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예술가라는 수사는 나혜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혁명가, 투쟁가라는 말이 어울린다. 아직도, 아니 오히려 지금 더 살아숨쉬는 그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고나서 책장에 있는 글쓰기 책들을 버려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사를 생각하고 문체를 생각하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글쓰기에 필수인 것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한편 기록의 힘도 생각해본다. 나혜석이 글을 남기지 않았다면 나혜석에 대한 내용은 당시의 여성 작가들을 스캔들과 가십거리로만 삼고 그들을 모델 삼아 자극적이고 왜곡된 소설을 쓴 김동인 같은 파렴치한 남성 소설가의 글로만 알고 잘못 알고 끝났을 것이다. 바람만 잔뜩 들어 이남자 저남자 만나고 다니는 신여성이라고 알고 있었겠지. 남성의 기록으로 여성이 쓰여지면 안되는 이유이다. 잘쓴다 못쓴다 따지는 것은 여성에게 사치가 아닐까 . 일단 써야한다. 안전한 글만 쓰고 싶은 느슨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혜석을 생각하자. 나혜석이 쓴 글중 ‘모된 감상기‘는 지금 발표되도 논란이 될만한 글이다. 그만큼 솔직하고 가부장제의 모순, ‘효‘라는 것 속에 감춰진 부모의 자식 착취등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말한다. 그의 글은 화려한 수사를 보여주기 보다 직설적인데 그의 삶의 태도 또한 그렇다. 그는 타협하면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리 하지 않았다. 고민하고 의심하고 생각을 정리한 끝에 자신이 얻게된 믿음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세상의 뭇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으나 자신의 글을 세상에 발표했다. 자신의 깨달음이 옳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어딘가에 자신의 글을 필요로 하는 공명하는 자가 있을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맞았다.
아직 시작도 안 해본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에 돈을 들이는 건 투자가 아니라 충동구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