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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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루카다. 내가 딸기인 것처럼. 오직 하나뿐인 진짜 이름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너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수잰 베가의 노래 <Luka>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조금 궁금해졌다. 혹시 복음서를 지은 사람 이름인가. 누가라고도 루가라고도 루크라고도 한다는, 제법 헷갈리는 그 이름 말이다. -루카. 117p

 

윤이형 작가의 단편 ‘루카’는 제 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두 게이의 사랑과 이별을 담담한 어조로 엮어낸 작품이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만난 나 ‘딸기’와 ‘루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들 중 하나는 두 인물이 만나기 전 겪은 하나의, 각기 다른 커밍아웃이다.

커밍아웃은 힘들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만큼 고민되고 괴로운 게 없다. 아무리 내게 있어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도 그가 호모포비아일 경우 커밍아웃을 하는데 있어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그런 커밍아웃 중에서도 가족에게 하는 커밍아웃이라면? 가장 가깝고도 믿음직한 존재인 가족.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 단순한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은 관계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해 주어야 할 존재라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만약 그런 그들에게 거부당한다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동성애자들을 침묵하게 한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그렇게 몇 시간쯤 걸었을까. 그는 갑자기 오래전에 죽은 자신의 아들, 너를 떠올렸다. (중략) 그러자 너에게 소리친 기억이 떠올랐다. 계속 소리를 쳤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이 없어지고 목소리가 없어지고 몸 전체가 녹아 없어질 것 같았으니까요. 아마도 어떻게 그렇게 모두를 속일 수 있느냐는 말을 했을 겁니다. 가족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너 자신을 속이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루카. 142p

 

‘딸기’ 와 ‘루카’ 는 각각 서로를 만나기 전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상태이다. 다만 그 형태가 조금 다른데. ‘딸기’가 스스로의 의지로 인한 커밍아웃을 했다면, ‘루카’의 커밍아웃은 사실상 아웃팅에 가까운 커밍아웃이었다. 하필이면 그의 아버지는 교회의 목사였다. 루카는 자신을 부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모든 게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하기에는.

 

이후 글의 시간은 ‘딸기’와 ‘루카’의 이별, 그리고 ‘루카’의 죽음 이후 그의 아버지와 만난 ‘딸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아버지는 말한다. ‘루카’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망가져버린 자신이 ‘루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딸기’는 여기서 분노를 느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솟구치는 화를 아무래도 누를 수가 없었다.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는 것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침묵의 대가를 치르고 너라는 존재를 복원하려 하는 그가. 그를 그럴 수 있게 하는 힘이. -루카. 150p

 

작가는 <루카>를 두고 말한다.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그들은 사랑을 했다. 평범한 사랑을 했다. 그걸 평범하지 않을 것, 종내에는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여 그를 밀어내고 후에야 어떻게든 그 흔적이나마 되찾으려 하는 발버둥의 의미가 ‘딸기’를 화나게 한 것이다.

첫 커밍아웃을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는 ‘딸기’가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커밍아웃을 한 ‘루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었고, 앞으로 걸어야 할 사람으로서, 이별 후 루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지 아니었을까. 화를 내어서, 자신과 ‘루카’를 막았던 모든 것에 분노함으로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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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기담
임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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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퀴어 무성애자

 

 어제 퀴어문화축제에서 북적이던 에이로그 부스가 아직 눈에 선하다. 거기에 힘을 얻어 이 소설을 나의 정체성과 가깝게 읽으려 하니 간단하게라도 젠더퀴어 무성애자에 대해 쓰고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해야겠다.

 

 먼저 젠더퀴어는 자신의 지정성별에 관계 없이 자신을 여자/남자 중의 하나가 아닌 다른 성별로 정체화한 사람, 혹은 여자/남자 중 어떠한 성별로도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이다.[1] 뉴트로이스, 젠더플루이드, 안드로진 등 다양한 하위분류가 있다.

 다음으로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2] 무성애자는 로맨틱지향성[3]에 따라 나뉘며 로맨틱지향성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끌리는 양상을 성 또는 젠더에 기반하여 나타내는 용어 혹은 그 수단’을 말한다.[4] 그 유무와 대상에 따라 무로맨틱과 이성/동성/양성/범성로맨틱으로 나뉘며, 후자는 연애나 결혼을 지향할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에 성애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국어에서 성애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유성애 중심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번역어를 찾기 어렵다.

