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 - 짧은 시의 미학 김일로 시집 <송산하> 읽기
김병기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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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꽃씨를 뿌려 보았다면 이 짧은 한 줄 시에 가슴 떨 것이다.

 

 

 

작년 가을 일터를 이곳으로 옮겼으니까 딱 일 년이 됐다.

주차장으로 쓰는 너른 마당은 온통 자갈로 덮여 있었고, 그 을씨년 스런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큰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휑하니 메마른 땅을 보고 사람사는 냄새가 안 나는 곳이었다. 주차장 마당 길을 따라 꽃씨라도 뿌리면 내년엔 황량한 자갈 마당 대신 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작년 가을 열심히 꽃씨를 모았다.

강변에서 만난 코스모스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모았고, 키가 큰 코스모스와 함께 심으면 좋겠다 싶어 노란색이 매력적인 금잔화 씨앗도 열심히 모았다.

가을에 꽃을 보려면 4월이 끝나기 전에 꽃씨를 뿌려야 한다길래 아이들을 데려다 자갈투성이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꽃씨를 뿌려주었다.

폭염이 계속되던 여름날엔 말라죽을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뿌려주었고, 뙤약볕 아래서 꽃들 보다 몇 배는 빨리 자라는 풀을 뽑는 일이 정작 돈벌이를 위한 일보다 더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딱 일 년이 지났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코스모스는 피어버렸지만, 뿌린대로는 아니어도 자갈을 피해 그 척박한 땅에서도 듬성듬성 금잔화도 무리지어 탐스럽게 피었다.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코스모스는 다시 꽃씨를 떨구어줄 것이고 금잔화 씨앗도 그 땅에 남게 되면 내년엔 올해 보다 더 풍성한 꽃을 보게 될 것이다.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보려고

다시 일 년


一花難見日常事

일화난견일상사



누구라도 꽃씨를 뿌려 보았다면 이 짧은 한 줄 시에 가슴이 떨릴 것이다.


짧은 시라고 해서, 쉬운 시라고 감동이 덜 한 것이 아님을 김일로 시인의 시를 읽고 깨닫게 된다.

 


한시는 무조건 어렵다 여겨 멀리하고 살았는데, 한시에 이런 매력이 있을 줄이야.


나처럼 한자에 거의 문맹이다 시피한 독자라도 김일로 시인의 한 줄 한시에 김병기 님의이 덧붙여 풀어둔 글을 읽다보면 또 다른 시의 맛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 한 권의 시집에 두 시인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짧지만 시인이 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담긴 시와 한시를 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 한줄의 한시로 시 한편을 고스란히 녹여 담은 김일로 시인의 시와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 그 한시를 아름다운 시로 풀어 쓴 김병기 시인의 노고 또한 아름답다.

 

 

<나 역시 꽃 보려고 일 년을 기다려 꽃씨를 따다 키우기를 일 년, 그렇게 해서 꽃을 피운 금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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