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 -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윤대녕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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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사랑은 다섯 번 이루어졌다. 개중에서 오늘 이야기할 첫사랑은 내가 처음으로 ‘받는’ 사람이었던 첫사랑이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을 때 나는 그에게로 회귀하기를 강렬하게 소망했다. 사실 그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면 언제나 나를 처음 사랑해준 사람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부터 시작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렸다. 사랑이란 귀하고 특별하면서도 가장 친밀한 것으로 여겨지니까.

 모두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옳은’ 사랑에 초점을 맞춰 말한다. 그러나 첫사랑이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만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진실로 사랑해준 순간도 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첫사랑>이 쓰인 1996년부터 지금 2016년까지도, 여전히 퀴어에게 첫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깨워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이야기가 첫사랑을 다루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를 통해 놀라운 갈망을 경험하는 이야기, 붙잡지 못할 사랑을 표현할 방법도 몰라 삼키는 이야기,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이야기.

 첫사랑은 모든 퀴어들에게 대체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해왔다. 동성에게건 이성에게건, 한 사람에게건 두 사람 이상에게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지난날을 돌이켰을 때 우리에게 그렇게 기념할 만한 사람이 있었음을, 우리는 종종 떠올리고는 한다.

 또한 한국, 일본 등지에서 퀴어의 첫사랑 서사는 ‘BL(boys’ love)’ 문화와 더불어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사회상의 북풍을 맞아 더욱 미완성된 분위기를 조성했다. 많은 스토리텔링의 시작이 그러하듯 실제가 가상을 만들면 그 가상이 언젠가는 또다시 실제에 영향을 미친다. 시스젠더 헤테로 첫사랑 서사(‘로맨스’ 장르라고 일축되는)에 비해 퀴어 첫사랑 서사가 훨씬 애틋하고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석제의 <첫사랑>은 이런 점들을 묵묵하게, 하지만 고집스럽게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첫사랑>에서, ‘너’는 ‘나’를 사랑하였다. 네가 나에게 사랑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것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명백히 너는 나를 괴롭혔고 우악스럽게 굴었고 나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우스울 만큼 솔직하였다. 사실은 나의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인 행동들도, 하얀 눈밭처럼 솔직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사랑을 주고 내가 그것을 받은 건 아니었으나, 너는 나를 사랑하였고 나는 너를 사랑하였다.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질 만큼 어리석은 중학생이 아니었다.

 

 퀴어의 첫사랑. 스스로를 모르는, 스스로를 누르는, 그러나 가슴 아프도록 정직한, 비겁한 말. “나는 빵이 싫어. 너도 싫어.”

 

 

 

 고백하건대 나를 처음 사랑해준 사람에게 나 역시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나에게 왜 이러느냐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게 매일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도- 내가 그와 사랑에 빠질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기이한 자기 방어를 했다.

 생각해 보면 분명 그가 나를 사랑하는 모습에는 그때의 내가 봐도, 지금의 내가 봐도 서툴고 갑갑한 구석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은 이렇게 됐다. 그만큼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이후로는 없었고, 나는 그에게 착하게 굴지도 않았으면서 이젠 소식도 모르는 그를 자주 떠올린다.

 사랑했구나. 그때 네가 나를.

 

 

 너는 몇 시간 전부터 그곳에 와서 담 위에 올라가 한 사람이 앉을 자리만큼 유리를 부수어 놓았다. 네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조심했는지, 왜 그런 일까지 했는지 내가 생각하는 동안 너는 문득 내 발을 받쳐 올렸다.

 

 

 

 너는 주인에게 허리를 잡혔고, 주인의 의기양양한 욕설을 들어가며 구두를 찾았고, 찾고 나서는 주인을 떠밀어 나동그라지게 했고, 구두를 들고 우리 집 대문 앞으로 나를 찾아왔다. 네가 말했다.

“미안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너에게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은 모두 네 차지였다. 나는 구두 한 짝을 건네받았고,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마디 말만 했다.

“너는?”

 너는 말없이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내게 보여주었다. 발목에서 무릎까지 시퍼렇게 멍이 든, 털이 무성한 네 다리를. 나는 돌아섰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 말이 네 입에서 나왔다.

“다음에 더 멋있는 걸 보여 줄게.”

 그 말도 너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소설의 첫머리를 ‘나’와 ‘너’가 자란 지옥에 대한 묘사로 열었다. 나는 한사코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그 지옥이 어땠는지, 그 지옥에서 만난 네가 어땠는지, 매일이 똑같았던 지옥 속에서 왜 너만큼은 기억하는지를 말했다.

