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x헌터 HunterXHunter 신장판 16
토가시 요시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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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라, 토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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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x헌터 HunterXHunter 신장판 15
토가시 요시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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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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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슬링거 걸 Gunslinger Girl 10
아이다 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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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애절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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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2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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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나온 후속권인지. 모리 카오루의 징글징글한 덕심을 여전히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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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이해
스콧 맥클라우드 지음, 김낙호 옮김 / 비즈앤비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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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질문을 던져 본다. : '만화'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 '연속된 텍스트와 이미지들', '말풍선이 존재하는 그림책', 혹은 '낙서' 등 그에 관한 정의에 대해 사람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 "만화라는 것은 '예술'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각기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의 답변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글쎄.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혹은, "뭐? 만화가 예술이라고?"



 알게모르게 만화에는 꽤나 많은 선입견이 존재한다. 우리 생활과 언어습관 아주 가까이서부터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현실성을 무시한 엉뚱한 전개나 극적인 전개가 등장할 때 우리는 흔히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하는 관용적 표현처럼 굳어져버린 이 언어습관은, 사회에서 '만화'라는 매체가 받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에서 만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이런 문장으로도 대표할 수 있겠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야! 유치하고 뻔한 전개의 나열에, 의미없는 대화의 반복에 불과하고 페이지를 꽉꽉 채운 그림때문에 상상력마저 제한되는 저급 매체일 뿐이야! 만화를 볼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활자책을 한 권 더 읽어!" 

다소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모은 예시지만, 사회에서(특히 어른들에게) 지금 만화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혹여 만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만화가 예술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사리 하지 못한다. 예술의 범주로 잘 쳐줘봤자 만화는 문학에도 회화에도 속할 수 없는 수준 낮은 상업예술이라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부정적이기만 한 이미지로 만화라는 매체를 정의내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 언급했던 질문인 "만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만화는 예술인가?" 에 대한 답을 궁금해하고 찾으려는 사람들에 대해 반드시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만화의 이해>다. 이 책은 처음의 두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을 해줄수있는 책이며, 그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며 독자 나름대로 "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주는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만화이론적으로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분석서이기도 할 뿐더러, 한편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만화 자체에 관련한 수많은 궁금증과 질문에 대해 많은 대답을 남겨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를 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 또한 만화의 연출적 과정은 어떻게 기능하는지까지 이 책 <만화의 이해>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만화의 이해>는, 만화를 위한 만화다. 진부하거나 어려운 어휘를 남발하며 읽는 사람을 머리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만화 자체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그 형식으로 글이 아닌 만화를 사용한다는 발상으로 만화란 어떠한 존재이고, 어떤 힘을 가진 매체인지를 심오하고도 쉽게 설명해낸다.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훌륭한 책이 없다. 만화의 연출은 글로 된 도서, 영화, 애니메이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연출이다. 이 책은 만화의 그러한 연출 특성과 근본적 특성을 알기 쉽게 짚어내면서 그 구동원리를 어렵잖게 이해하게 한다. 만화를 즐기는 사람, 그리고 특히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안 읽어볼수가 없는, 만화의 이론을 다룬 굉장히 학문적이고 혁신적인 책이다. 



 물론 이전에 만화에 대한 서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만화 본질에 대한 탐구가 아닌, 대부분이 만화에 대한 기술서적에 불과했고, 만화라는 장르의 구동 원리의 이해를 하고자 하는 책은 거의 없다. 만화를 다루는 책들은 '만화를 더 잘 그리는 법' 혹은 '만화 창작에 대한 기술적 연구' 등 대부분이 미시적인 요소에 대한 탐구에 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라는 형식 자체에 대해 거시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이론적 접근을 이뤄내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이토록 명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득시킨 작가는 없었기에 이 책 <만화의 이해>는 더더욱 가치가 있다. 더욱이 만화라는 장르를 설명함에 있어서 만화의 형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특히 만화의 '예술성'에 크게 주목한다. 


 사람들은 으레 '예술'이라고 하면 글과 그림의 거리가 최대한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면 소설, 그림이면 순수한 그림. 그리고 실제로 서양미술과 동양미술, 그리고 각 문화권의 글과 문학들은 불과 2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각각의 한 극단으로만 발전해왔다. 글도 예술, 회화 또한 예술이지만 정작 두 개념을 합쳐놓은 '만화'라는 매체는 이상하리만치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도 명시성 높고 '쉽게' 읽힌다는 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만화는 글 또는 그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글이나 그림을 모두 사용하면서도, 그것들이 결합하고 상호작용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글과 그림이 가장 가까이했을 때 그 화학반응으로 마법처럼 나타나는 것이 '만화'다. 책의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그 점에서 만화의 '예술성'을 주장한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만화가 바로 독특한 형태의 시공간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가 말하는 '예술', 즉 만화의 마법은, 바로 칸과 칸 사이에서부터 시작된다. 


