던 중 그녀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되고 그것이 계속되어 지금은 직업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녀가 처음 편의점 일을 시작할때는 그녀의 그런 행동에 안심했던 사람들이, 그녀가 서른 중반이 넘어서도 편의점에서 일을 계속하자 그녀를 다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녀는 끊임 없이 '정상인'처럼 보이려고 노력한다. 같이 일하는 다른 점원들의 말투를 흉내내기도 하고 옷차림이나 화장품도 비슷한 것을 구입한다. 그럼에도 그녀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계속된다. 그녀가 '연애'와 '결혼'을 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이상하게 보기 시작하자 후루쿠라는 편의점 일을 잠시 하다 그만둔(편의점에 온 여자 손님의 연락처를 알아내 스토커짓을 하다 짤린) 시라하와 접촉한다. 그녀는 시라하에게 자신이 정상인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자신의 애인 흉내를 내달라고 한다. 실제로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남자친구가 있자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매우 기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그 다음엔 시라하와 결혼 문제로 사람들은 그녀를 또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시라하가 남자친구라는 것이 편의점에 알려진 후로 편의점에서 더는 일할 수 없게 되어 편의점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편의점을 잊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편의점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고 해야할일들이 생각난다, 편의점의 소리들이 환청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녀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집을 나온 어느날 편의점에 들어가 전에 편의점에 들어와 직원인 척 난동을 부린 한 남자 손님과 같은 행동을 하며 자신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는 권력

같은 듯 다른 두 인간. 후루쿠라와 시라하

 

 한국 사회에서 나는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을까?

'히키코모리' 혹은 '아웃사이더'는 보통 사회에서 외면 받고 차별당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히키코모리는 집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것에 가까우니 후루쿠라와 시라하는 히키코모리라기 보다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아웃사이더를 떠올릴때 떠오르는 인상은 어떤가? 지저분하고 앞머리로 얼굴을 다 가린 '20대나 30대의 매력없는 남성의 모습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왜 아웃사이더를 생각할때 여자가 먼저 생각나지는 않는걸까? 매체를 봐도 여자가 아웃사이더로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자가 남자보다 사회성이 발달했다.', '언어 능력이 좋아 말을 더 잘한다.'는 말은 흔히들 많이 쓰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 말대로 여성과 남성의 특징이 선천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상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성이 언어능력이 발달했다면 여성이 언어능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보면 '사회성이 좋고 말을 잘하는것이 기대되는'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릴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MC나 뉴스의 메인 아나운서는 자리는 이상하게도 모두들 남자들이 독식하고 있다. 

 내 경우에는 '걸음걸이가 씩씩하다'는 식으로 내 걸음걸이에 대한 교정을 자주 요구 받고는 한다. 농담인 것처럼 말을 건네지만 그 속에 '여자인 너의 걸음걸이는 조신해야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너는 걸음걸이를 고쳐야한다.'는 메세지가 있는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걸음걸이가 더 자유분방한 다른 남성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걸을 때 다리를 안쪽으로 모아 걸으라거나, 의자에 앉을 때 다리를 오무리고 앉으라는 소리는 양성이 똑같이 듣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보통 여성의 행동을 규제할때 쓰는 말이다. 여성은 바지를 입었을때에도 다리를 모아 앉으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래의 소설 본문을 보자,

 

편의점 점원으로 ‘태어나기’ 전의 일은 뭔가 어렴풋해서 선명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교외 주택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평범하게 사랑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이는 아이였다.

예를 들면 유치원 시절, 한번은 공원에 새가 죽어 있었다. 어디선가 기르던 새였을 것이다. 색이 파랗고 아름다운 작은 새였다. 맥없이 목을 떨군 채 눈을 감고 있는 새를 둘러싸고 다른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어떡하면 좋아?”한 여자애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재빨리 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벤치에서 잡담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무슨 일이니, 게이코? 어머나, 작은 새가……! 어디서 날아왔을까……! 불쌍해라. 무덤을 만들어줄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말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이거 먹자”하고 말했다.

“뭐라고?”