 

 

 그때 맑은 햇빛을 받으며 걸어오는 너를 보았다. 너는 두껍고 커다란 외투를 입고 보기에도 멋진 모자를 쓰고 있어서, 딴 세상에서 온 부자처럼, 기차 기관사처럼, 원양어선 선장처럼, 우주인처럼 보였다.

“어디 가니?”

“너는?”

 우리는 운동장에서 마주섰다. 네가 천천히 다가왔다. 너를 보는 게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든 건 왜였을까. 네 얼굴을 비추는 노란 햇빛은 내가 가게 될 다른 좋은 세상에서 오는 것 같았다. 해를 등지고 있는 내 몸에서 뻗은 그림자는 짧고 짙었다.

“한번 안아보자.”

“그래.”

 나는 처음으로 너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너는 나를 안았다가, 안았던 팔을 풀고 외투 단추를 급하게 풀면서 말했다.

“너, 다시는 안 오겠구나.”

“그래.”

 너는 외투를 벌렸다. 나는 네 품안에 들어갔다.

“사랑한다.”

 너는 나를 깊이 안았다.

“나도.”

 지나가던 아이들이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옥의 빵 공장에서 빵 트럭이 쏟아져 나오고, 딴 세상 바다에선 고래들이 펄쩍 뛰어오르던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쓴 대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을 때 나는 그에게로 회귀하기를 강렬하게 소망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었던 나는 돌아와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 너의 기억 속으로 회귀하였다. 네가 아쉬워서, 너를 아직도 사랑해서가 아닌, 나에게 네가 첫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했구나. 헤어진 이후에서야 나도 너를.

 

 

 

 퀴어의 첫사랑. 혹은 퀴어적인 첫사랑. 모든 이상한 것과 정직한 것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제 2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것을 읽었으며, 인용은 팟캐스트 <오디오북 소라소리>의 ‘성석제-첫사랑 (1/2)’, ‘성석제-첫사랑 (2/2)’를 통하여 페이지 표기가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첫사랑> 리뷰를 요청해주신 아타(@an_chui_hatdago)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리뷰의 제목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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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가족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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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내용을 제목과 연관지어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이어붙어져 살아가는 대안가족 이야기이다. 퀴어문학리스트에 올라온 바에 의하면 작품 내에는 동성애자(레즈비언), 기혼이반, 대안가족 소재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바로 대안가족이라는 소재에 있다. 대안가족이란 간단히 말해서 혈연관계나 혼인을 통해 맺어진 관계가 아닌, 타인이 모여 어떤 공동체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을 말한다. 결혼이나 친족을 중요시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조금 흔하지 않은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는 각각 다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그로 인해 어떤 동질감을 갖고 살아가는, '프랑켄슈타인 가족'이 주인공이다.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꿀 수 있는 신약이 있다면 그 역시 영국으로 날아가 강제로라도 아내에게 먹이고 싶었다. -20p

 

책의 첫 장은 목사인 남편의 컴퓨터에서 게이포르노를 발견하고 정신과의사인 김 박사에게 찾아온 목사의 아내로 시작된다. 전형적인 퀴어포비아 부인은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냐며 김 박사에게 애원하다시피 하지만 박사는 동성애를 치료하는 신약, 이라는 말에서 어이없어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소설 속 그 부인의 역할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전조였다. 기러기 아빠였던 박사의 부인이 레즈비언 제시카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요구하는 것이다. 키워드에 적혀있었던 레즈비언, 기혼이반은 이 작지만 큰 에피소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 박사가 퀴어포비아는 아니었다. 위에 인용한 구절 바로 뒤에서 그는 자신도 다른 환자들과 다를 바 없는 세속적인 인간이구나, 하며 절망한다. 아내보다는 그 문제로 인해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질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김 박사의 가평 전원주택에 함께 갈 회원을 모집합니다. -28p

 

강렬하지만 짧았던 아내의 커밍아웃 오프닝 뒤, 가평에 있는 주택으로 떠난 김 박사를 찾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의 환자들이었다. 주로 상담을 통해 친근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해주던 그가 사라지자 긴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들은 기어코 그의 집에 찾아가기로 한다. 심각한 강박증 환자 나석, 목욕탕 트라우마를 지닌 여배우 가인과 섭식장애 환자 미아 등 다들 각자의 사연과 정신질환을 들고서 전원주택으로 향한다. 유감스럽게도,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자리를 비우게 된 김 박사를 얼떨결에 기다리기 위해 그들은 주택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 그는 새하얀 가운에 완전무결한 의사 김인구가 아닌, 불완전하지만 더없이 진실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 320p