 만화가 만들 수 있는 '마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자가 가장 먼저 설명하는 만화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완결성 연상'. 저자는 이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리고 단순한 두 개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칸과 칸 사이의 마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림 1) <만화의 이해>, 74p.





 독자는 칸과 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굳이 글과 그림을 안 봐도 얼마든지 상상하며 장면을 이어나갈 수 있다. 저자는 딱 두 칸의 만화를 사용해 이 개념을 설명한다.(그림 1)


 독자들은 첫번째 칸의 험상궂게 생긴 괴한이 도끼를 들고 무엇을 할 지 볼 수는 없지만, 그 다음에 괴한이 취할 행동을 이미 알고 있다. 바로 다음 칸에 다른 사람이 내지르는 "아아아악" 소리를 들으면서 그 칸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저 두 칸 사이에 괴한이 도끼를 들고 휘둘러 다른 사람의 머리통에 박혔을 수도 있고, 휘두르다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콱 꽂혔을 수도 있고, 혹은 괴한이 겁만 주는데 다른 사람이 겁을 먹어 소리를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저 두 개의 이미지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그 상황의 전개들은 바로 우리들의 머리에서 이루어지고, 독자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림 2) (그림 3)




(그림 2) <만화의 이해>, 75p.







(그림 3) <만화의 이해>, 76p.




 이런 식으로 부분들을 목격하면서도 이것을 전체로 인지하는 이런 현상, 즉 칸과 칸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을 상상할 수 있는 현상을, 저자는 '완결성 연상' 작용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만화만이 가진 힘이다. 물론 영화와 소설에서도 독자의 상상력으로 장면을 채워가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만화의 경우 그것이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상 만화는 끝없는 '완결성 연상'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만화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수용자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매체라는 것이다. 








(그림 4) <만화의 이해>, 106p.








(그림 5) <만화의 이해>, 107p.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런 식으로 만화가 독자에게 읽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론을 정립시켜가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낸다. 만화의 '칸'에 대한 많은 고민과 탐구의 흔적들을 본문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그림 4), (그림 5)는 만화의 칸과 그 속의 내용이 만화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칸 그 자체가 만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형식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동양과 서양의 만화 발전양상 또한 흥미롭게 접근시킨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가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서양만화와 일본만화의 차이를 짚고 비교하는 부분이었다. 


 서양과 일본만화는 만화의 스토리, 캐릭터, 단순화의 정도, 주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연출 등 모든 면에서 명백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여기서는 일본만화와 서양만화를 비교하는 것이라서 '서양만화'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유럽과 미국의 만화형식도 서로 많은 차이를 보이긴 한다) 최근에야 많은 교류가 일어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는 추세이다. 연출이나 외적인 그림체 모두. 서구의 만화들은 일본만화의 연출법에서 자신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혁신적인 것들을 깨우쳐 그들의 것에 적용시키고 있고, 반대로 서구의 코믹스 스타일에 영감을 받고 그 영향을 받은 일본만화도 급격히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몇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의 만화들과 일본의 그것은 판이하게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었고, 만화라는 플랫폼 하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각자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 책에서 여러 기법과 방법을 언급하며 일본과 서양의 연출적 차이를 분석하고 연구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많은 예를 들 수 있는데, 흥미로운 여러 내용 중 하나만 들어보자면 일본만화는 서량의 코믹스와 달리 만화의 칸에서 '여백의 힘'을 일찍 깨우쳤다는 것이다. 이는 매체의 알맹이뿐 아니라 동시에 정적과 여백에도 큰 가치를 부여하던 동양적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서양의 코믹스에서는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의 칸과 칸 사이에 여백을 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를 필두로 한 일본의 만화가들은 일찍부터 '여백'의 존재를 의식했고, 곧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칸과 칸 사이에서 여백이 만들어내는 마법에 주목해왔던 것이다. 일명 간격의 예술이라는 것을 만화에 적용시킨 것이다. 칸과 칸 사이에 얼마나 간격을 두느냐. 이 간격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 일어나게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고. 




