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 프랑 1
키기츠 카츠히사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키기츠 카츠히사 작가의 <프랑켄 프랑>을 봤습니다.   


본격 메디컬 호러. 

최근 우리나라에도 정식발매되어 전 8권으로 완결된 작품이죠.




일단 19세 딱지를 달고 있는 '고어'물 입니다. 그렇지만 슬래셔 무비처럼 살인마가 활보하며 사람들을 찢어죽이는 종류의 광기가 아닌, 일단은 '의료' 만화입니다. 하지만 유혈이 낭자하고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사이코틱한 의료 만화

수술하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고 박력있게 보여주면서,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겪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해프닝들을 보여주는 것이 주 전개방식이죠. 한 화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구성입니다






주인공 마다라키 프랑





<프랑켄 프랑>의 주인공인 '프랑'은 실력이 뛰어난 의사입니다. 다만 그녀는 인간이지만, 동시에 어떤 권위있는 의료계의 저명인사가 만들어낸 인조인간이기도 합니다. 프랑은 단정하게 의사 가운을 입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얼굴에는 누덕누덕 기운 자국이 보이고 양쪽 귀 부근에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철심을 박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프랑'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로 한 것이겠죠) 


그녀는 독보적인 수술 실력을 가지고, 여러 의뢰와 수술을 해 나가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색다른 접근법과 해결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하려 수술을 하죠. 그리고 수술결과는 항상 엽기적이고 기괴합니다. 그리고 극히 일부의 해피엔딩을 제외한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사람들은 신체 개조를 당하거나 결국 비극을 맞게 됩니다. 






 

프랑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만 낸다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손님 자신이 원하는 수술을 해 준다는 게, 의사 프랑의 생활신조이죠.

단, 프랑은 수술 이후의 결과에 대해선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의한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라는 것이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는 사람들이 가진 욕망과 욕구를 그대로 들어주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거진 엽기적이고 해괴망측한 수술결과로 끝나고 대부분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대부분'이라는 말을 쓴 건, 간혹 해피엔딩일 때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프랑이 생각하는 해결책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해결책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죠. 그렇게 행해진 수술에 의해 벌어지는 끔찍하고 엽기적인 해프닝이 <프랑켄 프랑>의 주된 내용입니다.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을, 약간 맛이 간 사람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사건들과 다양한 참사가 벌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웃지 못할 해프닝을 보는 재미. 프랑의 이상과 끔찍한 현실(제 3자가 보기에는)의 괴리에서 오는 아이러니컬함이 작품의 기괴한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려 찾아온 한 남자의 의뢰를 받은 프랑. 

그녀는 보시다시피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며 스스로 박애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사실 프랑이 저지르는 일들은 대부분 악의 없이 순수한 박애심에서 비롯되어 저지르는, 일종의 거대한 실수입니다. 본인은 자기 자신을 박애주의자라고 여기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인물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보편적인 사고방식에 크게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바람직한 인간상에 가까운 인물이죠.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라는 목표에만 부합하면 그 사람의 형태나 의지는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의 몸을 벌레의 몸으로 바꾸어놓거나, 사고로 머리만 남은 사람을 머리로만 살 수 있게 하는 등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저지릅니다. 그저 인간애 하나로 모든 것을 포용하다 보니 일어난 대참사라고 볼 수 있겠죠.

프랑은 사고방식 자체가 정상에서 약간 먼 인물이고 자신만의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전부 자기 본위로 해석하고 수술로 인한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며 항상 흡족한 표정을 짓습니다. 






수술은 대체로 이런 분위기. (이 장면 이후에 본격적인 수술 장면이 나오는데, 떡하니 올려놓긴 징그러워서 잘랐습니다...)





주인공인 프랑은 압도적인 수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집도 능력으로 그녀를 찾는 이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 수술의 대가는 항상 예측불허하고 참담하죠. 


사실 많은 경우 그런 일을 의뢰하는 사람의 의사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프랑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만화는, 의술 또는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손쉽게 자신의 열망을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경고일 수도 있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노력 없이 의술에 기대어 모든 것을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성형' 문제에 대입해 생각해 보면 참 생각할 여지도 많군요.(아, 생각해보니 성형과 연관된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이 선의와 인류애에 의해 자행한 일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생각해볼 부분이기도 합니다. 



'성형'을 다룬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마지막 대사가 저는 참 인상깊더군요. 

"자기 결정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지"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저 말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엔 프랑의 여동생이자 살인청부업자인 '베로니카'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베로니카는 언니인 프랑과 성격적으로 명백히 대비되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의 경우 인간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죽고 싶다 해도, 생명 그 자체를 살리는 것을 중요시하는  반면 베로니카는 자신이 살인을 할 때는 고통을 최대한 없애려 빨리 죽인다면서, 고통스럽게라도 굳이 인간을 살리려는 언니 프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베로니카




하지만 언제나 사람의 고통을 최소한도로 줄여주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베로니카는, 오히려 언니 프랑에게 '넌 이해할 수 없어'라거나 '베로니카 너는 조금 상냥해질 필요가 있어...'라는 훈계를 듣기까지 하죠. 


우리, 그리고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프랑보다는 베로니카의 가치관과 유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생각을 투영하는 베로니카는 언니 프랑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아예 부정당하죠. 프랑의 해결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상식 선에서의 해결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믿어온 생명윤리와 가치관을 부정당하고 뿌리까지 뒤흔드는 것이죠. 






이처럼 작품 내내, 프랑의 가치관은 우리를 괴기한 혼란과 충격에 빠트립니다. 진정한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당사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생명 자체의 존엄성이 끝까지 추구되어야 하는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우리를 아리송하게 하죠. 


<프랑켄 프랑>은 이처럼 우리가 믿고 있던 상식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촌극을 연출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가치관들을 뒤흔들고 깨부수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사람과 생명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곱씹게 합니다. 








<프랑켄 프랑>은 잔인하고 자극적인 만화인 동시에, 굉장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편 각 에피소드마다 스토리적 완성도가 매우 훌륭하고, 그림실력과 연출력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서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훌륭하죠.


다만 매우 그로테스크한 고어만화라는 장르 때문에 취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릴 뿐...작품 자체는 만화로써 완성도 높고 충분한 재미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매 화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는 여러 참신한 소재와 스토리를 보면서 작가의 그 상상력과 창의성에 감탄이 나오는 만화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최고의 상상력을 지닌 작품이죠. 



이 작품의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주인공인 프랑과 베로니카를 비롯한 여자 등장인물들을 참 귀엽고 사랑스럽게도 그려낸다는 것입니다. 펜선도 대체로 둥글둥글한 편이고,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초롱초롱한 눈매를 가진 여자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의 분위기와 상반된 그림체의 갭이 이 만화의 매력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렇지 않게 인체실험을 하는 예쁘장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한 번쯤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픈 작품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팔랑팔랑 넘기며 읽어도 재미있고, 각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파헤쳐가며 그 의도를 생각해 보거나 자그마한 고찰을 해 가며 읽어도 좋을 만화. 넘쳐나는 블랙코미디를 보며 웃고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다만, 그로테스크함에 면역이 없는 사람은 웬만하면 절대 보지 않기를 권합니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쉽게 읽혀질 만한 내용이 아니며, 사람에 따라 구역질날 만한 장면이 충분히 있으니까 말입니다. 19세 딱지는 괜히 붙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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