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 성도가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신비
박순용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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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교회의 긴 의자

 

- 박순용,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생명의말씀사, 2018

 

1. 시작

 

보통 교회 예배당의 의자는 긴 의자이다. 그 의자에 먼저 앉기 시작한 사람이 안쪽으로 쭉 들어가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앉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 예배 시간마다 일일이 자리 안내를 하시며 섬기시는 분들을 보면서, 안내대로 사람들이 잘 앉지도 않는데 왜 이런 의자를 쓰셔서 앉기도 힘들고 저렇게 고생들을 하시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신앙 성장과 맞물려 기록된 바울 서신이다. 빌립보서 25-11절 말씀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떠오른 생각은 왜 그동안 나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왜 그렇게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고 나에게 오신 예수님을 그냥 그렇게 당연시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정말 소중하다.

 

2. 하나 됨의 교회

그날 주일은 우리 아이들이 늦잠을 자고, 준비도 늦고 해서 지하에 있는 주일학교 예배실에 겨우겨우 아이들을 보내놓고 헐레벌떡 큰 예배실로 평소보다 늦게 들어갔다. 주보를 받아서 얼른 자리를 보니 자리가 별로 없어 보였다. 30초 뒷면 예배가 시작될 것 같았다. 안내 하시는 분과 눈이 마주쳤고, 안쪽에 하나 비어있는 자리까지 나를 빠르게 안내해 주셨다. 긴 의자가 시작되는 쪽에 연세 있으신 여자 집사님께서 앉아계셨고, 그 안쪽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안내 하시는 분도 안쪽으로 하나 들어가 달라고 손짓과 미소를 그분에게 보였고, 당연히 나는 그 자리에 앉게 될 줄 알았다. 예배를 시작하는 찬양의 전주가 울리고 안내 하시는 분도 예배를 위해 본인의 자리로 가셨다. 그런데 그 분은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으셨다. 그래서 순간 끝자리를 좋아하시는 분이려니 하면서 그 안쪽으로 내가 들어가려고 하는 몸짓을 했다. 그런데 그 분은 미동도 하지 않으시고 시선도 주지 않으셨다.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의자들 사이 통로에 서서 어정쩡하게 시작 찬양을 불렀고 목사님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하나 됨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어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는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교회가 한마음으로 서려면 그들 안에 있는 죄악들 즉 다툼과 허영(2:3), 원망과 시비(2:14)와 같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깨뜨리는 죄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툼이라는 단어는 어느 영어 성경에서 당파심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31-

 

3. 나를 낮추지 못할 이유

 

주일 아침부터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일까? 연세도 있으시고 알만큼 아실만한 분이 왜 저러실까? 하고 있는데 안내 하시는 분의 의아한 눈빛과 함께 새롭게 맨 뒷자리에 앉았다. 담임 목사님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임 목사님과 나 사이에 있는 그 분과 그 분 옆의 빈자리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초신자였던 당시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연세 조금 있으신 남자 집사님 한 분이 예배당으로 들어오셨고, 익숙한 듯 아까 그 자리로 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여자 집사님이 안쪽으로 들어가셨고, 그 자리에 앉으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더 화가 났다. 아니 그러면 자리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길가에 어색하게 서서 시작 찬양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왜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되지 않아서 혼자 화를 내고 있었다.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이 비천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셨는데, 그토록 흠 많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게 마련입니다. 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탁월함을 자랑할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는 때가옵니다. 우리는 결국 늙고 쇠합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기억은 뇌가 늙어감에 따라 점점 사라집니다. 또한 내면에서 죄 된 본성, 시기와 질투, 미움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남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실상이 이러한데 우리가 자신을 낮추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68~69-

 

4. 우리를 위해 주님이 하신 일

 

두 분의 뒤통수를 째려보면서 담임 목사님의 소중한 말씀을 다 뺏겨 버렸다. 하지만 지금 가만히 책을 읽으며 뒤돌아보니 그 날에 내 기분에 필요 이상으로 충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빠른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분은 연세가 좀 있으셔서 옆에서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지 모르실 수도 있으셨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상황을 알고 있으셨다 하더라도 옆에 남편 집사님 자리를 맡고 계셨고, 시작되는 예배에 집중하시느라 내가 옆에 서 있는 것을 딱히 인지하실 필요도 없으셨겠다 하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다. 주차하고 늦게 들어오시는 남편 집사님 걱정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셨을 수도 있었다.

교회의 의자가 긴 이유를 혹자는 많이 앉히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주님 예비하신 배려심을 시작부터 배우라고 그런 문화를 주시지 않았을까? 겨우 그까짓 자리가 뭐라고 그 소중한 예배의 시간을 다 미움으로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그 말씀을 빼앗지 않았다. 내가 버린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습니까? 멸망할 수밖에 없던 우리를 위해 주님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88-

 

이 책을 읽으며 예수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다. 왜 알면서도 몰랐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세상 창조의 주인이시며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모든 일이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 분이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오셔서 그 모진 고난과 고통을 스스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 아들이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지고 놀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부셔버린다. 그 어떤 죄의식이나 답답함이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그 무언가고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그 엄청난 사실을 왜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그토록 엄청나고 큰 은혜를 왜 그저 그렇게 부활절 달걀 까먹듯이 편안하게 생각했을까? 스스로 의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까짓 의자가 길다고 뭣하러 탓하고 있었을까?

하나님이었음에도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종의 형체를 실체로 취해 자신에게 맡겨진 짐을 일체 거부하지 않고 짊어지셨습니다. -97-

 

4. 마무리

 

이 책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는 자만심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되어 참 감사하다. 지식으로 알고 머리만 커졌지 아무것도 모르는 빈껍데기 성도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겠다.

주님 저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요. 주님 아니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주님 저를 잡아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늘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저의 몸과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영화와 부요함을 포기하고 종의 속성을 취해 끝가지 충성스럽게 섬기셨듯이, 우리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고 서로의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고 세웁시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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