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관찰학 입문
아카세가와 겐페이.후지모리 데루노부.미나미 신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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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관찰의 어려움

관찰은 디자인의 시작이고 기본이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현재 상황에서 좀 더 나아질 지점이라던가, 달라졌으면 하는 부분을 포착하고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제안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관찰하는 것은 시작이자 결과까지 영향을 지대하게 미친다. 하지만 어릴 적의 유치원이라던가 초등학교에서 개미 혹은 식물 ‘관찰’ 경험 때문인지 ‘관찰한다’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의외로 ‘관찰’이라는 것이 쉽지 않더라. 관찰을 통해서 차별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기를 바라지만, 종종 누가 봐도 뻔한 것들만 보이고 혹은 관찰을 통한 발견은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더’잘‘ 관찰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노상관찰학입문>을 굉장히 실용적인 이유로 다가갔다. 언어화된 ‘관찰 행위’을 습득하여 관찰 과정과 그 이면의 철학을 타인에게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도움받거나, 인정받고자 했다. 관찰을 잘하고자 하는 실용성에 기인한 나의 욕망은 노상 관찰 학의 무용을 설명하는 책의 앞부분부터 맥없이 풀어지고 만다. 노상 관찰 학의 중심에는 이것저것 재야 하는 실용성을 따지는 태도에서는 피어나기 어려운, 무용할 때만 생겨날 수 있는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지나치던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함” 앞에는 ‘진심’이 있다. 본인의 감정이나 욕망을 뒤로하고 과학자의 마음으로 대상을 진심으로 바라볼 때만 보이는 것들인 것을 발견한다. 나는 이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하기 위한 다음 네가지 태도를 발견하였다. 


하나.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실용성에 기인한 욕망을 넘어서서 우스꽝스러워 보이더라도 진지한 태도로 무용한 것에 진심을 다하는 노상 관찰자들의 순수한 진심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책에서 언급한 두 가지 욕망, 어떤 것에 도움을 주려는 ’ 도움파‘ 혹은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파’을 노상 관찰자들은 가볍게 넘는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남들은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잊힌 사물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개똥의 위치, 형상, 상태 등이라던가, 유럽 방귀 채집이라던가 맨홀, 토머슨, 건물 파편을 모으는 그들을 모습과 과정을 읽어보니, 내가 관찰을 어려워했던 이유는 순수한 호기심의 결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관찰에 필요한 집중력을 발휘해 볼 용기를 감히 내지 못했던 것일지도. 무엇을 발견할지도 알 수 없지만 호기심에 일단 내딛고 인내하는 마음이 1등이 되려는 조급한 욕망에 가려버렸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치가 없는 것에 자기가 직접 가치를 매기는 일은 정말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고현학에서 시작하다> 아카세 와가 p116


둘. 있는 받아들이는 있는 자세

노상 관찰의 눈으로는 절망적인 상황도 흥미로운 지점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노상 관찰자가 간토대지진 와 같은 자연재해를 대하는 방식은 불편함이라던가, 절망을 앞세우는 대신, 새로운 관찰 대상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낀다. 이것은 마치 순수한 아이 같다. 이전의 방식이라던가 그 전의 오브제를 그리워하고 돌려놓으려는 대신, 새로 일어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오히려 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어나 버린 자연재해는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 그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테니까. 무용을 내세운 노상 관찰은 오히려 더 유용하게 느껴졌다.


