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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평점 :
간결한 문체로 쉽게 써나간듯 하지만 그 속엔 인간을 향한 따듯한 관심과 근원적 고민들을 향한 날카로운 성찰들이 늘 존재하고 있어 우리를 울고 웃게도 만들었던 스토리텔링의 천재 오쿠다 히데오가 무코다 이발소로 돌아왔다.
표지를 보면 참 유쾌하다.제목도 유쾌하고 겨울을 연상시키는 풍경속에 두둥실 떠있는 아주머니,아저씨들의 표정이 참으로 유쾌하다.
기대감으로 읽어나가고 마지막 장을 닫고 리뷰를 써나가는 지금 저 표지속의 인물들일듯한 야스히코 아저씨,교코 아주머니,다니구치 아저씨,가즈마사 청년 등등 동네 주민들은 여전히 하얀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조용한 도마자와에서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1950년 일본 유슈의 탄광도시로 번성했던 도마자와 면은 1960년대 후반 석탄이 대부분 석유연료로 대체되면서 급격한 쇠퇴기를 맞게 된다.부친의 병환으로 집안의 가업인 이발소를 물려받게 된 야스히코.
작은 시골마을이 안고 있는 인구 감소와 공동화 현상으로 도마자와에 단 두 곳만이 남은 이 무코다 이발소엔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부지기수인데 이런 이발소를 야스히코의 20대 아들인 가즈마사가 도시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물려받겠다며 고향집으로 내려 오게 된다.
자신의 가업잇기도 선망하던 도시생활과 직장생활의 부적응에서 온 결과물이였기에 젊디 젋은 스물 셋의 아들이 게다가 어릴때부터 끈기라곤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아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업을 이어나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쇠락한 이 곳을 일으켜 세우고자 이미 여러 차례의 농촌진흥 프로젝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간 전적이 많았기에 야스히코는 도쿄에서 내려온 면사무소 파견 관료인 젊은 사사키의 패기 넘치는 오지랖들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동네 청년들이 하나 둘 합세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아들마저 저러고 다니니 그들의 희망찬 계획들에 사사건건 고추가루나 뿌리는 고집세고 까칠한 이미지가 되어 가고 만다.
실패하고 내려온 루저란 의식이 팽배했던만큼 자신의 아들도 어쩌면 자신과 같은 케이스는 아닐까? 젊은 혈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내실없는 캐치프레이즈만 남발하고 꺼져가는건 아닌가하는 노파심에 전전긍긍 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마을엔 축제도 열리고 청년회에선 다양한 이벤트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야심만만하게 준비하던 이벤트가 저조한 참여도로 실패로 돌아가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챕터에선 농촌 마을의 고령화 문제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입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들과 고민들이 등장한다. 언젠간 우리에게 ,나에게 닥칠 나이드신 부모님들의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 대한 걱정과 미래의 일이니 일단 외면하다보면 어느새 코앞에 닥쳐버린 엄청난 무게의 현실들에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다들 불안을 껴안은 채 어영부영 살고 있다..란 책 속 문장이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이처럼 입밖에 내어 말하기도 두려운 미래의 노후에 대해 이 책은 무거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쿠다 히데오는 각자에게 닥친 불행을 혼자서 껴안고 있지만 말고 이웃이 서로를 도와가며 그 무게들을 나누어 보자고 이야기 한다.
기하치 할아버지는 쓰러지셨지만 남은 할머니와 아들에게 각자에 맞는 위로와 도움을 건네는 도마자와 이웃들.
산사람과 아파 누운 사람..소임을 다하고 이젠 짐만 되는 사람..산사람은 또 그렇게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죽음이란게 멀리 있는게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인 현상이며 참으로 나약한 인간은 혼자로만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버거워서 마음을 열고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줄 아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장이였다.