 

김 박사의 부재에도 조경 공사를 위해 찾아온 인부들에게 자신들이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짜 가족 행세를 하게 된 그들은 점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정신질환 증세를 극복해나간다. 김 박사는 다단계 회사에 거의 납치되다시피 끌려가 자신이 있던 기득권층이 아닌, 피지배층에 속하게 되면서 무언가를 깨달아간다. 어떻게 보면 대규모 성장소설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복잡한 사연의 인물이 한 두명이 아니다보니 320페이지 짜리에 담은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읽는데 숨이 찼다. 마치 설정집을 읽는듯한 느낌. 하지만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관계가 엮이고, 사건들이 진행돼서 어색한 점은 없었다. 한 권의 소설을 마치 영화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인듯 하다. 또 동성애라는 요소가 그저 한 인물의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물론 김 박사는 충격을 많이 받았겠지만 아내가 누굴 만나든 결과는 여전했을 것이다.) 다른 소재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서술되는 것 같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켄슈타인 가족>은 정신질환자라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모여 마치 요양병원처럼 꾸려낸 대안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매우 유쾌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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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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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커다란 꽃처럼 피어올랐다. 빵공장에서 트럭들이 쏟아져나왔다. 트럭은 빵공장에서 나갈 때는 보름달 빵처럼 부풀었다가 돌아올 때는 러스크 빵처럼 납작해졌다. 길가로는 흰 머릿수건을 하고 하늘색 제복을 입은 처녀들이 소리 없이 지나다녔다. 정자나무 아래에 노인들이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빵틀에서 똑같은 빵이 찍혀나오듯이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따라오고 있었다. 매일 따라오는 네가. -첫사랑.71p

 

 성석제 작가의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에 세 번째로 수록된 작품 첫사랑. 이 작품은 작가의 실제 유년 시절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속 ‘나’는 누구나가 어릴 적 느껴보았을 법한, 뚜렷하기보단 은은하고 낯설지 않은 향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시골 촌구석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와 그런 나에게 자꾸만 마음을 표현하는, 흔히 말해 학교의 실세인 ‘너’. 하지만 너와 달리 공부만 하는 샌님에 가까운 나는 너를 자꾸만 밀쳐내기만 한다. 하지만 결국 이별의 순간, 둘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작품속 ‘나’는 저가 사는 동네를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는 이곳은 궁핍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유일한 혈육인 누나는 꼬박꼬박 나가는 공장에서 월급을 받지 못하고 매일 아침을 굶는다. 그나마 종종 학교에 나타나는 빵 실은 트럭은 급우들에게 치여 구경도 하지 못하고, 어느 날은 깡패의 말을 듣지 않아 얻어맞고 코피를 흘린다. ‘나’는 이 지옥같은 가난을 벗어날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독서실을 다닐 정도의 열의를 보이며 공부를 한다.

 

“이건 너 주려고 산 거야.”

너는 김이 나는 찐빵을 내밀었다. 너는 커다란 암소가 그려진 우유도 주문했다. 나는 허기가 져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먹지 않았다.

“먹어봐.”/“왜 나한테 이러는 거니.”

“그냥 주고 싶어.”/“난 네 부하가 아냐.”/“너 같은 부하는 필요없다.” -첫사랑.78p

 

 그런 나에게 ‘너’는 뜬금없고, 낯선 존재일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괴롭힐 만큼 덩치가 크고, 몸에는 또래들에겐 없는 털이_배랫나룻이나 겨드랑이 털 같은_있다. ‘너’는 또래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앞가림 못하는 한심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나’는 ‘너’에게 있어 특별하다. 또래들을 제지시킨 채 빵 봉지를 다섯 개 집게 해주거나_정말로 집지는 않는다_찐빵과 튀김을 사주기도 한다. 여자 목욕탕을 보여주기 위해 다리에 상처를 입고도 꿋꿋히 버티는 그 모습은 차라리 헌신에 가까울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거부한다. 그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다르다’하고 거는 자기 세뇌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다. 나는 계속 공부를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해. 남들 괴롭히기나 하는 너와는 달라.