 

 나는 뉴트로이스[5] 범성로맨틱 무성애자이고, 이렇게 생각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입밖으로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이 어색하다. 각각의 단어를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고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분명 레즈비언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데. 참 오래 디나이얼 젠더퀴어로, 디나이얼 무성애자로 살았다.

 한편 픽션에서 좋아하거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등장인물이 있더라도 지정성별에 따라 여자와 남자로 구분되기 일쑤이므로 그 인물을 젠더퀴어라고 말하기 어렵다.[6] 또 한국문학에서는 그 인물의 정체성이나 지향과 상관없이 성애묘사가 생략되어 있으므로 콕 집어 무성애 서사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랑이 당연히 성애로 이어진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으므로, 성애묘사가 없더라도 로맨틱 무성애자로 읽기보다는 동성애/이성애/양성애로 읽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리뷰에서 다룰 소설 <나비길> 기병대와 양성구의 관계 또한 동성애를 염두에 두고 쓰였으리라. 하지만 기병대와 양성구가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털어놓고 가까워지는 장면에서도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의 목격담에서도 성애 묘사가 전혀 없다. 호모포비아 혹은 성 엄숙주의를 이유로 쓰이지 않았을 개연성이 분명히 있으나 이 글에서는 로맨틱 무성애 관점으로 읽고자 한다.

 

 

나비선생과 이발사의 사랑

 

“나는…… 세상에서,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가 가장 어렵습니다. 인간의 언어, 인간들의 말에 항상 지독히도 서툴렀어요. 난 아무리 해도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고, 그들은 또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나이들어서야 깨달았는데, 사실은 내가 불구였더군요. 잘못된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어요. 물론 애당초 불구인 탓에, 내겐 세상 사람들의 언어를 배울 능력 역시 없었습니다. 결국 난 입을 닫고, 내 언어를, 내 식으로 말하는 법을 영영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 불구가 아닌 척 세상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려면, 그 길 말고는 달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그 말씀,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 역시 인간의 말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또 두렵습니다.” (pp.86~87)

 

“호랑나비는 항상 정해진 길만 따라서 날아다니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걸 가리켜 ‘나비길’이라고 부릅니다.”(p.92)

“이발사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비길이라. 그는 지금껏 자신의 삶 또한 호랑나비처럼 빤히 정해진 길만을 따라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한 발짝이라도 벗어날까 두려워, 스스로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외면하려 애쓰면서, 세상이 정해준 길을 위태위태하게 따라가야만 하는 삶.”(p.93)

 

 앞서 인용한 부분은 소설의 중반, 사건 이전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계기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인간의 언어로부터 괴리감을 느낀다는 두 사람의 고백과 스스로 나비처럼 정해진 길만 따라왔다고 생각하는 양성구의 심리는 어떤 퀴어 서사에 들어가도 위화감이 없다.[7]

 양성구는 장교 이발을 맡았던 군대에서 일병시절 친해진 중위에게 고백하는 편지[8]를 썼다가 그 편지를 다른 장교들이 보는 바람에, 고백했던 상대에게 경멸당하고 옆 중대에서 근무하던 고향 선배에게 구타당한 후 군인병원 정신과로 호출되어 검진을 받고 이후 보직이 변경되었다. 그것이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이겠지만, 한편으로 양성구는 인간들의 말에 ‘항상’ 서툴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을 어떤 부분에서 ‘불구’라고 여겼는지 그는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으며 서술자 또한 양성구와 기병대가 공유하던 비밀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양성구를 양 마담이라고 부르며 희롱하는 나수칠의 태도(p.64~66), 기병대와 교감을 나누고도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며 외쳐야 했던 ‘나는. 남자다.’라는 구호를 공포감으로 떠올리는 양성구의 모습(p.93)이 성별 이분법적인 이성애 중심 사회가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작태와 같으면서도, 양성구에게서 젠더퀴어적인 모습이 관찰되는 것으로도 읽힌다. 가는 곳마다 나비가 따르고 나비를 연구하기도 하는 중학교 생물선생 기병대에게 ‘나비선생’이라는 별명에 더해 ‘변태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은 후 언제부턴가 ‘그의 걸음걸이, 목소리, 제스처, 웃을 때의 버릇, 손발짓에서 드러나는 다소 여성적인 요소 또한 변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p.101)는 것 또한 그렇다.