(그림 6) <만화의 이해>,111p.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를 통해 간략하고도 명시적으로, 효율적으로 설명해낸다. 우리가 만화를 읽을 때 무심코 넘겼던 이런 칸들에도 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림이 칸을 넘어 칸이 종이 모서리 끝까지 뻗쳐 있을 때 일어나는 효과들 말이다.(그림6) 

 칸이 종이 모서리 끝까지 뻗쳐 있던 이런 연출이 이전의 서양만화에선 전혀 시도되지 않던 방법이었다니! 새삼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의 내용을 읽고 곱씹으며 새삼 생각하게 된 점도 있다. 만화가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같은 '시청각'매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 차이는 바로 만화의 경우 수용자가 작품을 읽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중에 멈추거나 내용을 건너뛰거나 재생속도를 조절하지 않는 한, 영화의 경우 2시간짜리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고 했을 때, 2시간보다 더 짧거나 긴 감상시간은 나올 수가 없다. 영화(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영상. 즉 움직이는 그림+소리 매체)는 사용자가 재생의 속도를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비교적 수동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매체라는 것이다. 


 반면 만화의 경우는 다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보다 조금 더 '능동적 감상'의 형태를 취한 매체이다. 자신의 눈이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을 얼마든지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빠르게 읽고 싶으면 책장을 빨리빨리 넘기면 되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느낌좋은 그림이 나왔을 때는 언제까지고 그 페이지에 시선을 두어도 된다. 반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화면이 시청자를 기다려주는 법은 없다. 그리고 만화는 자동으로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는다. 다음 장을 보려면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웹툰의 경우도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이 능동적으로 감상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 매커니즘은 같다) 이런 면에서 만화는 단순 시청을 넘어 조금 더 감상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매체이다. 그래서 더 다양한 감상방법이 나올 수도 있고, 더불어 다양한 느낌과 후기가 생성될 수 있는 흥미로운 매체인 것이다. 

이것이 곧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마법이고, 만화라는 장르가 고유하게 가지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생각해보게 된, 처음 인지하게 된 신비로운 개념들이 너무나 많다. 만화를 이제까지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만화들을 읽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던 '만화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틔워주는 책이다.



 

 


 앞에서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전부 스콧 맥클라우드가 가장 먼저 찾아낸 연구성과인 것은 아니다. 이전의 관련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정리해놓은 이론을, 스콧 맥클라우드는 자신의 주관과 의견을 조금 곁들이면서 다시 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만화의 이해>에서의 이 설명이 더욱 가치있고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것을 '만화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만화라는 표현 방식은 정보의 양과 전문성 측면에서 글로 풀어 설명하는 것에는 절대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만화와 그림으로 그려 설명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이미지화한 상황들을 새롭게 인지시키고 또한 쉬운 설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앞에서 보았던 식으로,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우리가 만화를 보고 접하며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펼쳐 분석한다. 

우리가 만화를 읽으면서 훓고 넘어갔던 수많은 페이지의 수많은 연출들이, 모두 그 의도가 있기에 그런 연출이 존재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는 것만으로(물론 가끔은 의도되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전까지 읽었던 만화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 주는 것이다. 이 만화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좋은 문학, 좋은 그림,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연구와 발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많은 노력과 연구가 있더라도 타고난 재능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 혹은 독창성이 없다면 수작 소리는 들을지언정 '세월이 흘러도 남을 명작'이라는 호칭은 얻지 못한다. 만화도 다른 문학, 그림, 영화 등의 것들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만화'에 대해서는 종종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작품성있는 '좋은 만화'를 만드는 데에는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거나 간과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좋은 만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과 노고를 분석하고 짚어낸 이 책은 더욱 가치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자연스럽게 펼쳐 훑어보는 만화책의 근간에는, 알고보면 수없이 많은 선구자들의 만화연출에 대한 탐구와 고민, 연구가 있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민과 땀방울에 의해 닦여온 발판인 것이다. 이 책은 이 당연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다시 들춰내며 다시금 자그마한 깨달음을 준다. 







