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시공사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4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장경렬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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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할아버지의 책장에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중에 헤밍웨이 전집이 있었어요.누가 산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늘 그 자리에 꽂혀 있던 빛바랜 전집 세트를 펼쳐보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면에 조금 실려 있던 헤밍웨이의 수염난 사진을 보며 살만 조금 빠지면 우리 할아버지랑 닮았다라고 생각하며 막무가내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아요.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헤밍웨이를 알게 되고 노인과 바다란 소설도 알게 되면서 또,언젠간 읽어야지..저 책을 읽어야지 했지만 빛 바래고 세로로 쓰여진 글자들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구요.퓰리처상에 노벨문학상까지 받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이 지구상에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을만큼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장편도 아닌데 말이죠 .다 때가 있었나 봅니다.

그저 노인이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험난한 여정의 스토리라고만 알고 있었거든요.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노인과 바다를 읽게 된 계기도 좀 웃깁니다.언니에게서 추천받은 모바일 게임인 물고기 잡는 게임이 있어요. 형형 색색의 어디서 보도못한 특이한 물고기들을 잡는 재미에 꽂혀서 물고기 관련 해외서적들도 사들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낚시 tv까지 시청하기에 이르렀거든요. ^^

그러다가 헤밍웨이의 단편을 읽고 결국은 노인과 바다를 읽게 되죠.그리고 엄청난 두께의 모비딕까지 구입하기에 이르른 답니다.

앤소니 퀸 주연의 노인과 바다도 보게 되지만 내가 읽고 상상하던 이미지의 노인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라서(왜소한 이미지를 상상) 감정이입이 잘 안되기도 했었어요.

원래 알던 이미지와 다른건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구요.늘 내가 좋아하는 우리 할아버지와 오버랩되어선지 흰 수염을 기른 인자한 이미지를 상상했었는데 사냥을 즐기는 활동적인 성격에 여성편력도 심하며 폭음에 우울증까지..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너무도 달랐죠.

아버지를 따라 사냥과 낚시를 즐겨하며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만 한편으로,그의 유작을 보면 전도된 부모의 성역활로 인한 트라우마가 작품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어릴때 헤밍웨이 사진을 보면 우리가 알던 그와는 180도 다른 이쁜 드레스 차림의 그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유년기의 특성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어요.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 했으며 운전병으로 있다 부상도 얻게 되고 아프리카 비행중 추락사고도 2번이나 겪었으며 아버지의 권총자살까지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는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의 성공이후 고갈된 창작력, 사고로 인한 휴유증,고혈압,폭음,정신착란증이 심해진 그는 결국 아버지의 권총자살에 이어 1961년 케첨 자택에서엽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읽어낸 노인과 바다를 한 번 읽고 던져두기엔 뭔가 아쉽다 했는데 시공사에서 서평을 쓰는 기회를 주셔서 다시금 찬찬히 읽어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됐어요.내가 좋아하는 삽화가 등장하니 더 새롭게 읽을 수 있었거든요.삽화로 인해 원서의 의미를 해칠수 있을듯해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연재했던 '라이프'지의 삽화를 사용한 점도 다행이며 독자로선 고마웠구요.멋모를 학창시절에 읽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기분으로 읽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그리고 한 번 읽었을때랑 두 번째 읽었을 때랑은 또 느낌이 다르더군요.명작이라는게 한 번 보고 끝이 아니라 읽으면 읽을 수록 새롭고 또 다른 감성이 생겨나서 두고 두고 읽고 보고 느끼게 해주니 명작이란 소리를 듣는게 아닌가 합니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 노인은 한때는 힘도 세고 대어도 많이 낚아내는 운도 따라주는 잘나가는 어부였지만 지금은 쇠약해지고 84일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다른 어부들에게 '살라오(운이 다한 사람)'라 불리며 비웃음을 당합니다.그를 응원해주는건 그동안 함께 낚시를 다녔던 소년뿐이였죠.노인에게 맥주도 사다주고 커피도 가져다 주고 노인의 행적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소년.소년의 부모는 운이 다한 노인에게서 소년을 떼어내 다른 배를 타게 하는데 곧장 튼실한 고기들을 낚아내게 됩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대어의 꿈을 안은 노인은 허술한 장비들을 탑선한채 어둡고 깊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갑니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 목마름과 허기를 견디며 승선한지 며칠만에  드디어 노인의 작은 쪽배보다 더 커다란 청새치를 만나게 됩니다.유투브나 해외토픽에서 한 번씩 볼 수 있는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거대한 청새치를 바다낚시로 낚아내며 인증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한 번쯤은 보셨겠죠? ^^

청새치라고 순종적으로 가만히만 있었을까요? 아무리 노인이라지만 살려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치고 배 주위를 빙빙 돌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고 살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노인에게 끝까지 반항했을 겁니다.거대한 물고기를 거뜬히 잡아 들이기엔 그의 보트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기구들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랜 기간 연마된 기술과 대어를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노인의 집념은 살려고 버둥대는 청새치의 간절함과 맞먹는 바람에 힘든 여정이 시작됨을 예고 하게 됩니다.