 한편 마을 주민들이 기병대와 양성구에 대해 수군거리며 나누는 목격담은 모두 손을 잡고 있었다든지, 학교 과학실에 들어가 한참씩 나오지를 않는다든지, 이발소 안에서 껴안고 있었다든지 하는 것밖에 없다(p.102~103). 즉 마을 사람들은 둘이 자주 어울리며 남들을 의식하는 모습에 의심을 품고 수군대지만, 성애 묘사는 단 한 단어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양성구는 사실 여부를 따져 묻는 아내에게 둘이 단순한 말벗 관계일 뿐이라고 강조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에서 매장될 것을 두려워하며 기병대를 멀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런 묘사만 보면 둘의 관계는 로맨틱 무성애 관계로 보인다.

 

 

로맨틱 이후, 침묵하는 혐오

 

 이 소설은 기병대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들이 자살한 그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3년이 지난 어느 날 양성구가 나비에 이끌려 둘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것 같은 기병대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으로 맺는다. 양성구는 ‘힘없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다. 서술자는 기병대가 자살한 이유를 체육대회날 모두 앞에서 학부모이자 동네의 자율방범대장인 나수칠에게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얼굴이 끔찍하게 부어오를 정도로 얻어맞았는데 누구도 그의 편을 들지도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았다는 점이라고 암시한다. 기병대가 지정성별 남성임에도 남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동성인 양성구와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괴롭힘을 당해 흙투성이가 된 학생을 씻기던 모습을 찍은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정신지체 장애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추문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모두가 목격한 폭력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대신 피해자가 사라지기를 바라며 일단락되고, 피해자는 그리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전체 소설의 내용이다.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침묵이 오히려 가장 강한 혐오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은 소문이 퍼져 나가는 동안 누구도 기병대에게 정말로 학생을 성추행했느냐고 묻지 않았고, 말이 아닌 분위기로 ‘차라리 자기 쪽에서 먼저 알아서 정리하고 더는 소리소문 없이 떠나주길 바’랐다. 군대에서 편지 한 장 이후로 보직 변경을 당한 양성구의 경험은 양성구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침묵하는 혐오자가 되는 법을 배웠다. 양성구에게 쓴 편지에 기병대는 이렇게 썼다. ‘저 자신을 사랑할 힘을, 용기를 잃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도와주세요. 잠시만이라도, 곁에서 저를 지켜주십시오.’ 양성구는 이를 외면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도 그 말을 기억한다. 이제 그의 트라우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배신한 경험이 더해졌다. 스스로 정체화하지 못하고 정체화를 지지할 기반이 없으면 혐오에 대응하기 어렵다.

 

 

어떤 사이

 

 소설 속에서 기병대가 겪었듯 “이 정신병자 새끼. 너 같은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려야 해.”(p.108)라며 죽일 듯이 폭력을 휘두르는 일과 무성애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다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쓰인 폭력은 지정성별 남성 동성애자에게 역사적으로 계속되었다. 소설의 서술 방향은 둘의 관계보다도 소규모 공동체에서의 소문과 폭력을 다룬 인상이 짙으며,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서술에서 전혀 감춰지지 않았다. 둘이 시스젠더 남성 게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텍스트에서 보이지 않는 동성애를 상상하기보다 보이는 관계를 읽어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유성애를 표현하고 싶으면 유성애를 제대로 묘사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유성애가 보이지 않으면 무성애도 보이지 않으니까.

 처음부터 비극을 예정하고 달려나가는 서사여서 로맨틱 무성애 소설로 추천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지만, 기병대와 양성구가 서로 사랑하는 단 몇 페이지 때문에 여러 번 읽었다.

 

 

 

 


[1]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블로그에서 인용했으며 트랜스젠더binary trans와 젠더퀴어non-binary trans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다양한 하위분류 용어정리를 다음 링크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http://blog.naver.com/gender_voyager/220504062266

[2] 에이로그 팀, 『에이로그(A-LOG)』(2016), p.8

[3] 무성애 이론은 성지향성과 로맨틱지향성이 독립적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유성애자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로맨틱지향성과 성지향성이 일치하는 이성로맨틱 이성애자, 동성로맨틱 동성애자가 있는 한편 양성로맨틱 동성애자나 무로맨틱 이성애자인 유성애자도 있다. 에이로그 팀, 앞의 책, p.23~24

[4] 에이로그 팀, 앞의 책, p.15

[5] <여행자> 블로그 용어정리 링크에서 설명하는 것 중 ‘신체 부분 중 성별 관념과 관련 있는 곳을 전부 없애고 싶어하는 경우’

[6] 예를 들면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은 매일 변하는 몸을 지녔는데, 어디까지나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설정이다. 언론에서는 “남주인공만 21명”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매일 몸이 변했다면 젠더플루이드일 수도 있을 텐데, 서사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7] 양성구가 스스로 불구라고 말하고 기병대가 그에 공감하는 등 일련의 장면은 퀴어를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그려내는 편향적 시선과 닿아 있어 아쉽기도 하다.