중국에서 온 신부편에선 작은 시골마을에 시집오게 된 낯선 이방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웃들과 그걸 밝히기 꺼려하는 신랑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은 마을에서 가업을 잇는 아들의 혼사문제는 걱정하면서 정작 딸은 이 곳으로 시집보내기 싫어하는 야스히코가 이율배반적이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농촌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자신의 처지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다이스케에겐 이런 마을 사람들의 관심들이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는 상황.하지만 눈뜨면 마주치고 부딪치는 그곳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고수하며 살기란 쉽지가 않다. 결혼한 친구의 시집이 문중들이 모여사는 작은 시골인데 명절만 되면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며 하소연하는걸 매년 듣게 된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의 장점들도 존재하는 법.다이스케는 폐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도 야스히코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이웃들을 피하고 숨기고 살아가면서 더 답답했을 다이스케는 야스히코와의 소통을 통해서 훨씬 더 마음이 가벼워지진 않았을까 싶다.중국인 아내에게도 이웃과의 교류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지 않을까?
가장 흥미로웠던 챕터! '조그만 술집'에선 온 마을의 남심을 홀린 술집 마담이 등장한다.매력적인 외모의 사사에도 도마자와 출신으로 도시에 나가서 생활하다 내려온 여인이다.마을 남자들의 단골 술집엔 찬바람이 불고 어느덧 세련됨과 야릇한 매력을 무기로 무장한 사사에의 술집은 매일매일 동네 남자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우리의 꼿꼿한 주인공,무코다 이발소의 야스히코마저 간만에 느낀 여인의 향기에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까칠한듯 보였던 야스히코는 알고보면 동네 이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정도로 온갖 동네의 일들의 전면에 나서며 중재를 하기도 하고 비밀들을 눈감아주고 혼자 삭이기도 하며 그야말로 도마자와의 무게중심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붉은 눈'에선 동네에 내려온 영화관계자들 앞에서 엑스트라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여인의 향기에 단체로 홀려 갈대처럼 흔들대던 남심들에 곧바로 초를 치지 않고 지켜주기도 하는 귀여운 면모의 아저씨 이기도 하다.
야스히코가 운영하는 무코다 이발소는 이야기가 오고가고 사연이 오고가며 마을 주민들의 애환들이 넘쳐나는 동네 다방같은 공간이며 조금은 까칠하지만 신중한 자세로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소한 도움을 주려하는 야스히코는 도마자와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도망자' 편에선 사기를 치고 도망자 신세가 된 도마자와 출신의 슈헤이를 아들 가즈마사가 설득시켜 자수하게 한 사건에서 야스히코는 드디어 아들의 성장한 모습에 크게 감동받게 된다. 심심하고 별일 없이 정체되어 있는 시골 마을을 변화시키고자한 아들의 노력과 바램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행복하다.
농촌 사회의 고령화,인구감소,공동화 현상으로 인한 각종 문제점들로 점점 더 소외되어가기만한 현실에서 만난 오쿠다 히데오의 이번 작품은 사태의 심각성에 경종을 일깨우기만한 한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에피소드들 속에 유연한 해결점들을 숨겨 놓기도 하고 잔잔한 미소를 지을만한 유쾌함도 지니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없다는 공동체 사회의 단점도 있지만 대화와 교류를 통해 갈등과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힘듬을 나누어 가지는 문화 속에서 작은 동네만의 장점들도 다시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도마자와가 아니라 설경으로 아름다울, 동네 주민들의 따듯한 관심들로 아름다울 도마자와의 겨울이 떠올라 어딘지는 모르지만 무코다 이발소를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말 그 곳에 가면 첫 눈엔 까칠해 보여도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듯한 야스히코 아저씨가 따듯한 차한잔을 내어 주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장이 아쉽게 넘어갔다. 뒷 이야기가 더 있을것도 같은데..오쿠다 히데오 아저씨!! 너무 짧았어요.더 쓰셨어도 좋았을텐데..다음 이야기도 있는 거죠?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