“아빠가 꼬치구이를 좋아하니까 오늘 이거 구워 먹자.”

잘 들리지 않았나 하고 확실한 발음으로 되풀이하자 어머니는 흠칫 놀랐고, 옆에 있던 다른 아이의 어머니도 놀랐는지, 눈과 콧구멍과 입이 일제히 딱 벌어졌다. 이상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웃는 것처럼 되었지만, 그 아줌마가 내 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마리로는 부족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잡아올까?”

가까이에서 나란히 걸어 다니는 참새 두세 마리 쪽으로 흘끗 눈길을 주자, 겨우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게이코!” 하고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새는 무덤을 만들어서 묻어주자꾸나. 자, 봐라. 모두 울고 있잖니. 친구가 죽어서 섭섭한 거야. 불쌍하지?”

“왜? 오랜만에 죽었는데.”

내 의문에 어머니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기꺼이 작은 새를 먹고 있는 장면밖에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새 꼬치구이를 좋아했고, 나와 여동생은 닭튀김을 무척 좋아했다. 공원에는 새가 잔뜩 있으니까 많이 잡아서 집에 가져가면 좋은데, 왜 먹지 않고 묻어버리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이 새는 작고 귀엽지? 저쪽에 무덤을 만들고, 모두 함께 꽃을 바치자꾸나”하고 열심히 말했고, 결국 그 말대로 되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작은 새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흐느껴 울며 그 주위에 핀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네. 분명 작은 새도 기뻐할 거야”라고 말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들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다.

작은 새는 ‘출입금지’라고 적힌 나무 울타리 안쪽에다 판 구덩이에 묻혔다. 누군가가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아이스크림 막대기가 흙 위에 꽂히고, 꽃 시체가 듬뿍 바쳐졌다. “자, 게이코, 어떠니? 슬프고 불쌍하지.” 어머니는 몇 번이나 나에게 들리도록 속삭였지만,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13쪽)

 

 

 어린 아이가 죽은 새를 발견했을때 어린아이가 보일것이라고 기대되는 정상적인 행동은 새의 죽음에 놀라고 슬퍼하는 일이다. 하지만 후루쿠라는 슬퍼하기는 커녕 먹을 수 있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후루쿠라의 반응에 후루쿠라의 엄마는 약간의 공포까지 느낀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경우의 반응을 '남자아이'가 보였다면 어땠을까? 후루쿠라에게 느꼈던 것 만큼 문제성을 느낄까? 아마 아닐것이다. 아마 남자아이가 죽은 새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새를 직접 죽였다고 하더라도 '장난기가 심한 남자아이'정도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렸을때부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곱살 아이라도 여자아이에게는 순종적이고 타인에 대해 공감을 잘 할것이 기대되고 남자아이에게는 장난기 많고 쾌활한 모습을 기대한다. 여자아이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활달함'과 '폭력성'을 남자아이보다 훨씬 더 많이 억압 받는다. 그래서 남자아이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다소 '별난사람'이 될 수 있는 반면 여자아이는 절대 별난 사람이 될 수 없다. 끊임없이 행동을 교정당하기 때문이다.

 

 후루쿠라와 시라하도 똑같이 사회부적응자로 보이만 사실 그들안에서 계급이 또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루쿠라와 시라하는 언뜻 보면 똑같이 핍박받는 존재 같지만 그들은 조금 다른 존재로 다뤄진다. 사회에 대응하는 이들의 방식부터가 그 증거가 된다. 후쿠루라와 시라하가 사회에 대응하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 둘다 그들이 사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것은 같으나 시라하는 사회에서 도피하려는 반면, 후쿠루라는 끊임없이 그 사회에서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위해 노력한다.

 

나는 뒷방 사무실에서 보여준 견본 비디오나 트레이너가 보여주는 시범을 흉내 내는 데 선수였다. 