‘너’는 ‘나’에게 있어 벗어나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바로 그 처녀의 눈에 빠졌다. 놀람과 분노와 당혹감을 한껏 떠진 눈으로 총알처럼 쏘아보내던 눈빛. 희고 검은 부분의 경계선이 지금도 손으로 그릴 수 있을만큰 뚜렷한 그 눈. 둥그란 눈. 홉뜬 눈. -첫사랑.91p

 

 그리고 ‘나’의 삶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가 평소에 흘끗거리던, 당시 또래 사이에서는 유명한 빵집 여자와 ‘너’가 정사를 치르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다름아닌 ‘너’의 예고대로였다. ‘나’가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너’는 그 여자를 먹어 보겠다는 속된 말과 함께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다. 안 가야지 하지만 결국 제일 아끼는 옷을 입고 ‘나’는 그 장소로 간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타인의 정사를 보게 된다. 그 안에는 ‘너’가 있었다. 나는 그 이후 연합고사를 칠 때까지 너를 일절 피하기 시작한다. 너 역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날 이후 매일이 똑같았다. 나는 너를 상대하지 않았고 그 처녀는 중학생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서 도는 행성과 같았다. 너는 슬픔에 잠겨 네 멋대로 했고 나는 시름에 겨워 내 마음대로 했다. 너는 연합고사를 몇 주일 앞두고 퇴학을 당했고 나는 지옥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첫사랑.91p

 

 그리고 운명과도 같은 연합고사가 끝난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너’가 교실 창밖으로 보이고, 나는 달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절정에 달한다. 성석제 특유의 문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너는 외투를 벌렸다. 나는 네 품 안에 들어갔다.

“사랑한다.”

너는 나를 깊이 안았다.

“나도.”

지나가던 아이들이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옥의 빵공장에서 빵 트럭이 쏟아져나오고 딴 세상 바다에선 고래들이 펄쩍 뛰어오르던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사랑.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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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성에 관한 보고서
임혜기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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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두가 분명한, 혹은 분명해야 하는 세계


 한국에서 최초로, 어쩌면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하는 트랜스젠더를 주요 등장인물로 다룬 이 소설은 작가 임혜기가 실제 FTM을 보고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진짜와 가짜의 구분, 여성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얼마나 남성다운지를 묘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소설의 첫 장면은 세욱이 결혼을 앞두고 성기수술을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다. 세욱은 수술을 유보하고 병원을 나서면서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그 누구도 겉으로 보기엔 완전하다. 훌륭한 남자들이었다.”(16)고 생각한다.


 한편 세욱과 결혼할 진주의 첫 등장은 이렇다. 영화배우인 진주는 해외 로케 촬영을 제대로 마치지 않고 홀로 귀국하였는데, 공항에서 트렁크 검사관에게 검사를 당하면서 성희롱을 당하고, 주위 사람들도 그녀 자신도 그녀에게서 여배우임을 의식한다. 즉 작가는 세욱에게서는 성기수술을 마치지 않은 FTM이라는 점을, 진주에게서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인 진주는 세욱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진품의 남자다. 모조품이거나 날림으로 만들어진 남자가 아니다.”(27)


 서술자의 이런 태도는 하리수 등 MTF 연예인들의 ‘여자보다 예쁜’ 모습을 통해서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닮았다. 남성은 모름지기 성기가 있어야 하며 여성은 모름지기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은 그 당사자가 지정성별대로 살든지 그렇지 않든지와 무관한 일이다.



과거는 묻어두고


 그런데 ‘완벽한 남자’가 되는 것을 FTM의 지향으로 둔다면 그 과정은 완성되지 못한 몸이고, 탈락해야 하는 무엇이고, 묻어버려야 할 과거로 치부해야 할 것이다. 소설은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세욱의 누나 세영이 그에 대해 쓴 시나리오에서 수술과 호르몬 등 관련 전문용어를 나열하는 작가의 노력은 수술대 밖, 병원 밖, 성전환 외의 삶을 배제시키는 데 기여한다. 세욱은 누가 보아도 겉으로는 완벽한 남성으로서 진주와 만난다. 둘의 만남에는 어색하거나 불편한, 성별이 혼재하는 상태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남자야? 여자야?” 헷갈리는 법이 없다.


