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의 남자
백민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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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

작가는 나의 나머지를 계속 살게 하기 위해 작가로서의 나를 죽였다고 했다. 작가가 나를 나로 살게 해주는 핵심을 버리고 나머지를 살리는 것은 사는 것인가 죽는 것인가? 사라지기 전의 사람들이 흔히 남겨놓는 희미한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작가는 칩거했다. 나는 진심으로 절박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야외로 나가 모처럼 찍은 잡지 인터뷰 사진의 표정이 이모티콘의 기본형인 ·.· 인것을 보고 작가는 정말로 놀란다. 누군가가 억지로 두 뺨을 잡고 쭉 끌어올리지 않는 이상 무표정을 표현하는 ·.· 말고는 다른 표정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였다. 무엇에도 정서적 반응을 할수 없는 상태. 결국에는 말도 잃어버린 · · 의 표정이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분노나 증오에는 표정이 없다. 격한 감정이 빠져버려 더이상 김이 나지 않는 분노.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 중의 하나는 이 무표정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체계와 공정하지 않은 법에 대한 분노.

허물어져가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아픈 조모와 살며 황폐한 절골을 놀이터 삼아 놀던 소년은 우울증을 앓는 소설가가 되었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작가는 작가로서의 이력을 모두 버렸다고 했다.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십여년이 빈 시간대로 남아있는 채로 면접을 보고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다. 여전히 ·.· 표정으로 그 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고 있을때, 항상 (^(oo)~) 표정인 동료가 데리고 온 동료 딸내미의 표정이 역시 (^(oo)~)인 것을 보고 작가는 자신의 ·.· 표정의 기원을 깨닫게 된다. 어렸을 적 자신을 바라보던 어른들의 표정이 그랬을 것이라고 유추하면서 아무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심지어는 아무 가치도 없는 그 표정으로 내 앞에 던져진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이 필요하다고, 이 세상에 무수히 떠도는 험악한 표정을 떠올려보면 ·.· 정도는 준수한 편이라고 작가는 자족한다. 어릴적 환경은 이제와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내가 살 수 있다.

글의 말미에 작가가 인용한 자크 아순의 말이 인상깊다. 증오란 우울한 붕괴의 위협에서 주체가 자기방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후의 반응이며 정신적 죽음이나 자살이 있기 전에 살아남고자 내놓은 마지막 카드일 것이라고. 증오란 사랑의 이면이 아니라 사랑이 중단 되었을때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상대에게 분노와 증오를 느낄 때는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 사랑이 보상받지 못할 때, 되돌아 오지 않을 때였다.


분명 사랑은 증오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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