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3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재호 옮김, 엄인정 해설 / 생각뿔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체호프는 늘 소설에 마법을 부린다. 사랑 없인 살지 못하는 한 평범한 여인의 일생을 짧은 분량 안에 녹아내면서도 그녀의 감정, 그녀가 사는 마을의 냄새 따위를 독자에게 전염시킨다.

 

 

난 당신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당신은 정말이지 참으로 좋은 사람이에요.”

...

그녀는 여름에는 현관 계단에 앉아 있었고, 겨울에는 창가에 앉아서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이 불고 성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갑자기 지난날의 추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달콤한 감상이 가슴을 옥죄는 듯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마음은 다시 공허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

그녀는 커다란 학생모를 쓰고 보조개가 팬 이 소년에게 사랑의 기쁨과 눈물, 그리고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뭐냐고? 그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 올렌카의 한탄 섞인 울음과 사랑할 때의 반짝임은 몇 줄로 충분히 묘사된다. 체호프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올렌카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하급 관리, 삼류 작가, 군인들... 거대 담론이나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기보다는 이들의 생활속에서 묻어나는 누추하고 핍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내가 체호프의 단편을 읽는 분명한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서사시도 아니고, 자기 탐닉에 빠져있는 진부한 욕망표출도 아니다. 하지만 체호프의 글 속에는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우리를 전율하게 하고,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인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들의 인생이면서 또 나의 인생이기도하기 때문에 재밌다. 어쩌면 무심하고 소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빛나는 이야기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 보편적인 인간사들인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체호프 단편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나약한 다윗들의 시대다. 빈곤과 불평등을 일소하자며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잔치가 난무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체호프의 세계관이 절실하다. 그 어떤 나약한 존재라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훌륭한 사상이나 선명한 구호 이전에 이들부터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호프의 작품에서 느껴보자.” 체호프 단편선에 등장하는 수많은 다윗들을 만나 작은 위로를 받아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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