[8] 실제로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으로 유추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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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10
재닛 윈터슨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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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에 대한 맹목적 몰입, 그것은 평범한 일상을 파괴한다. 주인공 ‘지넷’의 엄마가 종교와 신에 몰입할수록, 그녀 자신의 일상은 물론이거니와 지넷의 일상마저도 촘촘히, 견고하게 파괴된다.

  그녀는 지넷의 학교 입학을 거부하려 했다. 지넷에게 [제인 에어]의 결말을 자신의 마음대로 바꾸어 들려주었다. 언젠가 집으로 찾아온, 지넷의 친엄마를 매몰차게 쫓아냈다. 학교는 ‘그릇된 욕정’으로 가득한 ‘사육장’이기 때문에, [제인 에어]의 원래 결말은 성경의 교리와 맞지 않기 때문에, 지넷은 예수가 자신에게 보내준 아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신이다. 의심을 제외한 자신의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버린 삶을 사는 이다. 

 

 

“오렌지야 말로 유일한 과일이지.” / “오렌지를 먹자꾸나.”

 

 

  지넷의 엄마는 지넷이 일생의 위험 혹은 정신적인 혼란을 겪을 때마다 오렌지를 권한다. 그녀는 지넷이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을 오렌지의 이름, 신의 이름으로 봉쇄해버린다. ‘오렌지’는 교회와 성경, 신에 의해 나뉜 선과 악, 친구와 적과 같은 이분법적 세계다. 지넷의 엄마는 그 자신이 오렌지이기도 하고, 오렌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지넷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의심을 철회하고, 공고히 하기를 반복하지만, 그것은 결국 ‘오렌지 껍질로 만든 이글루’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하루는 그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 / “사랑스러운 그대에게 하트 모양 사탕을.”

이렇게 말하고서 껄껄 웃은 것이다. 그날 나는 신경질이 나서 내 강아지를 질식시킬 뻔했고, 당황한 어머니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다. 사랑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러나 나는 어린 소녀이고, 그러므로 나는 사랑스러웠으며, 여기 그걸 입증하는 사탕이 있었다. (P.124)

 

내가 선교사가 될 운명인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이후로 얼마 동안 나는 남자 문제는 제쳐 놓고 성경 읽기에 집중했다. 마침내는 나도 다른 모든 이들처럼 사랑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년 뒤, 무심코, 나는 사랑에 빠졌다. (P.133)

 

 

  생전 처음으로 성적대상화를 경험한 지넷은 자신의 소녀성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자신 주위의 남성, 후에는 남성성의 본질까지 의심을 거침없이 확산시킨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을 경험할 가능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신을 사랑하게 되었듯이 당연히 누군가와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지넷은 ‘멜라니’라는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천천히, 혹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말이다.

  하지만 지넷과 멜라니의 사랑은 ‘오렌지의 벽’에 가로막혀 버린다. 두 사람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 그리고 지넷의 엄마 모두 두 사람의 사이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지넷과 멜라니는 ‘사탄의 주문에 빠진’, ‘욕망의 죄악에 빠진’ 소녀들이 되었다. 목사와 교인들은 두 사람이 ‘고통에 빠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과 그들의 사랑에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부산스럽게 부엌을 빠져나왔고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기 위해 계단 위에 섰다.

“난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너를 사랑해.

나는 웃어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멜라니의 눈이 잠시 흐려졌다.

난 모르겠어.” (P.175)

 

 

  지넷과 멜라니가 사랑을 나누던 이 장면은 꽤나 선명한 복선이었다. 신, 교회,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에 멜라니는 항복했다. 그녀는 지넷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지라는 어른들의 통보에 동의했고, 후에는 직업군인인 남성과 결혼하게 된다. (후에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났을 때에도 멜라니는 지넷과의 사랑을 아예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지넷이 느끼는 무력감과 허무함은 문장 밖으로까지 절절하게 전달될 지경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신만큼이나 특별하다고 믿었던 지넷은 저항과 순응을 반복하다 결국 '히브리인'이 되기로 한다. 목사의 말에 따르면 ‘히브리인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개하겠느냐는 목사의 마지막 물음에 지넷은 그의 눈을 마주하며 대답한다. “아니요.”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며, 자신의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결국 신의 음성이라는 것을 지넷은 깨닫게 된 것이다. 지넷의 부정은 오렌지만이 과일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선한 자가 되기보다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히브라인이 되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 그리고 그 선언을 시작으로 지넷을 둘러싸고 있던 오렌지 이글루는 비로소 격파된다.

