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
김비 지음, 박조건형 그림 / 김영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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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싶다.

 

고등학생 때 나의 막연한 꿈이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두달 살면서 거기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안되면 귤도 따면서... 쉬고 싶었다. 자습실에 앉아서 그런 상상을 종종 하곤 했는데 상상만으로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그 정도로 나에게 제주는 일종의 도피처나 휴식처나 뭐 그런 부류였다.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꽤 자주 갔던 제주의 인상은 활기차면서도 고요한 자연의 이미지였다. 내 기억 속 제주도는 가족과 함께, 그리고 친구와 함께했던 기억들뿐이라서 저절로 웃음이 그려지는 그런 장소이다. 그래서 책을 딱 우리 집으로 배송이 왔을 때, 시험 기간이 지나면 너다! 너로 힐링해야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 위태로움에 대해

 

삶은 이리저리 굴려져 생채기가 나고 아물고 흉지고.. 때때로 아프다. 책을 읽으면서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울컥울컥하고 코가 시큰했는데, 개인적으로 요즘 내가 미운 맘이 불쑥불쑥 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특히 일러스트의 색감에서 위로를 받았고 감정적으로 동요가 많이 되었다-작가 김비씨의 그의 남편 박조건형, 그리고 복희씨의 여정은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다. 솔직히 읽으면서 지금 곧 싸울 분위기인데..?”라고 생각이 드는 대목이 많았다. ‘평행선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걸어도 서로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평행선에서 나란히 함께걷는다. 삐끗 어긋나도, 혹은 만나지 못해도 에서 함께걷고 있다. 그들의 여정은 삶 그 자체였다. 인생은 행복함만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 위태로움도 있고 한 스푼의-혹은 그 이상- 씁쓸함, 불안함이 가득하다.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살을 부대끼며 동행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위태로운 내 삶에 대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 주저앉아버린 모두를 위하여

 

역설적이게도, 주저앉은 채로 꽤나 마음이 데워졌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불쑥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니. 주저앉은 내 마음에 꺼진 줄 알았던 작은 불 하나가 켜진 것 같았다.-230p-”

 

넘어져 다리를 삐끗한 작가는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런데 거기서 스토리는 끝난 게 아니었다. 작가는 일어났고 여기저기서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최근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정말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일들이 나에게 떠밀려 올 때 아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를 되뇌였다. 그냥 놓아버리고 싶을 때 타인들의 힘내라는 조금은 사무적인 위로를 받으면 가까스로 입꼬리를 올리곤 했다. 왜 이런 생각은 못 했을까... 주저앉아도 괜찮은 거였다. 우울감에 빠져서 자기연민을 하기보다는 그냥 주저앉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은 거였다. 달리다가 주저앉는 모두에게 넘어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 인생은 저공비행

 

다음에 또 제주에 놀러 가면 덜 괴로워하며 지내다왔으면 좋겠다-271p-”

 

비행기가 각자 다른 높이에서 비행하듯 우리 인생도 각자 다른 높이를 가지고 있다. 고공비행을 하는 사람도, 저공비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뭐든 답은 없다. 인생에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낮게 서행하면서 주위를 맴돌아도 되고 높게 멀리 날아가도 된다. 우울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저 한 문장이 위로가 되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 그리고 덜 괴로움을 바라는 것. 어쩌면 소박하고 하찮은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결국 조금 더 나은 삶을. 덜 괴로운 삶을 바라는 것은 모두일 테니깐. 내 인생도 너의 인생도 덜 괴로워하며 지내다가 왔으면 좋겠다.

 

 

| 끝으로

 

글이 되게 우울에 점철된 문장 같아 보이지만,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함께 가자는 것이다. 삶이라는 우리 여행의 이름은... 많은 고민이 되는 질문이지만, 어찌 되었든 따뜻한 색감의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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