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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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이 말만은 당신에게 할 수 없었어, 당신이 물어볼지 몰라 두려웠고, 그러면 당신을 영원히 잃어버릴 것만 같았어. <아니에요.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

 

 책의 마지막 문장을 캘리그라피로 쓰면서 《거미여인의 키스》를 처음 접했다. 그런데 '몰리나'가 동성애자라는 리뷰도, 트랜스젠더라는 리뷰도 있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직접 읽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몰리나는 MTF 이성애자로 보인다. 몰리나는 작중 내내 본인이 여자라고, 혹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째서 몰리나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냐하면, 작가 본인이 '트랜스젠더'를 몰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몰리나가 게이라고 생각했고, 게이 중에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몰리나도 게이 집단에 소속감을 느낀다.

 

 어릴 때부터 나를 너무 귀여워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말이야. 또 내가 엄마 치마폭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사람은 항상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데, 난 남자보다 여자가 되고 싶어. 왜냐하면 여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거든. (중략) 여자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니까... 난 여자가 되고 싶어. 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내 머릿속에 아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니까 충고할 생각일랑 하지 마. (31쪽)

 

 이야기가 얼마 진행되지도 않았을 때, 몰리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언급하며(어머니와 매우 강한 에로틱한 관계를 맺어 여성성을 추구하고 남성 간 성관계를 맺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으로 보인다. 발렌틴은 몰리나가 말해줬던 첫 번째 영화를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한 적 있다.) 본인의 입으로 자신이 MTF임을 못박는다. 자신의 지정성별이 남성인 것은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것이다. 여자는 최고의 존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여성 숭배의 일종이라기보다는, 되고자 하나 될 수 없는 '여성인 나'에 대한 갈망 혹은 동경으로 보인다.

 

 있었어. 하지만 내 친구들은 항상... 나처럼 게이였어. 그리고 뭐라고 할까? 우리들은 서로를 아주 믿지는 않아. 서로가 굉장히... 겁쟁이고 나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정이야. 우리보다 더 과묵한 남자들과의 우정이란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것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어. 남자는... 여자만 원하거든. (발렌틴: 게이들은 모두 다 그런가?) 아니야. 자기들끼리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진짜 여자야. 그런 시시한 장난은 좋아하지 않아. 우리는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정상적인 여자거든.(269쪽~270쪽)

 

 스스로를 여자라고 여기지만 나는 게이라고 말하는 몰리나의 태도는 굉장히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인용한 부분에서 드러나듯, 몰리나는 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남자들(게이)과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여자(MTF)를 이해하고 있다. 시대적 한계(1976년에 출판되었다)를 고려했을 때, 작가 본인이 성별 정체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성적 지향으로만 판단했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거미여인의 키스》를 동성애 관계가 나타나는 소설로, 몰리나를 동성애자로 소개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아무 생각 없이 몰리나를 동성애자라고 공식적으로 소개하거나 개인적으로 리뷰한 글을 보고 있자니, 이쯤되면 책의 첫머리나 연극 시작 전에 '시대의 한계로 몰리나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인식하고 있으나 그는 트랜스젠더 이성애자로 보인다'라는 안내문구를 삽입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넌 정말 그런 어머니를 갖고 싶지 않니? 다정하고 항상 깔끔하게 가꾸는....(28쪽, 몰리나)

 너무 감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남자가 되는 데 방해 요소야. (45쪽, 발렌틴)

 (발렌틴: 예술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야.) 며칠 내로 네가 나보다 더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네. (107쪽, 몰리나)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나를 계집애 같다고 비웃는 일도 없을 테니까. (152쪽, 몰리나)

 왜 남성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하지 않느냐는 말이야. (320쪽, 발렌틴)

 하지만 어떤 남자가 내 남편이라면... 그는 명령을 해야만 해.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야. (321쪽, 몰리나)

 

