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되어진 말씀, 선포되어지는 말씀,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구분하여 이해했다. 이러한 구분을 따를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와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권위'(authority)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포되어지는 말씀’으로의 ‘모든’ 설교는 권위를 가지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설교가들은 자신이 말씀을 선포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인 설교가 어떻게 권위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기록되어진 말씀에서 기록되어지던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의도가 중요하다면, 선포되어지는 말씀인 설교에서는 청중의 상황(context)이 중요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신학부인 임마누엘대학의 설교학 교수인 폴 스코드 윌슨은 그의 책 「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대한기독교서회: 2015)를 통해 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를 파헤치며 설교가 지닌 권위의 근원을 찾기 위해 어쩌면 지리할 수도 있는 여행을 한다. 물론 저자 자신도 ‘역사라는 방법론’을 사용하면서 그것이 지니는 한계, 즉 모든 역사를 다 다룰 수 없기에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을 저자가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의 대표성을 지닌 인물들 20명을 중심으로 설교가 지니는 권위를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각 시대의 설교가 가지는 특징과 설교학적인 의미를 꼼꼼하게 설명함으로 그리스도교의 설교가 어떻게 변천/발전해 왔는지를 마치 3D화면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필자가 감명 깊게 읽었던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페투스는 체포될 당시 그녀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세례는 체포된지 며칠이 지난 후에 시행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수했다. … 그녀와 몸종은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사형 집행에 황소가 아닌 아직 새끼를 낳지 않은 미친 암소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암소의 공격에도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은 결국 203년 3월2일 혹은 그달 7일에 칼로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감동적인 자서전적인 이야기는 두루두루 널리 퍼져서 마침내 교회의 공식적인 예전에까지 사용되었다. p39.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신 예수가 하나님의 ‘메신저’로 오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셨던 것처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존재로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초대교인들이 말을 ‘다바르’(dabar) 즉, 사건으로 이해했던 것과 같은 이해일 것이다. 파페투스와 같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내가 바로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이 설교가들의 다양한 상황과 긴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설교의 본질은 아닐는지..’ 그 삶의 한 자락이라도 닮게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