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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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장르 중 가장 대중적인 분야를 꼽으라면 '소설'을 들 수 있다. 소개할 <호르몬이 그랬어>는 자음과모음에서 출간한 단편소설집으로 '트리플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책이다. 트리플 시리즈라는 말답게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엮고 있으며 '작가-작품-독자'의 세 주체가 유기적인 연결이 이어지길 기대하는 야심찬 기획작이다. 현대 소설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박서련 작가의 <호르몬이 그랬어>를 필두로 은모든, 배기정, 임국영, 한정현 작가의 작품도 출간 예정돼 있다.

<호르몬이 그랬어>는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호르몬이 그랬어>, <총>의 세 단편 소설과 에세이인 <......라고 썼다>로 구성된다. 세 편의 소설은 30대인 소설가가 10여년 전에 쓴 작품이라 그런지 '날 것'과도 같은 어조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덧창까지 닫힌 모텔 창으로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28쪽 - 다시 바람은 그대쪽으로)

"점퍼를 입고 아랫도리는 벌거벗은 나를 하염없이 본다"(78쪽 - 호르몬이 그랬어)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을 난들 어쩌라고"(100쪽 - 총)​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어지는 에세이인 <......라고 썼다>에서 이 작품들을 "참 많이 미워했다"고 말한다.

"쓴 사람의 자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그 자의식이 몹시 미숙한 한편 기를 쓰고 어른인 척하고 있음을 지나치게 잘 알아볼 수 있어서다."(120쪽 에세이에서)​

독자인 나 역시 이런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미숙'한 가운데서도 20대의 치기 어린 당돌함이 느껴져서 그런대로 읽어 나갔다.

첫 번째 소설인 <다시 바람은 그대쪽으로>는 소설 속 주인공인 '나'가 20대였던 자신의 모습을 회고하며 글을 쓰는 이야기다. 30대인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20대의 '나'가 작성한 글은 무척이나 어리숙다.

"하품조차 나오지 않는 문장이고, 아무리 한참 전일이라지만, 내가 쓴 것이어서 냉정하게 생각하기가 어렵다."(14쪽) ​
현재의 박서련 작가가 세 편의 소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과 흡사하다. 소설과 수필의 경계에 놓인 듯한 인상을 받았다.

줄거리 역시 다소 파격적이다. 두 명의 애인과 애매한 관계의 남사친 예. 미묘한 애정전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의 모습은 당돌하면서도 조금은 외로워보였다. 충족되지 않는 애정을 갈구하는 느낌을 받아서일까. 20대의 '나'는 그런 것만 같았다. 다시 소설은 30대의 '나'의 시점으로 전환되며 '예'를 다시 만나는 설정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후 이어지는 <호르몬이 그랬어>는 '호르몬'의 변화를 둘러싼 독특한 소설이다. 여기서 호르몬은 흔히 '그날'이라 불리는 생리를 지칭한다. 여성 화자인 '나'는 호르몬의 변화를 극심하게 겪는 터라 빈혈 증상이 심하다. '나'의 모친도 아직 폐경이 오지 않았다. '나'와 모친은 함께 살고 있지만 호르몬 주기는 늘 다르다. '나'의 모친에겐 애인이 있는데 어느날 '나'는 모친의 애인과 "한마디로 해버리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런데 역시 '호르몬'이 말썽이다. 갑작스러운 생리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그랬어.(78쪽)"라는 쪽지를 남긴 채 집으로 돌아오며 마무리된다.

<다시 바람은 그대쪽으로>와 <호르몬이 그랬어>는 모두 여성 화자인 '나'의 주체적이고 개방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두 소설의 화자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 소설 작품인 <총>은 '나'와 '너'의 연애담이다. 20~30대의 위태로운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했다. 주인 몰래 단칸방에서 동거하는 둘은 그 작은 공간에서 사랑을 노래한다. 서로의 사랑을 다짐하고 속삭이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러던 어느날 '너'가 일산화탄소중독으로 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나'는 어느샌가 '너'를 담아둔 스포츠 색을 잃어버리곤 '너'를 떠나보내게 된다.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이란 의미의 제목처럼 둘의 흔적이 텅 비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에세이 <......라고 썼다>와 해설 <겨울의 습작>은 작품을 한층 깊이있게 소개한다. 에세이에서 작가는 세 편에 대한 소감을 꾸밈 없이 드러내고, 해설에서는 '청춘의 겨울나기'에 주목해 세 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드러내준다. 작가-작품-독자의 트리플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소 파격적인 소재와 줄거리가 인상적인 <호르몬이 그랬어>는 단편소설집이라 그런지 각 소설의 분량이 적어 읽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 한편 기존 소설의 틀을 깬 도전적인 구조가 작품 속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 소설의 시류를 알고 싶다면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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