그전까지 나에게 “이것이 평범한 표정이고 목소리는 이런 식으로 내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2)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30)

일하기 전의 이즈미 씨는 조금 화려하지만 30대 여성다운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신고 있는 신발 이름이나 사물함 속에 걸린 코트의 태그를 보고서 참고한다. 한번은 뒷방에 방치되어 있던 파우치 속을 들여다보고 화장품 이름과 브랜드도 메모했다. 그것을 그대로 흉내 내면 금방 들통나버리기 때문에, 브랜드 이름으로 검색하여 그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블로그에서 소개하거나 어느 브랜드의 숄을 살까 하고 이름을 언급한 다른 브랜드를 입곤 한다.

 

 그녀는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심지어 같이 일하는 다른 점원의 흉내를 낸다. 점원의 일을 완벽하게 하는것으로 '세계의 톱니바퀴'가 되었다고 안심하며 살아간다. 그녀가 원하는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세계에서 '이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회에 별다른 큰 욕망 없이 그저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는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편의점에 새로온 점원인 시라하는 다르다. 그는 겉보기에도 지저분하고 삐짝말라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남자는 아니다. 성격또한 자기 중심적이라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라하는 사회에 대한 욕망 만큼은 강하다. 시라하는 돈과 여자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시라하는 편의점에 온 첫날부터 편의점의 일을 배우지도 않으면서 심드렁하게 농땡이를 피우다가 지적을 받으면 편의점의 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만을 늘어놓기 바쁘다.


 한동안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아침 피크타임 행렬이 끝난 뒤 사오항을 살피러 가니 시라하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팩 음료는 진열이 엉망이고, 오렌지 주스가 있어야 할 곳에 우유가 진열되어 있었다.

시라하 씨를 찾으로 가보니 께느른한 몸짓으로 뒷방에서 매뉴얼을 읽고 있는 참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뭐 모르는 게 있었나요?"

시라하 씨는 매뉴얼 페이지를 넘기면서 젠체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런 체인점의 매뉴얼은 정곡을 찌르지 못한달까, 잘되어 있질 않군요. 이런 것부터 제대로 해야만 회사도 개선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 농땡이를 피우며 매뉴얼에대해 트집잡는 모습이다.

"이런 건 남자의 본능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군요."

시라하 씨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조몬시대(일본 역사에서 신석기시대.) 부터 그렇잖습니까. 남자는 사냥하러 가고, 여자는 집을 지키면서 나무 열매나 들풀을 모아놓고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요. 이런 작업은 뇌 구조상 여자한테 알맞은 일이에요."



 후루쿠라가 세상의 질서에 대해 동화하지 않는 캐릭터라면 시라하는 세계의 질서는 이해하고 있고, 그 세계안에서 권력을 갖고싶어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낙오된 경우다. 그렇기때문에 후루쿠라의 낙오와 시라하의 낙오는 다르다. 

후루쿠라가 시라하에게 왜 편의점에서 일하기 시작했느냐고 하자 시라하는 '혼활(혼인활동)'의 일환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수였어요. 변변한 상대가 없어요. 젊은것들은 놀기 좋아하는 애들뿐이고, 나머지는 한물간 나이 든 여자들뿐이에요."

"편의점은 학생 알바가 많고, 혼기가 찬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손님 중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여자가 꽤 있지만 콧대 높은 여자가 많아요. 이 동네에는 큰 회사만 있으니까, 그런 데서 일하는 여자는 너무 으스대서 안 돼요."

시라하 씨는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지, 벽에 붙어 있는 '백중날 판매 목표를 달성하자!'라는 포스터를 바라보면서 계속 입을 움직이고 있다.

 

"그 여자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자들한테만 추파를 던지고, 나하고는 눈조차 마주치려고 하지 않아요. 조몬시대부터 여자들은 대개 그래요. 마을에서 제일가는 젊고 예쁜 아가씨는 힘세고 사냥도 잘하는 남자의 차지가 되죠. 강한 유전자가 남고, 남은 찌꺼기들은 찌꺼기끼리 서로 위로하는 길밖에 남지 않아요. 현대사회라는 건 환상이고, 우리는 조몬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요. 도대체 남녀평등이니 뭐니 하면서……."

