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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이올린 ㅣ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평점 :
막상스 페르민의 색채 3부작을 봤을 때, 두번째 작품인 '검은 바이올린'에 먼저 시선이 갔다. 보통 첫번째 이야기부터 보게되지만 예술에 대한 이야기라 특히 더 관심이 갔다. 그런 경험이 없진 않으니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막상스 페르민의 검은 바이올린은 예술과 사랑에 대한 욕망을 담아낸 이야기다. 읽기도 전부터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길진 않지만 여유를 두면서 읽게 된다. 다른 두 작품도 마찬가지겠지 기대감을 품었다.
영혼을 바쳐 완성한 작품이라는 건 예술계에서는 종종 있는 말이다. 영혼을 담아 그린 그림, 영혼과 맞바꾼 음악... 예술가가 영혼을 담아 만들어낸 대작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고 대중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너무 작품에 몰입한 나머지 눈을 잃고, 귀가 멀고 심지어 자기자신을 파멸시켜버리기도 한다.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예술에 광적으로 몰입하며 영혼을 음악으로 옮기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는 천재라고 불렸지만 그 이상을 바라 보았으며 숭고한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다. 해가 떠있는 동안 음악에 전념했고 몰입하는 순간, 마음이 빛을 향해 열려있었기에 세상을 잘 볼 수 있었다. 바이올린을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집시의 바이올린 연주에 바이올린과 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는 오페라를 만드는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운명의 이끌림인지 유년에 보았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집시, 지금은 노인이 된 에라스무스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세상엔 인간이 빚어낸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단지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랑이 된다. 사랑은 더 있고 싶고, 대상에 대해 더 알고자 한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그치기엔 인간의 욕망이 허락하지 않는다. 안될 걸 알아도 그것에 대한 욕망,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 에라스무스는 음악을 정말 사랑했고 음악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소유욕이 되고 특별한 음악을 바이올린에 가두고자 했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 에라스무스의 검은 바이올린은 특히나 살아있는듯이 인간적이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과 맞바꾼 걸작이었다. 여인에 대한 사랑과 예술을 소유하고자 했던 마음이 영혼을 뒤트르고 파멸로 이어졌다. 기묘하면서도 카를라의 심정에 몰입하게 되서그런지 이들의 운명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검은 바이올린만의 아름다운 선율은 카를라의 울부짖는 영혼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사랑이든 일이든 어느 무언가에 너무 몰입하고 집착해서 나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보아왔다. 대개는 건강과 맞바꿨다. 나는 그들이 영혼을 바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정도는 놓아줬으면 좋겠다. 잃은 건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역자의 말처럼 광기어린 소유의 시대에도 소유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것이 있기에.
'그 소리는, 사랑을 잃었다고 슬퍼하는
착각하는 시대에 사랑의 얼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