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니, 이디시
명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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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단편을 모두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런 거였다.  

'이 작가, 소설을 참 맛나게 쓰는걸? 왠지 착착 달라붙어.' 

 요리사가 각각의 요리를 특색을 살려 만들어내듯이, 각각의 소설이 주는 맛도 제각각 다르게 맛있었다. 그 중 일품요리 같은 소설을 고르라면 단연 표제작인 <이로니, 이디시>. 이건 정말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옆구리가 붙은 채 태어난 두 자매의 이야기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중요한 소품은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둘 달린 일본 인형. 옆구리가 붙은 자매들과 대비되면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인 존재방식에 대해 생각케 한다.(인형에 새겨진 '내선일체'를 굳이 모른 척하는 것은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이 아릿한 소설을 읽어야겠단 욕심 때문이다.) 그것은 소설 말미에 작가가 되어 나타난 하나의 아씨를 보며 '나'가 생각하는 부분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두드러진다. 떨어져나간 다른 아씨는 어찌 되었는지,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지, 작가가 된 아씨의 영혼의 일부가 되었는지..... 

 글쓰는 아씨가 단장을 짚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몸과 같았던 자매의 떨어져나감으로 자유로우나 불구적 존재가 된 것을 상징하는 건 아닌지. 독일의 한 가정에 양녀로 보내지길 기다리며 둘이 옛날 이야기책을 읽고 때로는 화자인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멋대로 각색하기도 했던 그 장면이 사랑스러워 단장을 짚고 나타난 작가 아씨가 다른 아씨를 흡수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내 맘대로의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목표는 머리끄덩이>는 그야말로 발랄하다. 바람난 애인을 응징하기 위해 날라리 여고생들에게 복수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실제 복수를 시작하는 과정을 사사삭, 유쾌하게 읽어버렸다. 

인육으로 요리를 만드는 데 집착하는 식재료도매상 사장과 망해가는 염전에서 상등품 소금을 만들어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 속에 든 맛>, 그리고 그릇도예가인 '선생'이 충천이 빛을 내뿜는 순간을 그릇에 담아내려는 집념을 그린 <충천>은 깊은 맛이 느껴진다. 특히 예술가소설로 볼 수 있는 <충천>은 주제를 형상화하는 내공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예술적 성취를 위해 자기 눈을 숙주로 벌레가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더티 와이프>는 단편소설로서 잘 만들어진, 모범적인 작품이랄까. 피라미드 사기를 당해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남자가 공장지대의 지하방에 살면서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리얼돌에 성적 욕구를 분출한다.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이 남자는 사랑도 쓰레기장에 버려진 리얼돌, 더티 와이프와 한다. 현대사회의 저 습하고 어둑한 곳을 살아가는 군상들. 그들의 죽은 삶, 죽은 사랑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 밖에 다른 소설들도 단단한 문장과 묘사력(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많다), 인간에 대한 섬세한 관찰 등 나름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여덟 편의 소설에서 이렇게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준 작가가 다음 소설집에선 독자들에게 어떤 식단으로 구미를 당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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