 발렌틴과 몰리나는 성별 고정관념을 답습한다. 남성은 명령하는 존재이고, 이성적이며, 여성은 감성적이고, 예술을 좋아하고, 복종하는 존재이다(《거미여인의 키스》에서 게이는 '여성성'이 강한 것으로 그려지므로, 여성의 특징 대부분은 게이의 특징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또한 발렌틴은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이 기저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다. 그래서 그는 몰리나에게 '너는 신체적으로 나처럼 남자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왜 남성적으로 행동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몰리나가 여성임을 납득하지 않고 있다는 증명이다. 그러므로 나는 발렌틴이 몰리나가 '나는 여자야.'라고 말할 때 혐오감을 드러내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몰리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좀 특이한 망상 정도로 진지하지 않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몰리나는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고, 명령하는 남편과 복종하는 아내의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말을 한다. 이때 발렌틴은 그것은 착취이고, 네가 여자가 되고 싶더라도 그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지 말라고 한다(이때 '그것'이 '여자가 되고 싶은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성별 정체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당시의 한계를 고려했을 때 배척받는 요소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므로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여자라는 것' 자체일 것이며, 또한 바로 이어서 '복종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도 나온다). 이 말은 남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 활동을 했던 발렌틴의 경험과 사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무시당하고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는 말로, 몰리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 말을 꺼내게 했던 동기였음을 짐작했다.

 

 

 몰리나는 스스로가 게이가 아닌 트랜스젠더임을 죽을 때까지 몰랐다. 발렌틴 역시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언어의 중요성을 느낀다.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반드시 특정한 무엇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고, 영영 물음표로 남겨둬도 괜찮다. 그러나 정의할 언어가 없어서 남의 옷을 불편하게 입고 있는 것은 다르다(몰리나가 자신을 게이라고 말하면서 게이와는 뭔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일생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한계를 두지 않고 탐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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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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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마누엘 푸익,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로 유명하다. 사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중적이지만 문화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그 경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거미여인의 키스는 그러한 소설이었다.

 

좌익 사상으로 수감된 정치범 발렌틴과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수감된 동성애자 몰리나는 한 방에서 지낸다. 이들은 영화 이야기를 하며 감옥 생활을 보낸다. 어느 날 발렌틴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고 몰리나는 그를 정성스레 간호한다. 원래 발렌틴은 바깥의 세속적인 환경에 물든 몰리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후로 마음을 열고 둘은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몰리나는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발렌틴은 몰리나가 출소하는 전날 자신의 메시지를 동료들에게 전달할 것을 부탁한다. 몰리나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다가 죽고 이 소식을 들은 발렌틴이 몰리나를 회상하며 소설은 끝난다.

 

줄거리에서는 간단히 ‘영화 이야기’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이 영화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몰리나는 6개의 영화를 자신에게 유리한 장면을 중심으로 설명하며 간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발렌틴은 몰리나의 이야기를 정말 심심해서, 지루해서 들을 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후반에 가서는 완전히 영화에 몰입한 모습을 보여 준다. 몰리나가 첫 번째 영화를 이야기할 때 발렌틴은 자신이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는 겉모습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여성의 신체에 대해 질문하는 발렌틴의 모습에서 둘의 생각이 서로와 비슷하게 약간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몰리나 또한 감성에 치우친 모습에서 이성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몰리나와 발렌틴은 둘 다 남자지만 몰리나는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몰리나는 남자가 여자를 겁먹게 하는 것처럼 완벽히 남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남자답다고 생각한다. 발렌틴은 전자에 대해서는 몰리나를 억압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함께 생활하는 수감자로 대하며 몰리나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몰리나가 출소하기 전 단호하게 말한다. 여성은 착취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투쟁하라고. 이는 발렌틴의 좌익 사상에 입각하여 나온 이야기지만 현재까지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몰리나는 성이라는 관념에서 완전 벗어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목인 거미여인의 키스는 소설의 끝부분에서 언급된다.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키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다. 발렌틴은 첫 번째 영화였던 표범여인을 이야기하며 넌 마치 거미여인 같다고 말한다. 몸을 나누는 것과 달리 키스는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증표로 여겨졌다. 좌익 사상가와 동성애자의 사랑은 정 반대 존재들의 결합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푸익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작품을 만들어냈다. 성적인 억압과 사상적인 문제, 그리고 사랑까지 추상적인 관념들을 수감자 두 명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에서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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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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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채 문학평론가는 「먼 곳에서 온 노래」가 포함되어 있는 단편집 『쇼코의 미소』 을 두고 '순하고 맑은 힘(p.277)'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 표현에 걸맞게, 「먼 곳에서 온 노래」 역시 '미진'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화자 '소은'의 순하고 맑은 기록이다. '소은'과 '미진'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마다 마로니에 광장에서 공연을 하는 대학의 노래패에서 선후배 관계로 처음 만났다. 그때 '소은'은 노래하는 '미진'의 모습을 보고 반한다.

