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돼요?
기려한 지음 / 로코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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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확률적 인연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다시 만났다.


간판 없는 곳으로 속속 모이는 상류층의 지하 세계, ‘일프로’.


낮에는 재아로, 밤에는 유희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가장 예뻤던 모습의 재아가 되게 해 주는 햇살 같은 남자, 강이준.


“천천히 돌아서 가려고 했는데 사실 그게 마음대로 안 돼요.
그러니까 내일도 보고…… 또 내일도 봐요.”


그녀의 시선을 온통 제게로 옮겨 오고 싶은,
언제나 그녀의 뒤에 선 거친 그늘 같은 남자, 길태하.


“불을 껐는데도 왜 난…… 네가 보이는 것 같지.
넌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내가 안 보일 텐데.”


흑과 백 같은 두 남자 사이에 선 그녀는
장마에 갇혀 있다.


“사랑해도, 돼요?”


건조한 그녀의 웃음을 찾아 주고 싶다.
웃는 것도 아프고, ……우는 건 더 아프니까.


“돼요, ……사랑해도.”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포기할 수 없어 자신을 포기한 그녀, 이재아.


엄마의 갑작스런 병으로 가진 거 없던 재아는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일프로로 들어간다.
‘유희’가 되면서 이재아의 삶은 포기한 재아.
그곳에서 첫사랑 이였던 의사 선생님 이준을 만나지만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이준의 호의에 자꾸 마음이 가지만 유희로도 재아로도 다가갈 수 없는 그이기에
냉정하게 끊어내지만 이미 마음이 갔기에 쉽지가 않다.



첫사랑을 첫사랑인 줄도 몰라 놓치고, 그래서 그녀의 이름도 제대로 부를 수 없던 그, 강이준.


환자의 보호자인 재아를 마음에 두고 조금씩 다가가던 중 재아가 병원비로 힘들어하는 걸 보게 되고
도와주려 하지만 재아가 갑작스레 병원을 옮기며 사라졌다.
돈 있는 자들만이 살아남는 병원 시스템에 무력감을 느끼고 경영으로 진로를 바꾼다.
공부를 위해 외국으로 떠난 지 2년 후, 귀국축하를 해준다는 친구들에 의해
일프로 업소를 가고 그곳에서 ‘유희’가 된 재아를 만난다.
텅 빈 재아를 보며 아는 척을 할 수 없기에 유희로 대하며 다시금 다가간다.


갖고 싶었던 만큼 갖기 싫은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으로 치기 어렸던 그, 길태하.


일프로에서도 최상급인 유희를 유난히 괴롭혔다.
어서 그만두고 이곳을 떠나라고.
욕망했던 만큼 욕망을 품기 싫었고, 보고 싶은 만큼 보기 싫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유희를 흔들지만
이미 강이준에게 온 마음이 가있는 걸 보게 되고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지켜주고 싶었다. 유희가 아닌 이재아로 돌려보내려고.


이준에게 가기엔 자신의 상황을 너무 잘 알아 마음 한 자락도 내비칠 수 없어
냉정하게 끊어내려 하지만 실상은 이미 온 마음을 줘버린 재아.
재아로 아는 척 하면 무너질 걸 알기에 이름조차 제대로 부를 수 없었지만
올곧게 재아에게 마음을 전하고 자신에게 오게 만들려 애쓰는 이준.
마음을 닫은 채 텅 빈 모습으로 살던 재아가 이준이 나타나며 생기가 도는 걸 보고
자신의 진심을 깨닫고 재아를 뺏으려는 태하.
서로가 서로를 누군지 다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인, 안쓰러운 주인공들이였어요.


읽는 내내 참..... 먹먹했어요.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엄마를 살리려 밑바닥으로 내려간 재아의 인생도 불쌍하고.
재아를 재아라고 부를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이준도 안타깝고.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몰라 뒤늦은 후회로 힘들어하는 태하도 짠하고.


사랑은 타이밍이라지만 타이밍보다 인연이 더 중요했네요.
그 인연을 만든 건 사실상 노력과 마음이었지만요.
이준에겐 재아를 되돌리는 그 시간들이 힘들면서도 행복했겠지만
뒤늦게 마음을 깨달은 태하는 내내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거예요.
재아의 시선이 이준이 아닌 자신이길 바라고 욕심도 내지만
재아가 행복하길 바라는 그 마음 또한 진심이었고,
재아가 이준의 손을 잡음으로써 펼쳐질 앞날이 걱정되기도 하니 미칠 노릇이었죠.
동전의 양면처럼 한 마음아래 두 갈래의 진심이 뒤섞여 힘들어하지만
이 악동 같은 남자는 결국 재아의 뒷모습을 봐주고 지켜주네요.


이 이야긴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다 결국엔 물러나는 남조가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예요.
삼각관계에서 승자가 된 남주와 패자인 남조가 아니라
그저 한 여자를 다른 듯 닮은 사랑으로 지켜낸 조금은 다른 매력의 두 남자가 나오는.


아쉬웠던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인연으로 엮으려는 장치들이 과하니 안 하니만 못했죠.
그 예로 재아와 이준의 어렸을 적 만남과 부모의 인연이 그랬어요.
왜, 굳이, 그런 설정으로 만들었을까.
재아의 상황을 수월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위해서?
그러기엔 그 장치들은 극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의 반감을 일으켰어요.
현실적으론 힘든 상황들을 현실적으로 느끼게끔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안타깝고 짠한 그런 마음들을 같이 느끼다가 느닷없이 흐름을 뚝 끊는.
근데 그런 것을 제외한 전체적인 내용은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구미를 당기는 신간이 안 나온 지 몇 달.
그래서 베스트 작품들을 이북으로만 주구장창 재탕하느라
아예 책을 손에 안 잡았는데 길어지는 침체기를 훅 날려줬네요.
이 작가님의 글은 이게 처음이었는데 전작들도 찾아보고,
다음 작품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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