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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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피곤하게 느껴지고...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지만, 당장 여행을 떠나기엔 부담스러운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햇볕이 아깝잖아요』는 저자가 결혼 전부터 신혼 시절까지 작은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며 보낸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스스로 말했듯,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을 쓰고자' 해서였을까? 책에 담긴 글이 소박하고 평범해 전업 작가의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저자는 소설가다. 그것도 일본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한 봉준호 영화감독의 말을 빌리면, 아마도 창의적인 소설 이전의 가장 개인적인 것, 그 날것이 이 책이지 않을까. 달리 말하면 씨앗과도 같다. 앞으로 어떤 싹을 틔우고, 어떤 꽃이나 열매를 맺을지. 그 작은 베란다에서 보낸 소중한 시간이 저자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저자는 비록 빌린 집에 살면서도, 그 안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잠깐 왔다 가는 삶을 살면서 '내 땅', '네 땅'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허나 "저 경치는 다 내 거야"라고 말하며 빌린 경치를 즐기는 저자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채워짐이 느껴진다.

저자가 손수 꾸민 베란다 정원 이야기를 그녀가 손수 그린 그림과 함께 읽다 보면, 수목원을 거닐 때처럼 마음이 한가로워지기도 한다. 식물의 느긋한 시간에 맞춰지듯. 작은 베란다에서 겨울과 같은 시기를 견뎌낸 저자는, 단지 휴식만 취한 건 아니다. 식물의 자라남과 함께 저자의 마음도 자라났으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꽃이 지고 열매를 맺기까지, 혹은 또 다른 씨앗이 되기까지, 아니 밑거름이 되기까지... 저자가 식물의 '생과 사'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작가로서 순조로운 출발을 했지만, 세상의 잔인한 솎음질을 감당해야 했고, 그 속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 할지라도, 그저 쓰레기가 되는 것도 괜찮다고, 내가 해야 할 일, 즉 글 쓰는 일을 계속하리라 스스로 다짐하는, 그녀의 글은 햇볕처럼 따사롭다.

"누구에게든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 필요하다"(16쪽) 저자에게는 그 공간이 베란다 정원이었다. 정원이 아니어도 좋다. 나만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상과 일상 사이에 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휴식 같지만 삶의 변곡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유충에서 성충으로 가는 과정에 번데기가 있듯,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 번데기 만한 공간과 그 안에서의 시간은 필수 코스가 아닐까.

저자는 더 이상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 가드닝에 쏟은 집착과도 같은 열정은 육아로 잠시, 옮겨갔다. 가드닝과 육아는 비슷한 면이 많다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매일의 날씨와 길가의 식물들, 해가 뜨고 지는, 그 모든 경치에 눈길이 간다. 엄마의 베란다에 식물이 가득한 것을 보면, 아이가 다 자란 뒤 언젠가는 나도 정원을 가꾸고 있을 것만 같다.

"흐르기 시작한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134쪽) "한 번 시작된 삶은 되돌릴 수 없다"(135쪽) 그러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겨울이 지나가기를. 우리의 일상에도 봄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그저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주어지는 오늘의 햇볕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그 순간만큼은 내 햇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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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m.blog.naver.com/counselor_woo/221901869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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