 

 처음 야외 공연을 했던 4월의 저녁을 잊을 수 없다. 준비한 레퍼토리가 다 끝났을 때, 미진 선배가 계획에 없던 독창을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췄고, 나도, 다른 동기들도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맑고 여린 목소리에 강단이 있었고, 멜로디나 가사를 떠나서 목소리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선배의 노래가 날카롭고도 부드럽게 내 속으로 들어오자 내가 겨우 감추고 숨겨온, 모른 척하고 싶었던 내 속의 한 조각이 속수무책으로 떠올랐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선배의 노래는 나를 부끄럽게도, 슬프게도 했다. 선배의 가느다란 어깨를 두 손으로 누르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얹고 싶었다. 그 자그마한 입속으로, 어둠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선배의 세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었다. 선배와 가까워지기 전의 일이다.

 

 '소은'의 눈에 비추어진 '미진'은 순수하고도 맑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곳은 '소은'이 소위 '콩깍지'를 쓴 채 사랑하는 사람으로 '미진'을 대했기 때문은 아니다. '미진'이라는 인물 자체가 순하고 맑기 때문에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이다.

 

 선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진심을 말할 때, 선배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금씩 떨렸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물론 '소은'이 '미진'을 그렇게 바라보았기 때문에 '미진'이 한없이 순하고 맑은 사람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등장한다. 5월 축제 기간, 노래패에서는 홈커밍데이 후에 뒤풀이 자리를 가진다. 그곳에서 '소은'은 자신을 감싸며 80~90년대 학번 선배들과 부딪치는 '미진'의 모습을 목격한다.

 

 "이거 놓으세요." 미진 선배가 기자 선배의 손을 뿌리쳤다. "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정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경석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솔직히. 씨발, 이 더러운 꼴을 꼭 쟤한테까지 보여야 합니까? 전 이제 그러기 싫어요, 싫습니다."

 "넌 항상 이렇게 감정적이었어. 그게 네 약점이고, 그거 극복 못하면 너 사회생활 못해." 기자 선배가 말했다.

 "김연숙씨나 잘하세요. 여자인 게 그렇게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어요?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분란 일으키고, 이기적이어서 조직 배반하기 쉽고, 여자의 적은 여자고, 그런 자기부정이 김연숙씨가 말하는 건강함이었습니까? 여자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배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들고 나갔다. 나도 부랴부랴 책가방을 메고 선배를 따랐다.

 

 '미진'이 분연히 일어서기 전까지 선배들의 모든 화살은 '소은'에게 향하고 있었다. '소은'은 그 당시를 두고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칼,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 가는 목소리, 낯가리고 내성적인 성격, 여자라는 성별까지…… 그 자리에 앉아 나는 나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p.197)'고 표현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미진'에게서 '소은'은 '차가운 분노(p.198)'를 읽었다. '미진'이 순하고 맑다는 것은, 그녀가 그저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다. 미네랄 성분 등 불순물이나 이온 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물분자를 냉각시키면, 일반적인 얼음보다 훨씬 단단하고 잘 녹지 않은 얼음이 탄생한다. '미진'은 순수하고 맑기 때문에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 더 단단하고 잘 녹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너무 맑은 '미진'은 2009년, 서른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객사로 생을 마감한다. 순간적인 심장마비였다. 세상은 순하고 맑은 사람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미진'과 '소은'이 만났던 곳, 노래패만 해도 그랬다. '엄격한 선후배 문화, 남학생 중심으로 운영되는 집행부, 상명하복식 문화에 선배는 하나하나 문제제기를 했(p.200)'던 사람이었고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평등한 관계맺음, 여성주의 교육을 주장하(p.200)'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미진'은 노래패에 꿋꿋하게 남아 있었고 노래패는 그녀가 떠난 뒤에야 문을 닫는다. 노래패에 대해서 '미진'은 '소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대학에 와서야 토론할 수 있게 된 스물, 스물하나의 아이들이 그게 너무 아프고 괴로워 노래를 불렀어.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 같은 게 아니길 바랐어."