노인의 친구인 마놀린도 없이 말 할 상대가 없는 외로운 바다 한 가운데에서 갈매기에게도 의지하기도 하고 심지어 노인의 포획물인 청새치에게서 조차 함께 가는 동반자로서 연민을 느끼기도, 지치지 않고 끝없이 삶을 갈구 하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가지게 되죠.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떼들을 한마리씩 창으로 물리치지만 자꾸만 늘어가는 그들을 떼내버리기엔 노인에겐 힘에 붙이는 일이였고 노인의 본능 못지 않게 배고픈 상어들의 본능 또한 당연한 것이겠죠.거의 다 뜯어먹히고 등뼈와 주둥이,꼬리만 남은 청새치의 잔해와 함께 항구로 향하는 노인.

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가 염원하던 대어를 발견하고 결국 잡아내고 무사히 항구로 돌아오길 바랬지만 ,,남은건 망가진 노인의 몸과 물고기의 빈 뼈다귀뿐..읽는 사람마저 허탈하고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노인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키 손잡이를 빼곤 무사한 배에 감사하며 이를 겸허히 받아 들이죠.


p154~155


 어쨌거나 바람은 우리의 친구야.그가 생각했다.그는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때로는 그래.그리고 거대한 바다엔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지.참,나한텐 침대도 있군.그의 생각이 이어졌다.침대도 내 친구지.있는 그대로 침대 말이야.그의 생각이 이어졌다. 침대는 정말 대단한 친구야.싸움에 지고 엉망이 됐을 때 침대처럼 편안하게 받아주는 친구는 없지.그의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침대가 얼마나 편안한 친구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어.그런데 자네가 뭐한테 졌지? 그가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난 진 게 아니야."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만 너무 멀리 나갔다 왔을 뿐이야."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며 세상에 진 것이 아니라는 산티아고 노인.모든걸 잃고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살아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결과를 받아 들이고 체념 할 줄도 아는 노인의 겸허함에 그 담담함이 오히려 슬프기도 존경스럽기도 했답니다.

사실 물고기나 낚시의 분위기 자체를 좋아했지,정작 낚시를 할때 낚시 바늘에 이곳 저곳을 찔려 올라오는 물고기들을 보면 너무 안쓰러워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노인의 고투가 너무나 힘겨워 보이고 외로워 보여 안쓰럽다가도 한편으론 노인의 낚시대에 걸린 청새치의 살려는 몸부림을 보면 그 또한 안쓰러운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거든요.그건 노인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는 어부이기에 그의 소임을 다했을 뿐이지만 막상 외로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청새치와 대립했을땐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물고기의 입장 또한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 동지애마저 느낍니다.

역자 장경렬님의 해설을 보면 이 책이 감동을 주는 이유 중 하나가 노인과 고기의 싸움을 인간과 미지의 힘 사이의 투쟁으로 읽으려는 서양적 세계관이 아닌 자연은 모든 것을 주기도 하지만 모든 걸 빼앗아 가고 말아, 어부로서 고기를 죽여야 하고 또 잃기도 하지만 패배라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서 자연스레 삶을 이어가는 '나름의 해결책'을 가진 동양적 세계관이 전반에 깔려 있어서가 아닐까..공감이 가는 해설이였습니다.

어려서 읽으면 노인과 커다란 물고기와의 사투를 그린 책으로,소년 마놀린과의 우정과 각종 물고기들이 나오는 그림처럼 생생한 낚시 체험서로도 , 때론 온화하고 다정하며 고맙다가 때론 거대하고 가혹하기도 한 '자연'을 대함에 있어 인간이 가져야할 자세를 배우는 책으로도 읽는 이의 시선에 따라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노인과 바다이지만 노인의 투혼에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은 공통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 가졌던 헤밍웨이의 이미지와 그의 프로필을 보고 가졌던 반전의 이미지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또 다르게 다가 옵니다.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그에겐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하구요.두 번째 읽으면서 힘든 개인사도 있었는데..노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금 읽어보며 마음을 다 잡아 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신문사의 기자생활에서 익힌 간결하지만 힘있는 필치로 '문체의 혁명적 작가'로 불리우며 '킬리만자로의 눈' ,'프랜시스 매컴버의 짦고 행복한 생애' 등 유명한 단편들도 많이 써낸 헤밍웨이.감성적이고 미사여구 많은 글이 아니라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써내려가서 더 담담하게 표현된 노인의 심경들이 오히려 읽는 이를 더 울컥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언젠가 또 세월이 흘러서 노인과 바다를 세 번째 읽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느낌일지도 궁금해지네요.이 책을 다 읽은 아쉬움은 그의 단편으로 극복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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