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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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다가 황혼 이혼 후 늦은 나이에 문예창작과에 진학하여 글쓰기에 매진하시다가 작년에 69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이순자씨의 유고 산문집이다.

故 이순자씨는 6.25 전쟁 유복자로 태어나 생활고 속에 어렵게 자랐지만 늘 주위의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고통에 귀기울일 줄 아셨다.

그녀는 다니던 회사에서 여공들을 착취하자 조장들에게 노동법을 알려주며 회사에 대항한 용기있는 시민이었고,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동성동본 때문에 헤어져야만 했던 가슴아픈 첫 사랑의 추억을 가진 여인이었고,

종갓집 며느리로 들어가 명절과 제사 때마다 수백 명분의 상을 차렸으나 어머님의 칠순 잔치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기막힌 사연을 가진 아내였고,(남편은 종종 폭력까지 휘둘렀기에 결국 어쩔 수 없이 황혼이혼을 선택하셨다)

수녀가 되어 환우들을 섬기는 삶을 살고 싶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20여년간 호스피스 활동으로 만족해야 했으나 뜻밖에 딸을 수녀로 보내게 된 어머니였다.

그녀는 황혼 이혼 후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아와 취업전선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으셨는데 62~65세까지 4년간 수건공장에서 수건 개키기, 백화점 청소, 건물 청소, 아기돌보미, 어린이집 조리사,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쓴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을 받으셨으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 작고하셨다.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써내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의 당참과 용기, 현명함, 따뜻한 마음에 감명받아 또 한 명의 박완서 작가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세상의 인정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자마자 떠나셔서 무척 아쉬웠다.

그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음 따뜻한 그녀에게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순분할매 바람났네>, <돌봄>)

깨처럼 고순냄새(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가버린 그녀를 추모하며 나의 삶 역시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고소한 향기로 기억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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