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의 지휘
Martin Van Creveld 지음, 김구섭 외 옮김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내용은 괜찮습니다만, 번역이 문제입니다. 나폴레옹 휘하에 뮤레(Murat)와 라네(Lannes), 그리고 다봇(Davout) 원수가 있단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저거야 철자를 영어식으로 읽었다 억지로 이해해준다 칩시다. 베르티에(Berthier) 원수를 어떻게 해야 벌쉬(p 116)라 읽을 수 있습니까? 브라운슈바이크를 부른스윅이라 표기하는건 애교고요. 물론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uweig의 경우 영어권에선 Bruinswick이라 쓰고 해당발음과 비슷하게 읽긴 합니다만, 이건 아리스토텔레스를 영어식으로 아리스토틀이라 번역하는거랑 비슷하게 잘못된겁니다.

게다가 군인이면 모를수가 없을 전투일 가우가멜라를 고가멜라(p 99), 예나 전투와 동시에 벌어진 아우어슈테트는 오르스탓트(p 148), 심지어 나폴레옹의 가장 완벽한 전투로 일컬어지는 아우스터리츠를 아우스트리치(p 110)로 번역해놨더라고요. (한페이지만 이런게 아니라, 해당 전투를 가리킬때 전부 저런 표현을 쓰고 있어요. 단순한 오타가 아닙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카이저(Kaiser)가 된 적이 없음에도 꼬박꼬박 '대제'라 부르는건 뭐하자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번역자분들이 자체적으로 추존하는 건가요? (이는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7판 상권 등 다른 번역서에서도 흔히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번역자들 모두 경력이 화려합니다. 3명 모두 공/육군 사관학교와 서울대를 졸업했고, 자신이 나온 사관학교 교수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분은 국방부 정책 전문위원을, 다른 분은 한국 국방언구원 책임연구위원에서 군사전략을 담당하시고 책 출간 당시엔 국방대학교 교수를 하고 계셨습니다. 나머지 한분은 국방대학교 합참대학 합동교리 실장 경력도 있으시네요. 전부 책 날개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밀리터리 매니아나 전쟁사 애호가들이 우러러볼 경력을 쌓으신 분들께서 이런 번역을 내시다니. 번역을 직접하신거라면 이 나라 국방력 수준에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군사학의 석학들의 실력이 이정도라는거고, 해외 자료에 대한 수용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나마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휘하 부하 간부나 학생들에게 시켰다는건데, 그건 그거대로 번역윤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책을 번역이 망쳤습니다. 그나마 비문은 적어서 가독성 자체는 그냥저냥이었습니다(이건 순전히 개인적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 책도 그렇고, 현직군인들의 번역서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책 제목은 기억이 안납니다만 현직 포병장교가 몰비츠Mollwitz를 몰위츠라 번역한걸 보고, '이 사람은 바그너Wagner를 와그너라 발음할 사람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책세상 출판사의 밀리터리 클래식 시리즈들도 현역군인들이 많이 담당했습니다만, 번역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닙니다.)
그나마 믿을만한 분은 <전격전의 전설>을 번역하신 진중근 님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이 책도 일부 번역오류가 있긴 합니다만,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 번역문제는 군사분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문, 과학, 예술 등 다른 분야도 중역이나 형편없는 번역문제가 빈번한게 한국의 현실이죠. 요즘은 조금 나아진거 같습니다만, 하루빨리 번역을 천시하는 관행이 개선되고, 옆나라 일본처럼 번역행위를 학자의 연구실적으로 평가해주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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