 

 '미진'은 결국 그 다짐에 따른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고, '미진'의 많은 적들은 그녀의 죽음 앞에서 하나둘씩 모여 장례식장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미진'은 떠났어도 그녀의 사랑은 '소은'에게, 또 러시아에 있을 때의 플랫메이트이자 같은 레즈비언인 '율랴'에게 오롯이 남아 있다. 제목처럼 먼 곳에서 왔던 '미진'의 노래는 이제 '소은'과 '율랴'에게로 이어지는 것이다.

 

 "네가 다시는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배가 말했다. "네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네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소은아." 선배는 선배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를 슬프게도, 부끄럽게도 했던 목소리로. 나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선배의 얼굴이 예전처럼 환하게 빛났다.

 

 "미진, 네가 보고 싶어." 율랴는 선배 사진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말했다. "너를 자꾸만 잊어가. 이제 네 모습, 잘 기억나지 않아, 미진." 나는 선배의 이름을 부르는 율랴를 안았다. 율랴의 몸은 크고 따뜻했다. 그 품에서 나는 율랴를 안아주는 선배를 느꼈다. 율랴, 율랴,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해, 라고 내 몸속에서 율랴를 위로하는 선배의 목소리를 들었다.

 

 율랴와 내가 마주앉은 거실 바닥으로 부드러운 맞바람이 불었다. 율랴처럼 나도 선배를 잊어가고 있다. (……) 노래가 끝나고 테이프가 회전하는 소리를 잠시 듣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율랴가 나를 보며 애써 웃고 있었다.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유람선 난간에 기대서 다리와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주기로 했다. 그건 율랴와 나의 첫번째 여행이 될 터였다.

 

 너무나 순하고 맑았던 이에 대한 기록,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려오는 「먼 곳에서 온 노래」. 이 단편소설은 레즈비언들의 서사를 담담한 문체로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값진 작품이다. 2017년에는 「먼 곳에서 온 노래」과 같이 평범한 서사의 퀴어 문학을 좀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1) 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p.189.

2) 위의 책, p.201.

3) 위의 책, p.198~199.

4) 위의 책, p.201.

5) 위의 책, p.205.

6) 위의 책, p.208.

7) 위의 책, p.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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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여인 - 2007 제39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김비 지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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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괜찮다. 희망을 찾아가는 거라면.

그女의 삶은 플라스틱.

 

 

plastic

1.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2. 조형(造形)의, 성형의

3. 감수성이 예민한, 유연한 

 

 

- 5/427

 

 

" 그래, 잘 살아라. 열심히 살아.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태어난 게 우리 죄니? 

죄는 아니겠지만, 뭐 그건 팔자인 것 같기는 하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필요 없어. 그냥 사는 거지. 그래, 그냥. "

'언니, 언니도 열심히 사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우리 다 같이 열심히 살면 돼요.'

 

21/427

 

소설은 연이라는 여인(女人)과 그녀의 연인 인태. 그리고 그의 어머니 명숙.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연은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가족을 이루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 그것은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가족(家族)을 액자에 곱게 걸어 햇볕이 잘 드는 창 맞은편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체념했다. 그랬는데, 그런 그녀에게 인태가 봄볕처럼 다가와 차가운 현실에 얼었던 그녀의 마음을 녹이고 다시금 가족이라는 따스한 꿈을 꾸게 만들었다. 모든 것은 순조로운 듯 했다. 적어도 그 아이가 나타날 때 까지는.

 

변 혁. 아이는 인태의 작은 아버지가 입양을 했던 아이이다. 그는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던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아이를 입양했고, 낙선을 하자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책임지기 싫어 미국으로 도피하며 아이를 버리듯이 인태의 집에 떠넘겼다. 아이는 그 나이대의 아이들과는 달랐다. 날적부터 철저하게 홀로 생존해야했던 아이는 냉정하고 또 잔인했다. 그리고 눈썰미가 좋고 약삭빨랐다. 아이는 처음으로 연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었다. 

