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 평전 : 나는 바람, 그대는 불
안네마리 쉼멜 지음, 김순현 옮김 / 늘봄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서는 사람들의 인용 속에서만 조각 조각 등장하던 이슬람 수피 신비주의 시인 루미.


루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안네마리 쉼멜(Annemarie Schimmel) 박사의 루미 연구서가최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름하여 [루미평전: 나는 바람, 그대는 불].


안네마리 쉼멜 박사는 독일 개신교 중산층에서 태어났지만19세에 베를린대학교에서 이슬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한 천재이다.(논문 제목은 "중세 이집트의 칼리프와 콰아디의 지위" <- 위키피디아 영문판)


하버드대학교에서 25년 동안 교수진으로 가르쳤고, 하버드 명예교수, 독일 본대학교 명예교수 등을 역임한대단한 이슬람 전문가이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의하면그녀의 베를린대학교 은사 한스 하인리히 쉐더(Hans Heinrich Schaeder)의 영향으로 루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수피교라 하면정통 이슬람이라 불리는 수니파, 시아파에 의해 비정통이라 불리며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흰옷을 입고 빙글빙글 도는 '회오리 명상 춤'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의 인용 속에 등장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영성가 루미 역시오랜 시간을 바로 이 춤과 음악을 통해 명상하며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 책 곳곳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기본적인 이슬람 교리의 근본 구조가 신과 인간의 차이와 거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실제 이슬람교가 적용될 때는신 또는 진리와의 합일을 강조하기 보다, 신의 발톱의 때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강조하게 된다.이러한 구제불능의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종교적인 의식이 내면적인 각성보다 강조된다.어차피 인간이라는 존재는진리를 깨닫거나 각성된 삶이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사라도 제대로 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루미로 대표되는 이슬람 신비주의가 진리와 합일되는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또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정통적인 이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비주류로 보일 수 있다.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내적인 각성인 것이다.형식도 내적 깨달음으로 가는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

더구나 춤과 음악이라는 것은이슬람교를 비롯해 모든 보수적 종교가 불경하게 여기고 점잖지 못하게 생각하는 요소이기 때문에루미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논쟁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심지어 춤과 음악을 허용하는 수피즘 내부에서도고참에게는 영성의 도구로 춤과 음악이 허용되었으나 신참에게는 쾌락의 도구로 '잘못 사용될 위험성' 때문에허락되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영성을 탐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루미의 경우본인 스스로가 음악과 춤을 득도의 굉장히 중요한 도구로 보았으며 루미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아나톨리아 지역이 예로부터 음악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즉 루미의 태생이 명망있는 이슬람 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과학문의 중심지이자 금욕적인 신앙의 중심지였던 발흐 출신이었다는 점, 이란 동부의 신비주의 시인들의 영향,그리고 앞서 언급된 음악의 영향 등이 그의 영감 넘치는 시의 풍부한 자원이 된 것이 분명하다.


이슬람교가 막연히 테러리스트의 종교라거나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이 단순히 관광거리에 불과한 회오리 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좀 더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이 책의 저자 안네마리 쉼멜의 태생적인 배경이 루미 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무리 정통한 이슬람 학자이고 평생 신비주의 시인 루미를 연구한 안네마리 쉼멜이라 하더라도 독일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고 여전히 서구인의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 루미에게서 발견되는 유대-기독교와의 유사성 내지 연관성의 차원에서 <꾸란>을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유대교나 기독교처럼 유일신관을 가진 이들에게 루미는 결코 낯설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국내 출판 시장 안에 상업주의 일변도로 치우치지 않고 인문과 교양의 수준을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귀한 땀방울들이 있음을다시금 고맙게 여기게 되는 또 하나의 노작이라 하겠다.


번역자 김순현의 이력도 특이한데이슬람 신비주의자에 대한 책을 개신교 목사가 번역했다는 것이누군가에게는 큰 일 날 일이겠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적인 일이겠다.

역자 김순현은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번역에도 참여했고 디트리히 본회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책을 여러 권 번역한 전문번역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