 

 

시간은 둔화제다. 사람들은 잊고, 지겨워하고, 늙고, 떠난다. (...) 세월은 매듭으로 가득한 끈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를 존중하는 것, 매듭을 더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P.293)

 

 

 

“와서 이것 좀 봐라, 전자 오르간이다.”

(...)

“피아노는 어떻게 하고요?”

“아, 요즘은 모두 전자 쪽으로 바꾸는 추세다. 난 시류를 따라가는 것이 좋아.”   (P.271)

 

 

 

“결국…….”

어머니는 철학적으로 말했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니까.”   (P.285) 

 

 

  악마의 자식을 키울 수 없다는 엄마를 떠나 자신 나름의 삶을 꾸려나가던 지넷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엄마와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 그리고 교회를 찾는다. 크리스마스였다. 지넷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지나간 시간만큼 늙어버린 지넷의 엄마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져있다. 지넷처럼 그녀도 자신의 오렌지 껍질 이글루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교회의 비리라던가, 목사의 간통이라던가, 선교 사업의 실패라던가) 그 사건들은 지넷의 엄마에게 어떤 매듭이었을 것이고,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넷의 존재 자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듭은 시간 속에서 오렌지의 세계를 차츰차츰 으깨고 부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딸처럼 마침내 입 밖으로 꺼내게 된 것이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라고.

 

  지넷과 그녀의 엄마는 꽤나 오랜 시간 거짓말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서 자신의 삶과 시간 속에 새로운 매듭을 만들었다. 자신의 존재 의의를 조금씩 바로 잡게 되었다.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신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거짓말이, 결코 거짓말이 아닐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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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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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미스터리의 대가 셜리 잭슨의 마지막 작품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기괴하고 매력적이다. 읽는 내내 머릿속을 아스라이 휘감는 이야기의 재미는 마치 작품 속에서 살해 도구 등으로 등장하는 ‘비소’나 독극물과 같은 치명적인 위험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녀의 다른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이나 ‘제비뽑기’등과 같은 다른 작품에서도 목격할 수 있는 유려한 장점,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악의와 광기를 짚어내고 그것을 매력적인 서사와 분위기로 연출하는 능력은 이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소설이 그녀의 다른 소설보다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 메리캣과 메리캣의 언니인 콘스턴스가 공유하는 지독히도 폐쇄적인 연대의 공간 때문인데, 이것은 의미심장하게도 퀴어 서사로 읽히거나 혹 보다 가벼운 ‘백합’ 장르로 읽혀지는데 충분한 여지를 제공한다.

소설 속 메리캣과 콘스턴스는 6년 전 설탕 속에 든 비소로 가족 모두가 독살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은 이는 세 사람, 바로 메리캣과 콘스턴스 그리고 사건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망가진 나이 든 줄리언 삼촌뿐이며 쥐를 잡기 위해 비소를 사왔고 요리를 했기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받은 콘스턴스는 증거부족으로 풀려난다. 작품은 블랙우드 가의 독살 사건 이후 살아남은 대저택의 두 자매와 삼촌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이는 시종일관 열여덟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어린아이와 같은 어조로 이야기하는 메리캣의 서술로 쓰인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메리캣의 유아적인 내면과 이야기의 기괴함을 극대화하여 독자들의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작중에서 콘스턴스와 메리캣은 ‘독살자’와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잔인함이 뒤섞인 박해를 받는다. 콘스턴스는 외출에 대해서는 엄두도 못 내고 오직 메리캣만이 일주일에 두어 번 식료품 등을 사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다. 바깥으로 나오는 메리캣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 또한 삐뚤어져 있다. 자신들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오는 날선 증오와 두려움의 화살 속에 메리캣의 내면은 그들을 향한 분노와 혐오, 그리고 자신의 공간에 대한 갈망으로 얼룩진다.

