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새벽
김상수 지음 / 김아트인스티튜터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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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깨워준 책  (도르피니님의 리뷰를 옮기다)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에 무임 승차한 나를 위한 책

나는 소설의 주인공인 세이코의 딸, 미아가 태어난 1980년 무렵에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나라 현대사와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구차한 변명을 대자면 군사정권 시절이라 교과서에 잘 나와 있지 않았다. 현대사 부분은 시험에도 나오지 않아 관심이 덜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조금 말이다. 그때 놀라움과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깊게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되는 줄 알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조국 광복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조금씩 알아 갔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잔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가로 막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는지 접할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군부정권 지도자의 민낯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의 탄압과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잔재로 고통받는 두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군부독재 지도자들, 한국의 원폭피해자, 남영동 대공분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등 아픈 역사를 되집어 줬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분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한번쯤 읽어 봤으면 싶다.

 

책은 1979년 박정희 정권 말부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 기자 김재오와 그의 슬픔을 알아가는 일본 사진작가 세이코와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 군부독재 시대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연극, 연출 등 경험이 많아서 인지 독서하는 내내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눈을 뗄수가 없었다.

 

내가 깊게 인상을 받았던 두가지 장면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대신해 본다.

첫째는 일본 만주군관학교 출신이 해방된 한국에서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군 참모총장 등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요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인공 세이코가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알게된 이후 장면이다.

 

"세이코는 맨 마지막 열람객으로 국회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무턱대고 걸었다. 그녀는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역사를 안다는 것.

그것도 이웃나라의 비극적인 역사를 안다는 것과 그 역사가 일본이 심어 놓은 후예들로 인한

연장선상에 놓인 비극에서 비롯됐단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깊은 죄책감까지 들었다.

시내 공원 돌계단에 멈춰 서서 퇴근길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다 봤다.

일본인들은 지금 과거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중략)

일본인들은 그 모든 것을 전혀 기억 속에 남겨두지 않고 산다. 저 1억 2천만의 사람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눈을 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중략)

갑자기 세이코의 눈에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 영혼이 빠진 육체들의 행렬처럼 보였다.(중략)

그러나 세이코는 생각했다. 깨닫지 않는다면 이건 반드시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는, 그런 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세이코가 일본인을 보며 하는 생각이, 한국인(나)을 보며 하는 이야기로 들렸다. 

"한국인들은 지금 과거(제대로된 역사)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한국인들은 그 모든 것을 전혀 기억 속에 남겨두지 않고 산다. 저 5천만의 사람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눈을 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깨닫지 않는다면 이건 반드시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는, 그런 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에서 본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두번째는 세이코가 아사히 저널의 포토저널리즘 부문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장면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메시지 같았다.

"오늘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한국인 김재오, 김 상이 저에게 일러주고 가르쳐준 물음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유를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두려움에 대한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경계해야 함을 우선으로 합니다.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인간 인격의 가치와 존엄을 해치는 것이고 인간의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오늘 저는 특정한 정치적 신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는 저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집 '아시아의 상처' 사진을 찍으면서 인간의 정치에 대해서 알았고, 정치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새삼 더 알아야 한다는 자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 민주주의, 오직 하나뿐인 개개인의 생명의 귀중함이 어떤 그럴듯한 폭력이나 국가적 강제에 의해서 함부로 취급당하고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명의 진리와 인간의 자유, 오늘 저는 이것의 중요성을 새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저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 과거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주고, 나처럼 군부독재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다. 일본인 세이코처럼 일본이 진실되게 참회하고 먼저 한국인의 손을 잡아준다면, 딸 미아처럼 양 국가간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우리의 역사부터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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