 한편으로 성전환 수술과 진주의 과거를 은유적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보인다. “진주는 본명 양자를 생각했다가 금세 떨구어 버린다. 그 이름은 이미 그녀와 걸맞지 않다. 7년 전에 작명인에 의해 거세된 이름이었고 성형된 부분”(29)이라는 서술이 그렇다. 또 진주의 올케는 진주에게 결혼식 아침에 하는 신신당부를 한다. “절대 니 입으로 지난 일 발설하면 안 되느니라.”(56) 여기에서 지난 일은 진주가 영화감독 박선우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던 일을 뜻한다.


 올케의 당부는 앞으로 벌어질 일의 복선 같다. 그리고 이 복선을 통해 작가는 세욱의 비밀이 진주의 비밀과 같다고, 결혼하는 모든 부부가 과거가 있는 것처럼 이 부부도 그렇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진주의 연애가 과거의 일인 것처럼 세욱의 ‘남성 이전’ 역시 과거의 일이니 모두 묻어두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태도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전의 자기를 공백으로 남겨둔다 해도 말이다. 이에 대한 문제시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성애 결혼 이데올로기와 근친


 문제는 애초에 이 결혼이 성사되는 과정 자체가 사기라는 점이다. 세욱과 진주가 결혼하는 이유는 둘의 사랑이 아니다. 진주는 박선우와의 내연관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고, 세욱은 결혼을 해야 완전한 남자가 된다고 믿는 누나 세영의 말(137)에 따랐다. 세욱을 만나기 전 진주에게 계속해서 선물을 보낸 것도 세욱이 아닌 세영이었다. 결혼이 사랑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유연애가 보장된 근대 이후의 결혼 이데올로기일 텐데, 둘의 결혼은 그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어쨌거나 결혼 안에서 두 사람은 아내와 남편이라는, 사회가 보장하는 지위를 얻는다. 이성애자 트랜스젠더가 혐오에 부딪히지 않고 이성애 결혼을 하는 것은 어떤 개인에게는 궁극적인 목표이겠으나 이를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면, 소설에서 진주와 세욱이 맞이했던 단순한 해피엔딩도 거짓말일 것이다.


 한편 가족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세욱이 세영의 말을 따른 것은 둘의 관계가 보통의 남매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세영은 세욱의 첫 사랑이었고, 세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계기였다. 피로 연결되지 않은 남매라 할지라도 가족 내의 연애는 추문에 가깝다. 세영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세욱과 진주의 결혼식장이다. 세욱의 다른 가족과 친구가 한 명도 오지 않은 식장에 세욱의 유일한 가족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렇게 얼굴도장을 찍은 그녀는 곧 박선우를 찾는다.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면서.


 그녀의 시나리오에서 재현되는 세욱은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녀의 시나리오는 세욱이 세영에게 집착해서 세영이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성전환을 택한 것도 세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식이다. 그리하여 시나리오 속의 세영은 세욱에게 몇 번이나 묻는다. 레즈비언으로는 안 되느냐고. 꼭 성전환을 해야만 하느냐고. 이에 응수하는 세욱의 변론은 애처로울 지경이다.



편견과 거짓말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서 남매의 어머니의 입에서 제시되는 반전, 즉 남매 중 집착하던 역할이 세영이라는 점(258)은 결국 지나치게 정보전달에 치중해서 불편하던 세영의 시나리오 중 얼마가 사실이고 얼마가 거짓일지 궁금증을 일으키며, 작가는 이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소설에서 가장 영리한 부분이다. 세영에게 깜빡 속아넘어간 독자라면 스스로의 선입견, 즉 성소수자가 비성소수자를 끈질기게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에 부끄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살소동을 벌이거나 정서불안을 겪는 것이 세욱이 아니라 세영이며, 소설 초반에 암시하던 세욱의 과거사 또한 성전환만이 아니라 세영과의 관계를 포함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박선우와 안세영이 세욱을 ‘별종’이라거나 ‘특별’하다고 묘사하지만 또다른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박선우와 안세영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되기에 작가의 태도가 트랜스/포비아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치는 사기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인물은 작중에 없다. 작품 내내 유지되던 갈등은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해소된다.