 

그녀들은 지속적이고 집단적으로 형성된 혐오로 인해 계속해서 고립되어 있는데 이 고립의 균열을 깨기 위해 낯선 인물인 찰스가 찾아오고 그로 인해 메리캣이 영원히 머무르고자 하는 언니와의 세계는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저택 너머 바깥에서 찾아온 찰스에게서 콘스턴스는 어렴풋이나마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같은 것을 목격하는데 비해 메리캣과 찰스의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메리캣에게 있어 찰스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달나라에 부합하지 않는 불필요한 존재였으며 블랙우드 가의 막대한 재산과 저택을 노리고 콘스턴스에게 접근한 찰스에게 메리캣은 매우 거치적거리는 어린애였을 뿐이었으니, 이는 각자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따로 존재하지만 콘스턴스라는 교집합을 사이에 둔 채로 기싸움을 벌이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결국 일종의 저주가 오가는 신경전 끝에 찰스의 파이프로 인하여 저택에 거대한 불이 나고 줄리언 삼촌이 죽게 되면서 메리캣은 콘스턴스와 함께 다시 또 영원히 걸쇠를 채우고 마을 사람들이 명명한 ‘마녀’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대한 대저택이 화염으로 휩싸인 순간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한 날의 축제와도 같은 것처럼 묘사된다. 그들은 제각기 소리를 질러대며 그들이 만들어낸 마녀를 사냥하기 위해 대저택을 침범하여 부수고 큰 소리로 웃어댄 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매를 정상적인 여성들로 교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중세 마녀 화형식의 광기를 연상시킨다. 이후 삼촌의 죽음과 대저택의 화재, 찰스의 도망 등 일련의 사건으로 현실과 완전히 결별하기로 한 메리캣과 콘스턴스는 그토록 메리캣이 원하던 고립의 장소에 어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는 이제 더 이상 그녀들의 귓가에 울리지 않으며 완벽하게 고독해졌을 때 자매는 최고의 안정과 행복을 맛본다.

 

그들의 폐쇄적인 연대는 오로지 서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소설의 초반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마을 사람들로 표현된 다수가 소수에게 무차별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성과 잔인함에서 기인한다. 소설의 말미 부분에 이르러 ‘진짜 마녀’로 추앙받게 되는 두 자매는 인간의 타인에 대한 혐오가 두려움으로 탈바꿈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비로소 목격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녀 자매가 자신들의 저택을 침범하고 부수었다는 이유로 저주를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들이 잠군 문 바깥에 음식을 가져다놓는 의식을 반복한다. 다수가 소수의 고립과 특별함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광경은 언뜻 보면 짜릿한 권력 뒤집기의 상황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실상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 자매는 모욕과 조롱, 폭력을 면전에서 받게 되는 일은 더 이상 겪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집단적 배타의 대상이며 마을 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보이는 두려움은 그 혐오와 맥락을 같이한다. 자매를 특별하고도 두려운 존재로 대상화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혐오하고 있는 것에 다름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그러진 내면의 메리캣은 혐오가 만들어낸 완전해진 고립 속에서 더없이 만족스러워하고 행복해한다. 이는 결코 그녀를 꾸중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메리캣도 참.”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받아준, 자신의 살인마저도 뒤집어쓰고 나선 콘스턴스라는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을 고립의 행복이다. 여기서 메리캣의 서술방식이 어째서 어린아이의 말투를 취하고 있는가가 예측가능해진다. 메리캣은 자신을 미워하고 꾸중하고 혼내는 이들은 달나라에서 제외시키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논리를 가진 더없이 자기중심적 자아의 어린아이다. 블랙우드가의 가족들도, 마을 사람들도, 찰스도, 메리캣을 미워했고 혼냈고 끊임없이 배제시켰다. 그 가운데 자신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과 두려움이 포함된 관용을 보여준 것은 언니인 콘스턴스 뿐이다. 그랬기에 콘스턴스는 살아남았다. 이같은 사실은 사랑이 빠지고 오직 두려움에서 비롯된 이해는 결국 온전치 못한 행복과 고립을 낳을 뿐이며 그것에서 만족할 수 있는 행복감이라는 것은 상대에 있어서든 본인에게 있어서든 결국 끔찍하도록 유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이야기는 소수에게 행하는 집단적 폭력의 광기와 잔인함에 대해 메리캣의 입을 빌려 분노 섞인 목소리로 토해내면서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부분적인 체제 전복성을 서사와 결말로써 동시에 말하고 있다.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어떤 이에게는 퀴어니스(queerness)와 소수자담론을 포함한 서사로, 어떤 이에게는 끔찍하게 기괴하고 음울한 두 자매의 ‘백합’적인 스릴러 서사로도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소설 속에서 살인의 도구로 쓰인 비소와도 같이 치명적이고도 위험한 재미를 갖춘 작품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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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시다시피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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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운영의 「젓가락여자」에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인 여성의 이름은 김미경, 공대 출신인 남편과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독서토론회의 회장이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소설가다. 본명은 양영은, 필명은 서진. 주인공의 선배였고, 총여학생회의 편집부장으로 있었으며 주인공과 함께 사 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다시 전문대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스페인에 머물면서 먹었던 음식을 주제로 산문집을 냈으며, 자신의 소설집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줄곧 주인공의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이 소설에는 두 인물의 인적사항과 함께 팽팽한 감정도 함께 들어 있다. 이를 두고 「젓가락여자」가 수록된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의 말미에 붙어 있는 「엄마가 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대결 구도(p.263)’나 ‘선배의 배신과 후배의 복수 이야기(p.263)’, 나아가 ‘자기모독(p.268)’의 서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이 작품을 디나이얼 레즈비언의 강렬한 자기고백처럼 읽을 수도 있다.