 

 "사축(회사가 시키면 어떤 힘든 일이라도 불평불만 없이 하는 직장인을 비꼬는 말) 같은 밑바닥 인생이 뭐 할 수 있겠어요. 내가 한 일이 나쁜 짓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첫눈에 반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건 옛날 부터 전해오는 남녀의 전통 아닌가요?"

"시라하 씨, 전에 강한 남자가 여자를 손에 넣는다고 말했지요. 모순돼요."

"나는 확실히 지금은 일하고 있지 않지만, 비전이 있어요. 내가 창업만 하면 당장에 여자들이 나한테 떼거리로 몰려올 겁니다."

"그럼 시라하 씨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서, 실제로 몰려든 여자들 중에서 고르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시라하 씨는 멋쩍은 듯 고개를 숙이고는, "어쨌든 모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지금은 조몬시대와 다르지 않아요. 인간은 어차피 동물이라고요." 하고 논점에서 벗어난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은 기능 부전이에요. 세계가 불완전 한 탓에 난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요."

 

 

 시라하는 예쁘고 젊고, 경제력까지 있는 여자를 얻고싶지만 그런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능력을 키우지도, 외모를 꾸미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여자들이 '능력이 좋은 남자'를 밝힌다고 여자들을 욕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시라하 또한 능력이 없고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여자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시라하는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 질서를 욕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자기 것으로 만든다',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집을지킨다.'는 식의 자신에게 유리할만한 사회의 부조리에는 순응한다. 시라하는 세계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 단지 세계의 질서 아래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능력이 없는 것 뿐이다. 때문에 시라하에게 남은것은 왜곡된 현실인식이 가져온 '피해의식'이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은 시라하보다 약자인 여성. 후루쿠라에게 향하기도 한다.

 

"나는 줄곧 복수하고 싶었어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충이 되는 게 용납되는 것들한테. 나 자신이 기생충이 되어주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죠. 나는 오기로라도 후루쿠라 씨한테 계속 붙어살 겁니다."

 

 시라하는 후루쿠라의 집에 붙어사는 것의 정당함을 '기생충인 여자에 대한 복수'라고 말한다. 증오와 혐오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 후루쿠라에게로 향한다. 


 또한 시라하는 자신에 대해 계속 변명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다가 후루쿠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후루쿠라 씨는 왜 그렇게 태연해요? 자신이 부끄럽지 않아요?"

"예? 왜냐고요?"

"알바만 하다가 할망구가 되어 이제 시집갈 데도 없잖아요. 당신 같은 여자는 처녀라도 중고에요. 너저분한. 조몬시대라면 자식도 낳을 수 없는 나이 든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무리 속을 어정거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무리의 짐일 뿐이죠. 나는 남자니까 아직 만회할 수 있지만, 후루쿠라 씨는 이제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방금까지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거는 상대에게 화를 내고 있었는데,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것과 같은 가치관의 논리로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시라하 씨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 인생이 강간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의 인생을 똑같이 공격하면 마음이 다소 개운해지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나이가 있어도 만회 할 수 있고, 여자는 나이가 들면 끝이다"는 시라하의 말은 그냥 한심하게 웃어넘길 만한 것은 아니다. 시라하의 입을 빌어 말하고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차별이다. 후루쿠라는 여성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이중차별을 받는다. 같은 나이라도 성별이 여성이면 같은 나이의 남성보다 더 큰 결점이라는 차별. 

 후쿠루라의 말처럼 시라하는 자신이 불리할때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남을 공격할때는 그 사회의 질서를 이유로 들어 상대를 공격한다. 시라하가 보는 여성은 왜곡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만의 관점 안에서도 모순된다.

 

 

 "그야 그렇겠죠. 처녀인 채로 중고가 된 여자가 지긋한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남자와 동거라도 해주는 편이 훨씬 정상적이라고, 여동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건 당신이 너무 이상하기 때문이에요. 서른여섯 살의 독신 편의점 점원, 게다가 아마 처녀일 테고, 날마다 활기차게 소리를 지르고, 건강해 보이는데 취직하려고 애쓰는 기미도 없고……. 당신이 이물질이고 기분이 너무 나쁘니까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뒤에서는 말하고 있었어요. 앞으로는 그걸 직접 대놓고 말할 뿐이죠." 