작가와 비평에 대한 뱀발


 소설이 트랜스젠더를 소재로서 사용하였고, 이를 가볍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결국 결혼을 둘러싼 갈등, 결혼상대에 대한 편견과 거짓말에 대한 유비로 풀어냈다는 의혹은 남는다. 세욱과 진주 부부 사이의 갈등이 불가사의하게 가볍게 해소되는 것은 아쉽다. 또 소설의 마지막에 진주가 어째서 아이들과 혼자 있는지, 굳이 세욱을 그 장면에서 배제해야 했는지도 문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 현재까지 FTM 정체성을 외면하는 한국 문학과 컨텐츠 제작자들이 그 이미지를 남장여자 혹은 말 그대로 여자 몸에 남자의 영혼이 들어간 판타지로만 활용하고 소비하기에, FTM 인물이 주요하게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만하다.


 임혜기 작가는 이전에 게이 아들의 어머니 시점으로 단편을 쓰기도 했다. 한국문학에서 성소수자, 그 중에서도 가장 적게 이야기되는 FTM을 중심인물로 다룬 소설을 90년대에 썼다는 점, 그리고 그 인물이 아주 평면적이지 않고 온전히 도구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성실하고 짜임새 있게 쓰인 소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결말 이후 이어지는 비평은 소설에서 드문드문 거슬렸던 등장인물의 생각 혹은 망상을 기정사실로 삼아 분석하고 있으니 권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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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01  

찰리가 내게 보낸 편지에 그가 등장했을 때 나는 미묘한 흥분에 휩싸였어. “Either you call me Patrick or you call me ‘nothing’” (패트릭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면 아예 부르지도 마.) 낫씽. 재밌는 별명이잖아. 관련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야. 별명을 부른다는 건 이름과는 다른, 특정한 의미로 누군가를 상정하는 행위인데, 말하자면 그의 의미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어. 패트릭은 그 별명을 꽤나 피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되어버렸지. 패트릭의 별명이 내게 어떤 복선처럼 느껴졌다면 조금 뻔한 말처럼 들리려나. 찰리의 목소리로 듣는 패트릭은 계속 자신의 의미를 찾아서 부유하는 종이배 같았으니까.

 

 

 

  패트릭에게 비밀을 지켜야하는 것이 슬프지 않느냐고 물었어. 패트릭은 전혀 슬프지 않다고 했어. 적어도 이제는 브래드가 사랑

하기 위해 술에 취하거나 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더군. _P.80

  키스 외의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어. 키스도 오랫동안 했던 것은 아니었어. 시간이 조금 흐르자, (...) 흐릿하고 초점을 잃었던 패트릭의 눈빛이 사라졌어. 그리고는 울기 시작했어. 그리고 브래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뒀어. _p.253

 

 

02

그리고 난 내 예상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 누구나에게 존재하잖아.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확인하는 순간이. 어떤 순간에만 연인에게 사랑을 확인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패트릭은 그에게, 자기 자신에게, 세상에게 자신이 무슨 의미를,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닌 존재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리고 자신이 정말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일 수 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둘러싸고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의 너와 나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패트릭을 보면서 이전의 나를 떠올려 보기도 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가를 그 누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던 때의 시간들. 아마도 난 그때보단 아주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기도 해. 지금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찰리와 같은 친구가 패트릭 옆에 있다는 게 다행이구나 싶기도 했어. 왜 사람들은 위로에 큰 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를 위로하는 건 정말 시시콜콜한 것들이잖아. 언젠가 좋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오는 순간이나 고급스럽진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나 내 마음을 명쾌하게 표현한 문장 같은. 패트릭의 입맞춤에도 찰리가 담담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제대로 된 위로의 방법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가끔은 누군가와 맞닿은 채로 서로의 체온을 묵묵하게 또는 격렬하게 나누는 것이 세상 제일 큰 위로가 될 때도 있으니까. 찰리, 그 아이가 이 간단하고도 까다로운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정말 다행이지, 아무튼.

 

03   

패트릭이 록키 호러 픽처쇼 마지막 공연에서 ‘I’m going home’ 넘버를 부르면서 미소를 지었다는 찰리의 말에 나는 살짝 울컥해버렸어. 그런 생각할 때 있잖아. 사람은 왜 꼭 일상과 멀찍이 떨어진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어야만 나를, 세상을, 아니 그 어떤 것이든 바로 볼 수 있는 걸까. 패트릭의 그 마지막 웃음이 그 의문에 대한 대답같이 느껴졌거든.  ‘온갖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범벅이 된 나를 마주해야만 내가 진짜 여기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 라는.

 

“We Feel Infinite.”  덧붙이자면, 찰리가 패트릭, 샘과 함께 느꼈다던 ‘무한한 자유’가 바로 그 순간일 수도. 내가 나를 마주하는, 그런 순간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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