 

 미경과 영은은 학교 앞 지하민속주점에서 처음 만난다. 젓가락 끝으로 김칫국물을 찍어 그림을 그리고 있던 영은은 별안간 고개를 들고 ‘깃발을 꽂아, 깃발을!(p.83)’이라고 소리친다. 그걸 보고 미경이 영은에게 말을 걸면서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미경은 둘이 마주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날 그 술집에서 우리는 서로 뭔가 통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거지.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것처럼. 언니는 나를 찍고, 나는 언니를 찍고. 그런 거 알죠? 전기가 통하는 거. 정말 전기가 짜릿하게 올라오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죠.

한참 동안을.

그래요, 그때 우린, 뭔가 통했죠. 그래요. 통했어요.

 

 몇 번이나 서로가 통했음을 강조한 뒤, 미경은 '아휴, 이 사람들은 어째 이런 얘기에 더 신 나 해. 꼭 교생 첫사랑 얘기 듣는 여고생 표정이잖아(p.88)'라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이건 미경의 첫사랑 이야기다. 이어 그녀는 '멋있다구요? 멋있죠? 그래요 멋있어요. 나도 완전 반했잖아. 언니가 묘하게 사람 끌어당긴다니까. 남의 기운을 자기 쪽으로 싸악 끌어모으면서 단번에 잡아채.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지. 그러니까 매력이랄지 마력이랄지, 암튼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p.88-p.89)'라는 말까지 한다. 그녀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통했고, 또 반했다고. 이후 둘은 함께 총여학생회 활동도 하고 동거도 하면서 '딱 붙어 다녔다(p.91)' 그러나 곧 둘은 좋지 않게 끝을 맺는다. 영은이, 서진이 미경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비밀조직에 미경을 가입시키는 날 영은은 탈퇴를 선언한다. 미경은 거듭 배신이 아니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독서토론회 회원들과 독자에게 말하고 있지만, '조직 입장에서 당연히 배신이지. 나한테도 배신이고. 타이밍 한번 절묘했잖아? 나를 조직 안으로 들여놓은 때, 언니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걸 그냥 공교롭다고만 볼 수도 없고(p.95)'라며 본심을 저도 모르게 털어놓는다.

 

 이러한 미경의 속내가 제대로 드러나는 건 둘이 재회한 후다.

 영은, 혹은 서진 앞에서 미경은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을 줄줄이 늘어놓는데, 그 행동이라는 것이 묘하기 짝이 없다. 영은의 첫 책이 나온 날 미경은 '괜히 서점 기웃기웃하면서 사람들이 좀 사가나 살펴보고, 언니 책 잘 보이는 데다 얹어놓고(…) 선물할 곳 있으면 다 언니 책으로 했(p.98)'으며 '학교 사람들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언니 책 나왔다고 알려주고(…) 인터뷰 기사도 오려서 스크랩도 해놨(p.99)'다고 말한다. 두 번째 책이 나온 뒤 미경은 조심스럽게 영은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영은은 '김미경?(p.99)'이라는 말로 한 번에 미경을 사로잡는다. 미경은 이에 '언니가 아는 사람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던 그 흔한 미경이들 중에서, 내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단박에, 이 김미경이를, 알아내주다니(p.99)'라며 감격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은근슬쩍 영은을 떠본다.