재해가 일어나면서 도시는 전부 잿더미가 되어버렸죠.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도시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함석으로 지붕을 만들고 찌그러진 냄비 하나로 밥을 먹었어요. 어떻게 보면 서툴고 낯선 첫발이었죠. 모든 것이 신선했어요. <고현학에서 시작하다> 후지모리 p94


지금까지 인간 세상은 거의 질서를 쌓아오며 완성해 왔어요. 마치 5층 석탑처럼. 그것이 재해로 폭삭 무너져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자 그때까지 질서 있게 쌓여 있던 물건들이 전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물상을 보고 신선하다고 느낀 그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붕 기왓장 옆에 유모차가 있고 그 옆의 부품이 다 드러난 시계가 있는 모습이 펼쳐졌어요…(중략)… 어쨌든 망가진 것들은 정말 흥미로워요. 새로운 게 보여 두근거립니다. <고현학에서 시작하다> 아카세가와 p95


셋.  오래 사랑하기 위한 절제

관찰은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다. 디지털, 데이터가 흔하게 너무 당연해진 이 시대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디지털 바깥에 존재한다. 그리고 디지털 바깥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수집은 사실 많은 협력을 요구한다. 면밀하게 그리고 타인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이치키 쓰토무의 건물 파편을 수집 과정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이 정도는 진심이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파편을 줍다>에서 서술하는 건물 파편 수집의 과정은 치밀하고 간절하며 절도 있다. 건물을, 파편을 줍는다는 것은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게는 꽤 고난도의 수집이라고 느껴졌다. 새로운 개념이라 설명이 많아지고, 현장 사람들이 귀찮아질 수도 있다. 그는 민첩하고도 인내심 가득하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오로지 진심과 진지함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의 생업 선을 넘지 않는다던가,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그만의 규칙은 그가 파편 수집을 가능한 한 오래오래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 섣불리 판단하지 않음

책의 앞부분에서는 노상 관찰 학의 무용함을 전면에 앞세웠지만, 책은 사실은 노상 관찰 학의 유용에 대해 나긋하게 중저음으로 천천히 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역사‘의 기본을 관찰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관찰은 종국에는 현재의 기본이라고 못 박아 놓는 것이 아닐까. 간편함, 효율성을 강조하며 피부에 닿는 변화에 빠른 이 시대에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만 자세히 보이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그 깊이와 다양성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점점 더 다양해지지만, 변화의 가속도가 붙어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음미할 수 없이 긴장감이 고조되는 이 시기에 말이다. 


.. 이 히스토리라는 개념에 고현학적 의미를 더한 이가 박물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유명한 <동물지>를 쓰기에 앞서 히스토리를 ‘체험과 관찰의 성과를 기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박물학은 노상관찰의 아버지> 아라마타 히로시 p377


시턴이 실천한 것은 박물학을 둘러싼 ‘근원적으로 즐기는 어떤 방법’의 기술이며 비법이다. 그것은 가령 컬렉션(수집)이라는 근원적 행위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좇는 것은 모으는 것이며 모으는 것은 다양성을 안다는 것과 같다. 즉 박물학이란 깊으면 깊을수록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대상이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확산하고 증대한다. <박물학은 노상관찰의 아버지> 아라마타 히로시 p401


마무리. 조금은 서글픈

1980년대에 쓰인 <노상관찰학입문>은 2024년 현재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공감간다. 그때에도 ’ 물건‘의’사건‘과’사물‘이 별개로 다뤄져 서글펐던 그 당시의 현실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노상관찰자의 눈으로 보면 노상에 있는 모든 것은 ’ 사물‘이라는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다. 그런데 노상의 세계는 사건과 물체라는 두 가지로 성립하다. 사물은 ’사’와 ’ 물‘로 나뉘며 구체적인 사물에 각각 ’ 건‘이라는 글자를 더해 ’ 사건‘과 ’ 물건‘이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각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있다. 사건은 도심 복합빌딩 2층에 사무소를 차려 탐정이 취급하고, 물건은 복합빌딩 1층에 사무실을 차리는 부동산에서 다룬다.” <노상관찰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P39

책이 쓰인 지 4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물건과 사건은 각각 별개로 다뤄지고, 물건 속의 쌓인 사건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우를 도시 속에서 종종 접한다. ‘사건을 좇는 탐정의 눈으로’물건‘ 속 사건의 존재를 기꺼이 찾으려던 1980년대의 노상 관찰’이 2024년에도 여전히 부족하기에 더 간절하다는 사실은 반갑기도 하고 아직도 서글프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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