 

 

 우리나라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성인을 대하는 방식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예컨데 결혼 적령기가 지났으나 결혼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불쌍하다'는 말을 많이한다. 하지만 똑같이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게는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한다. 남성이 결혼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결혼하지 못한 것이 되지만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았을때에는 그 이유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결함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부장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만든 가정에 소속되지 않은 여성은 정상이 아닌 별종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아버지에게든 남편에게든 한 남성에게 소속되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혼자 존재하는 여성은 온전한 주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가 된다. 

 

 나는 후루쿠라와 시라하를 비교해보면서 이들은 같은 듯 보이지만 결국은 다른 계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때 심리학 붐을 일으켰던 존 그레이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떠올랐다. 존 그레이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선천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존그레이를 언급할때 가장 많이 쓰이는 비유인 남자의 동굴또한 같은 맥락이다. 

 존 그레이는 "갈등이나 고민거리가 있을때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여성과는 다르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굴에 들어가는 것은 남자의 선천적인 특성"이라고 했지만 나는 존 그레이의 의견보다는 "그러한 특징은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벨 훅스('올어바웃러브'의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동굴에 들어가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것은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라 남성이라서 할 수있는 권력의 표현이다. 그동안 여성은 동굴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근엄하게' 있는 아버지나 오빠와 그를 달래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남성이 동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동굴에 머물어도 다른 사람이 간섭하지 않는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매가 자랄때에 오빠나 남동생에게는 애교를 강요하지 않지만 누나나 여동생에게는 애교와 사교성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후루쿠라는 시라하와는 다르게 "강제적으로 사회성을 학습" 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회에 원하는 욕망이 있는 시라하보다 사회에 욕망이 없는 후루쿠라가 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어야한다. 하지만 시라하는 후루쿠라에게는 없는 남성이라는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후루쿠라만큼 자신을 교정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무례한 사람이 되긴 했지만) 



"나를 세상으로부터 숨겨달라고요. 내 존재를 이용하여, 입으로는 얼마든지 퍼뜨리고 선전해도 괜찮습니다. 나 자신은 계속 여기에 숨어 있고 싶습니다. 생판 남한테 간섭받는 건 이제 진저리가 나요."

 

"밖에 나가면 내 인생은 또 강간당합니다. 남자라면 일을해라, 결혼해라, 결혼을 했다면 돈을 벌어라, 애를 낳아라. 무리의 노예에요. 평생 일하라고 세상은 명령하죠. 내 불알조차 무리의 소유에요. 성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자를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취급당한다니까요."

 

 사회의 질서자체를 공감하지 못하는 후루쿠라와 사회의 욕망은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에서 낙오된 시라하의 캐릭터를 비교해서 읽는것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이다. 시라하는 사회로부터 숨고싶어하지만 그것은 후루쿠라가 사회에서 이물의 존재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시라하의 도피심리는 사회의 질서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서에 완전히 순응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자신이 순응한 질서안에서 자신은 낙오자이고 패배자이기때문에 숨고싶은 것이다. 


 사회에서 기대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언제든 삭제된다는 공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공포인 것 같다.

자본주의의 논리만 팽배한 사회에서는 '무능력한 존재'를 포용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본의 생산, 노동인력의 생산(출산)}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쓸모 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의 논리이며 자본가의 논리일 뿐이다. '무능력'이라는 것의 기준 또한 자본가가 세운 기준일 뿐이다. 자본가의 일꾼으로서 '무능력'하다고 그 사람 자체를 무능력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왠만큼 일해서는 먹고살기 힘든 나라에 살아서 그런지 나는 때때로 나의 가치를 가늠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가정했을때의 나의 삶을 상상하기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부품으로서 인정받으려고 하기 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그 세계가 인간인 나, 여자의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정당한 것인지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고싶게 만드는 책. 김연수의 머릿글부터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