 사실 아무리 이 책을 소개하려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이 책을 이해시키기 위해선 직접 한 번 읽어보게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만화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좋은 이론서이며, 더욱이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있어 더욱 값진 이정표가 될 책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완전히 색다른 시선으로 만화를 대하게 해 주는 책이다. <만화의 이해>를 읽고 난 후, 내가 예전에 읽었던 아무 만화나 집어 다시 한 번 찬찬히 보자.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만화의 칸과 칸이 상호작용하며 이뤄내는 마법들과, 만화 속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온갖 움직임과 말풍선이, 그리고 만화의 배경으로부터 창조되는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저자의 위트있고 재치있는 연출과 만화적 설명 덕분에, 자칫 만화연출에 대한 딱딱한 연구글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너무나 명쾌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해낸다. <만화의 이해>는 굳이 만화를 분석하며 보라는 말을 하는 책은 아니다. 만화를 보기 위해서는 만화 본질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에서 이뤄지는 만화의 분석은 그저, 궁극적으로 만화에 대한 이해와 본질에 대한 탐구심을 잡아꺼내는 것이면서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만화감상과 그 해석에 풍요로움을 더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이를 읽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기도 한다. 만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보게 하고, 그리고 예술 혹은 하나의 광범위한 매체로써 만화의 쓰임새와 가치에 대해 역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만화의 이해>라는 책이 1993년에 출판되어 어느덧 20년도 넘게 흘렀는데, 지금 읽어도 이 책은 만화라는 장르를 이해하는데 있어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개론서이자 분석서이다. 나온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보다 만화의 본질을 심도있게 꿰뚫는 만화서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책 이후로 만화를 연구하고 규정해보려는 시도의 서적이 거의 출간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만화라는 장르의 본질 혹은 성격을 탐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20년 전에 멈추어있다는 것이다. 영화나 문학, 심지어 애니메이션까지 여타의 '문화'들이 이미 구조적, 연출적으로 수많은 분석과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여러 논쟁과 건설적 비판 또는 토론을 거치면서 그 매체 자체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정립되고 관련 학문적 토양은 굳건해져갔다. 반면 만화라는 장르는 현재 굉장히 주목받고 있는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론이나 토론의 근간이 될 기초이론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비평에 대한 풀도 좁을 뿐 아니라 애초에 확립해둔 연구성과가 거의 없다는 암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절망적으로 여길 필요만은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 사람들이 아직 분석해내지 못한 만화의 이론들이 많다는 것이니까. 아직 토론과 논쟁과 비평의 창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고, 앞으로 연구하고 평론하고 비평해나가고 이론을 확립할 공간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 사회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 제한되고 검열되어야 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아직도 만연하다. 더군다나 만화를 '예술'의 한 종류로 생각한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90년대처럼 만화를 태우거나 하지는 않는다면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한결 너그러워졌다는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여전히 거의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영화와 TV프로그램, 소설은 하나의 건전한 문화로써 향유되면서, 막상 만화라는 콘텐츠가 '문화'라고 불리우는 것은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만화를 즐겨보고 그것을 취미로 가진 사람도, 자기 취미를 만화구독이라고 떳떳하게 밝히는 것을 꺼려한다. 최근 수년간 웹툰 플랫폼의 탄생과 활성화로 그런 인식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웹툰에만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고 일본만화나 기타 그래픽노블 등의 경우 여전히 '일부 마니아들만 즐기는 저급 문화'라는 취급을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런 취급을 받는데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최근에는 오타쿠문화와 일본 자체에 대한 혐오와 반발심이 팽배해 그 일본 오타쿠문화의 첨병인 '만화'장르를 싸잡아 불똥을 맞기도 하는 추세이다. 이미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오타쿠문화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숱한 중상모략을 받고 있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만화라는 형식을 갖춘 작품들이 한없이 폭넓고 다양한데도, 그 일부분에 대한 반발심으로 '만화' 전체를 통째로 묶어 멀리하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만화로써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고 널리 읽히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루한 편견 속에 이런 것들에 다가갈 기회조차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한번쯤 그에 대한 타개책을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의 만화에 대한 관심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현재 웹툰 플랫폼에 기반한 '만화'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매우 친숙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성인의 80퍼센트 이상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나라에서, 모바일과 연계한 웹툰 서비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로 들어왔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지하철에서 웹툰의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만화는 이미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접근성 높은 대중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만화를 이용한 여러 시도가 반짝이고 만화에 기반한 상업적 수익모델이 끊임없이 발견되는 가운데에 있고, 또한 광고, 교과서, 산업디자인 등 알게모르게 사회 전반에서 만화라는 형식은 이미 굉장히 다채롭고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출판만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만화는 사회 전반으로 우리 문화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정도로 만화가 문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을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만화의 '문화예술로써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순간 대중들은 여전히 '만화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고 하며 코웃음을 칠 뿐이다만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만화와 예술에 대한 근본적 토론은 바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책에 대한 감탄과 칭찬이 주가 되었지만, 한편 이 책 나름의 한계도 분명히 보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서양인의 시각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동양의 만화와 문화들의 이해에 있어 어느정도의 막연한 환상과 정보 부족이 보이기도 하고, 출간된지 어언 20년이나 지난 책이기 때문에 최근의 상황에 이 만화의 내용과 이론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이 만화가 만화형식에 대한 '완벽한' 답을 제시해주는 책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은 우리에게 더욱 많은 비평과 담론이 이어지기를 원하는 것 같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중들이 만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만화' 라는 매체의 발전에 동참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수없이 반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만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주길, 그와 동시에 새로운 만화가 탄생해주길 말이다. <만화의 이해>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자 표현매체인 '만화'에 대한 깊이있는 담론을 원하고 있다. 


더불어 그러한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만화가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할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 만화 전반에 대한 사회적 통찰이 빈번해질 때, 비로소 만화라는 장르의 이미지는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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