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를 너에게
사노 요코 지음, 히로세 겐 그림,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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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새는 익숙한 안데르센 동화 『파랑새』를 떠오르게 한다. 새를 찾아 떠나는 『파랑새』와는 달리, 『나의 새를 너에게』에서는 새가 사람들을 찾아간다. 정확히는, 우표 속의 새가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시,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파랑새』는 극적인 반전으로 '가까이'에서 새를 찾았지만, 『나의 새를 너에게』는 인연에 의해 잃어버린 새를 찾는다. 필연과도 같이.

동화 같은 이야기의 짤막한 소설이지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저자는 독자의 몫으로 돌린 것 같다.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의 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나에게 온 새는, 즉 새의 의미는 '가치'다. 가치를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새와 본 적 없는 글자가 그려진 우표로 형상화한 듯하다. 그 자그마한 우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다양한 삶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엄마 배에서 태어났을 때, 자그만 사내아이의 이마에는 우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5쪽)

우표는 '우편물에 붙이는 증표'(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다. 누군가가 보냈다는 거다. 보낸 이는 아마도 신이 아닐까. 이 사내아이처럼, 우리는 모두 가치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즉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 의사는 과학자라서 두 눈으로 본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쪽)​

사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지 않은가. 저자는 두 눈으로 본 것만을 믿는, 특히 과학자 같은 어른들을 위해 손에 잡히는 우표 속에 새를 그려놓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독자인 우리는 그 우표를 볼 수가 없다. 책 어디에도 그 아름다운 우표 그림은 없다. '이데아'와도 같은,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담아야 했으니. 책 속에 그 삽화를 넣지 않은 것은 현명했다.

「 "내가 감이 떨어졌나 보군. 이렇게 조그만 것은 어렸을 때도 훔친 적이 없는데." 」 (12쪽)​​

값비싼 물건만을 훔치던 도둑이 우표를 손에 쥐었을 때, 중얼거린 말이다. 그의 가슴 주머니에 쏙 들어간 우표는 이따금 도둑의 가슴을 욱신욱신 아프게 한다. 아버지가 도둑질을 그만두고 사서가 되었듯 그도 다른 삶을 선택한다. 그렇게 가치는 우리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

「 학생은 모르는 것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은 추워서 곱은 손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겼습니다. 그러다 책 사이에서 우표 한 장을 발견했지요. 본 적 없는 글자가 쓰여 있고, 본 적 없는 새가 그려진 우표였어요. 읽을 수 없는 글자를 보며, 학생은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어.' 」 (21쪽)

이처럼 욕구가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배가 고파도, 방세를 내지 못해도, 추위에 손이 곱아도 책을 읽기에 여념이 없는 그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가난한 학생의 삶이 낯설지 않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은 하겠지만,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도 계속 책을 읽을 것 같다. 지금도 틈만 나면 책을 읽으니.

「 하숙집 아주머니는 시장에 가려고 서두른 탓에 우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부엌 수납장 서랍에 얼른 우표를 넣고서 그 안에 든 지갑을 꺼낸 다음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 (23쪽)

기회를 잡았음에도, 하숙집 아주머니처럼 삶이 바빠, 가치와 마주할 기회를 쉽게 놓칠 때가 있다. 그러나 술꾼의 아내로 사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인정없어 보일지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걸.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 "거참 대단하군. 자네, 이걸 술 세 잔과 바꾸겠나?" 뱃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고 말고." 하숙집 남편은 그날 밤 마음껏 취할 수 있었습니다. 」 (27쪽)

누군가는 삶의 가치를 겨우 술 세잔의 쾌락과 맞바꾸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잠시 속았다며 그것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반면 누군가는 그것을 소중히 간직한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연인이 죽지 않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의 증표가 되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싹튼 '우정'의 증표가 되기도 하고, 단란한 가족의 '행복'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 '왜 이런 여자가 부자일까? 내가 훨씬 이쁜데.' (...) '예쁘기만 했지 참 멍청하네. 내가 훨씬 더 똑똑한데.' 」 (60, 61쪽)

목수의 딸처럼 외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곤 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긴다. 그러던 그녀에게 그 어떤 것보다 빛나는 '사랑'이 찾아온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심술궂은 행동까지 하며 소유하려고 했던 그녀는 이내 잘못을 고백한다. 사랑하므로. 그리고 그녀는 이전과는 다르게, 더 이상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사랑하므로.

「 그녀는 청년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뭐라고 쓰면 좋을지 몰랐어요.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이 우표의 새는 그 사람 거야. 이 새는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 」 (77쪽)

「 청년이 하얀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봉투에는 그 신비로운 우표가 붙어 있었어요. 안에 든 하얀 종이에는, '나의 새를 전부 너에게 줄게.'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 (81쪽)

그동안 수많은 새를 그리며 갈급해 하던 청년도, 부와 명예 보다 '사랑'에 올인한다. 저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고,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만, 그중에 제일은 역시 '사랑'이지 않을까.

「 "하느님도 용서하지 않을 심술을 부렸는데, 왜 나를 용서해 주는 거야?" "나보다 내 그림을 더 좋아해 주었으니까." 그녀가 청년의 이마에 살며시 키스했습니다. "지금은 너보다 너를 더 좋아해." 청년이 말했습니다. "막 태어났을 때 같은 기분이야." 」 (82, 83쪽)

그녀의 덕분에 청년은 잃어버렸던 새를 되찾았고, 막 태어났을 때 받았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처럼,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런 일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일어날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삶의 묘미일 테지.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것인가.

​새처럼 여기저기를 날아다닌 우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손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저자가 보낸 새를 그냥 놓치지 않기를. 그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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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m.blog.naver.com/counselor_woo/221832867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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