 

(…) 그런데 언니 결혼은 안 해요? 사귀는 사람 없어요? 왜 없겠어. 남자들이 줄을 섰겠지. 그런데 언니 아직 거기 살아요? 녹번동인가? 그쪽 언저리 지나갈 때마다 언니 생각했는데. 혹시 언니가 장이라도 봐서 지나가지는 않을까 하고.

 

 이외에도 미경은 '언니의 소설은 내가 다 따라 읽었으(p.102)'며, '인터뷰 기사랑 평론이랑 어디 강연 나가서 한 말까지 다 알고 있(p.102)'고 '또 개인적으로 취향이랑 성격이랑 이력이랑 다 잘 알고(p.102)' 있다고 자랑(?)한다. 지나치게 집착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경이 영은에게 이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 후우. 언니는 그 좋은 시절 보내고, 나 막차 태우고 도망가고. 나 배신하구 가서 언니는 소설가 되구 나는 인생 꼬이구. 뭐 특별히 꼬인 건 없지만.

언니가 배신이 아니라면 아닌 거죠. 물론 저도 언니가 배신했다고 생각 안 해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봤다는 거지. 언니 졸졸 따라다니더니 배신당해서 안쓰럽다고. 나더러 언니 추종자래. 추종자가 배신을 당했으니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이지. 아니지, 연도 없는 끈을 붙들고 있는 거지. 그게 멍충이지 뭐야. 언제 적 일인데요. 저, 다 잊었어요.   

 

 물론 미경은 잊지 않았다. 그 일과 함께 영은을 만난 뒤 모든 일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잊지 않은 채 그녀는 영은의 주위를 맴돌았고, 마침내 재회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 언니네 집에 간 적 있어요. 언니는 모르겠지만.

그게 언제더라? 녹번동 그 집. 전복 한 바구니 들고. 왜 얘기 안 했냐고요?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지. 맞아요,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

그게 그러니까 전복 때문에. 전복이요. 어느 날 신랑 거래처에서 전복을 선물 보내온 거야. 근데 그게 큼직큼직한 게 꽤 먹잘 것이 있겠더라고. 너무 많기도 하고 언니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전화를 했지. 전복 얘기는 안 하구 그냥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되겠느냐고. 서재 구경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언니가 마감 중이라 안 되겠다는 거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그래 알겠다고 했지. 가만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잖아. 소설이 뭐라고 밥도 못 먹고 써? 그래서 일단 싸 들고 집을 나섰어. 전복만 얼른 전해주고 오려구. 괜찮으면 조용히 전복죽이나 끓여줄까 하고. 그런데 막상 언니 집 앞에 도착하니까 괜한 방해가 되려나 걱정이 되더라구. 원래 우리, 글 쓰는 사람들, 중간에 흐름이 흐트러지면 신경질 나잖아요. 내가 잘 알지. 어쩌나 싶어서 그냥 차 안에 앉아 있는데, 언니가 딱 오는 거야. 양손에 뭐 잔뜩 사가지고. 어떤 머리 허연 남자 팔짱을 끼고서.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이?

기분 참 이상하더라. 이게 뭔가 싶고. 아무튼 그래서 그냥 집으로 왔어요. ()

 

 이로서 미경은 영은, 또는 서진에게서 두 번째 배신을 당한다. 두 번 배신당한 미경의 공격 앞에 영은은 별다른 역공도 하지 못한다. 미경은 이윽고 쐐기를 박는다. '어쨌거나 언니는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분이세요. 언니 덕분에 제가 있을 수 있었어요. 그야말로 나의 깃발, 이시죠. 정말이에요.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 이번엔 제 믿음을 배신하지 마세요. (…) (p.114)'

 

 그렇다. 영은 그리고 서진은 미경을 배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경은 그런 영은과 서진에게 끈덕지게 매달릴 것이다. 우리는 이 둘의 미래가 어떻게 될런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영은은 미경이 남긴 저 마지막 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그녀 덕분에 자신이 있을 수 있었고, 자신의 깃발이었고, 늘 고마워하고 있다는 저 말만은 미경의 진심일 거란 것이다. 

 

 

 

1) 천운영, 「젓가락여자」, 『엄마도 아시다시피』, 문학과지성사, 2013, p.86-87.

2) 위의 책, p.100.

3) 위의 책, p.104-105.

4) 위의 책, 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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