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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그는 작가 이전에, 발 빠르게 현장을 누빈 신문기자였다. 그의 글에선 열심히 뛰어다닌 흔적만큼의 '굳은살'이 박혀있다. 어쨌든 입지전적한 풍문에 의해 그의 소설을 접한 독자라면 탁월한 '문장가'로서의 감탄을 얻을 것이다. '인간' 김훈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유효한 독서가 될 것 같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책 제목이 주는 암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공의 선상에 놓인다. 나는 이편이니, 너는 저편이냐는 식의 편가르기가 언뜻 연상되기도 하지만 이 책의 주관이 그런 것만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돈과 밥을 '벌이' 해야 할 사내이자 작가로서의 생사에 선 두려움으로 씌인 55편의 이 글들은 시대에 대한, 시대를 향한 우수와 통찰을 담고자 한 세설(世說)로 명명된다. 세상에 붙어 있는 말들의 '힘셈'은 우리가 직시해야 할 말, 도덕적이어야 할 말, 휩쓸리지 않고 단호해야 할 말들을 허공에 젖게 만든다. 진실되고 정의로운 세상에 붙어 있는 말들은 권위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아야 하는 관점에서 힘을 상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 세상의 파열음은 과연 어느쪽일까? 곧고 팽팽하면 와해되기 쉬운 세상의 말들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하였든, 세상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야함은 나를 지키기 위한 공공연한 생존본능의 척도이며 무개(無蓋)한 인간으로서 자업자득해야 할 그만의 등식이다. 집단적이고 단발적인 정서에 편입하기 쉬운 세상의 도처는 그만큼 불안하고 불편한 질서로 넘쳐난다. 어느 한켠 암암리의 장막에 가려진 무질서가 있더라도 우리는 눈을 감고 입을 막으면 그만인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이탈된 집단의 소외자로서 이기적인 방치심이다. 이래야 하는 세상바라보기는 참 안스럽다. 안스럽더라도 나 또한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버리고 마는 주눅감이 비통할 따름이다. 외형적 질서을 표방한 내형적 결함의 은폐는 옳곧지 못한 포식의 결과로서 비등의 거만(巨萬)이며 거만(倨慢)한 질서의 비탄일 것이다. 이 작태는 부정을 모르고 부정을 일삼으니 부정하기가 그지 없다. 이 거만한 부정들은 참된 도리로서 밀도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순진한 국민정서에 '허깨비'로 전락된다. 모략 되어가는 정치판, 방조되고 어둑한 사회의 뒷 그림자, 시대 편향적인 문화의 협착들로 편승 되어가는 짐을 지게 된다. 책임 질 수 없는 책임가로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뭐라고 답할 것인가. 실제의 현실에서 가려 서고자 하는 것은 어찌보면 결국 무의미한 것이다. 읽히거나 설명되어지는 세상담론의 부여가 논의되기 이전에 우리는 기본에 입각해야 할 것만을 너무도 자명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것만이 편들 수 있는 대안으로서 세상을 향해야 할 것임을. 융통성을 거론하기엔 세상의 잡설이 너무도 많고, 작가의 말대로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 세상이 이지경인 것도 아닐 것이다. 쉽사리 바뀌는 것은 어렵고 나날이 수심이 가득해지는 이 당대에 쏟아져야 할 말로서.. 세상질서에 새로운 희망을 예견하게 될 미래를 향한 궤도이탈로서 당대에 말을 거는 일은 가능한지, 그 당대를 향해 할 말이 나에게 있는 것인지 이 책은 그 소통력을 진단하고 있다. 작가가 느끼는 '일인대 만인'의 싸움일 뿐인 이 고독의 만신창이로서 던지는 고통스런 질문 앞에 어떠한 말을 던져보아야 할지, 어떤 말이 유효한 것인지 나는 멍한 두려움을 앞세우며 할 말만 하는 자의 고백만을 늘어놓고 있진 않은지 내 자신부터가 심히 의심스러워진다. 그렇다고 암담한 현실의 질문에 맞서듯 고심해야 할 책만은 아니다. 김훈의 시선이 던지는 세상의 평범함은 평범의 틀을 깨는 기발함과 통찰로서 깊이있게 번뜩거리며 충분히 흥미로운 대목이 많아 일상의 새로운 조우를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다. 김훈의 글은 요즘 시대의 '것' 들로부터 일탈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삶을 살면서 그는 우리가 정당화하는 모든 본질을 그의 말대로 '보편과 객관을 집어치우듯' 조롱해가며 만신창이의 묵념으로 털어놓는다. 우리가 그의 글에 묵독하는 것은 그의 것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체험을 통해 생명 가득한 언어와 신호를 길러냄으로서 그것은 온전히 새로운 다짐을 얻는다. 소리내어 읽던 음독의 시류에 그의 문장과 수식은 대범함과 화려함을 넘어 차갑고 단호하다. 한 작가의 단단하게 집도된 결빙의 심층으로부터 뜨거워짐을 느끼는 그것은 우리의 나약한 마음이며, 그간의 묵과된 편애와 편견을 향해 우리도 조롱을 펼치는 그것은 참지못한 용기이다. 독자의 시선도 결국 만신창이를 향하고 있는 것임에 뜨거움을 느끼는 것. 김훈의 글을 통해서라면 우리는 적으나마 '날' 것의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존재를 형성하는 본질의 진위를 새롭게 가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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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말(言)은 현실이 아니라는 절망의 힘으로 다시 그 절망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마도 말의 운명인지요. 그래서 삶은, 말을 배반한 삶으로부터 가출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길러내는 것인지요. 제가 겨우 말한, 저 젊어서 죽은 패륜아의 생애는 이 모순된 운명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는 일에 아무런 전략적 방편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찡겨 있는 삶과 말의 꼴을 확연히 보여주기는 할 것입니다. -「다시, 임화를 추억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