 

 

사건은 이랬다. 새로운 식구(식구라기보다는 불청객에 가까웠지만.)가 와 어수선한 틈을 타 인태는 연을 가족들에게 소개시키려고 했고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그 완벽한 계획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저 형은 누구에요?" 아이가 연을 바라보면서 했던 그 말. 아이는 한 눈에 연이 한때 남자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잔인한 말에 살가웠던 분위기는 얼음장보다 차가워졌고 결국 연은, 깨져버린 꿈의 파편들을 한아름 안고 선혈을 뚝뚝 흘리며 인태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연이 뛰쳐나간 뒤 인태의 집에는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쳤다. 당연하게도, 가부장적이며 보수적인 인태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었으며 그에 인태 또한 쌓였던 아픔들을 모조리 쏟아내었다. 그러던 와중, 충격으로 인태의 친할머니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 여파로 차례 차례 인태의 아버지와 인태의 어머니인 명숙이 쓰러졌고.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연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그녀만의 속죄를 하기 시작한다. 

 

 

 

.

.

.

 

" 근데 나……. 이 옷 입었을 때에도 불편했거든요. "

(중략)

"처음에는…… 남자가 되려고 애를 썼고, 그 다음에는 여자가 되려고 애를 썼고. 단 한 번도 날 인정하고, 날 받아들이고 날 끌어안고 살지 않았던 것 같아. 언제나 뭐가 되려고만 했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려고만 했지, 날…… 나 자신을 위해서, 진짜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 

"나 이제 나로 살래요. 여자가, 남자가 아니라 진짜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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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일들이 있은 후 인태의 가족들은 연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연은 그토록 바라던 꿈을 놓고 자신을 찾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개인적으로 이 엔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기 자신을 찾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그녀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소설에는 연 뿐 아니라 인태의 이야기와 명숙의 이야기도 다수 나와있으나 나는 연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그리고 바랬는지를 보다 세세하게 묘사하고 싶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놓고 그녀 자신을 찾아 새로이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아래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녀석의 눈은 여느 사람의 눈, 여느 예쁜 동물의 눈 못지 않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눈빛을 보지 못하는 걸까. 426/427

 

 

세상 사람들은 차갑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보며 나를 재단한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내 안의 나를. 진정한 나를 바라봐 주겠지. 연이 이구아나 '민수'의 맑은 눈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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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자서전 - 시로 쓴 소설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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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온은 어렸을 때 잠자는 걸 좋아했는데 잠에서 깨는 건 더 좋아했다.[1]

 

 게리온은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과업을 위해 신화 속에 등장한다. 붉은 소들과 붉은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던 그의 생에서 헤라클레스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비중이었을지 굳이 상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살해당하기 위해서 헤라클레스와 조우한 것이다.

 

 그러므로 빨강의 자서전은 게리온이 어린 시절 형과 함께 등교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 날은 평범한 날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시간순으로 배치한다면, 우리 각각each의 자서전도 가장 오래되고 인상적인 기억은 아마 형제와 또는 친구와 학교에 등교하던 때부터 시작할 것이다.

 

 게리온의 어린 시절을 구성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일상적인 형의 멸시, 식탁 위에 언제나 비어 있는 과일 그릇, 그의 빨강 날개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문 밖으로 등을 떠미는 어머니. 부모가 없는 시간을 지키는 베이비 시터. 그리고 글을 떼기도 전에 시작한 그의 자서전.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소떼를 차지하기 위해 괴물 게리온에게 화살을 쏘아 죽였고,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이 지속되기는 버거울 것임을 독자는 처음부터 예감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알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을 빨강이 아니라 노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우리가 운 좋게도 게리온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고, 그가 그 자서전의 제목을 빨강의 자서전이라고 지은 덕택에 그가 노랑이 아니라 빨강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자서전에서 그는: 돌 하나하나의 삶을 상상하고, 조롱당하고, 만들고, 사랑하고, 쓰고, 사랑받고, 읽고, 고집을 피우고, 허기지고, 먹고, 마시고, 집을 떠나고, 나이 들고, 아카시아 나무를 내다보고, 노랑수염 남자의 강연을 들으러 가고, 회의주의자와 대화하고, 샌드위치의 철학자가 되었다가, 사랑한 사람과 재회하고, 질투하고, 질투하지 않고,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이 이야기에서 그는 살해당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미움 받는 애처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다. 몇 개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사랑, 그 전, 그 후, 그 사이.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보통 날들. 사랑이 없는 순간에도 문장은 계속되며, 그 문장이 사랑하는 순간의 문장보다 덜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새로운 결말.

온 세상에 아름다운 빨강 바람들이 계속해서

불었다 손에 손잡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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