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를 다시 읽는다 2 - 한국 근대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윤해동, 천정환, 허수, 황병주, 이용기, 윤대석 엮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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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6부 <‘민중’의 경험과 기억 -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는 70~80년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민중에 대하여 다룬 글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주로 민중을 ‘변혁의 주체’로 파악하는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방식으로 민중을 바라보고 있다. 책에 수록된 다섯 개의 글은 각자가 바라보는 새로운 민중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1. 증언과 역사쓰기 - 한국인 ‘군위안부’의 주체성 재현

이 글은 일제 말기에 전쟁터로 강제 동원되었던 군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다루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군위안부 여성의 성격을 정조(貞操)라는 성규범의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위안부 생존자의 모습을 기존의 인식과는 다르게 그려내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대부분 위안부 여성의 삶을 ‘정조’ 개념 때문에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한정된 삶의 조건이나마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 온 것으로 서술했다. 이런 접근은 기존 연구가 그들의 피해의식에만 주목하여 갖게 되었던 단면성의 한계를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2. 마을에서의 한국전쟁 경험과 그 기억 - 경기도의 한 ‘모스크바’ 마을 사례를 중심으로

두 번째 글은 한국전쟁 당시 민중의 경험을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 인간들의 실제 경험을 파악하기 위해 특별히 미시적 공간인 ‘마을’에서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이 글 역시 ‘오두리’라는 마을에 내려졌던 기존의 평가를 반박하는 것을 주요 논지로 하고 있다. 필자는 ‘오두리’를 경기도의 모스크바로 파악하는 것은 좌우 양쪽에 의해 과대평가 된 결과라고 이야기하며, ‘민중의 역동성’은 혁명성이라기보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자율성과 대동적 지향에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필자의 평가 또한 기존 민중을 바라보는 단면적 시각을 극복하고 복합적으로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에서 벗어나 민중의 모습을 보다 실제적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3.근대성과 폭력 - 제주 4.3의 담론정치

세 번째 글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이 글은 사건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에 주목하기보다는 사건 과정에서 일어난 국가의 폭력의 정당성에 주목한다. 4.3사건이 민중혁명이든 공산폭동이든 그 과정에서 일어난 국가의 폭력은 부당하다며 이에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연구자가 사건을 조사한 방식이다. 놀랍게도 조사자는 보편적인 방식인 문헌이나 구술 연구가 아닌 굿이나 추모의례를 통하여 사건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이런 조사 방법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굿이란 일종의 미신의 영역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독자가 연구결과를 신뢰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4. 1970년대 여공과 민주노조운동 - '민주대 어용' 균열 구도의 비판적 검토

이 글은 1970년대 민주노조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기존 연구의 입장에 대한 반론을 목적으로 한다. 필자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균열을 '민주대 어용'으로 단순화 하는 연구의 제한성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 당시 일어났던 민주노조의 균열은 '민주대 어용'으로 단순화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으며, 이후에 국가가 민주화운동을 '무모순 운동'으로 순화하는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어용으로 매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글쓴이의 입장이다. 이 글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접근은 상당히 신선하다. 기존의 연구 결과에 정반대의 해석을 제기한 이 글의 접근방식은 사건의 단면화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접근방식은 기존관념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5. 1970년대 여성노동자의 일상생활과 의식 - 이른바 '모범근로자'를 중심으로

이 글은 운동권 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연구와 달리 보통 평범한 여성노동자들의 경험과 의식에 집중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반적은 노동자에 관한 연구는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에 집중함으로써 다분히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보다 여성노동자들의 실생활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이 연구는 노동자들이 어떤 주거환경에서 생활하였는지, 어떤 취미를 즐겼는지 등에 주목함으로써 그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모습을 보다 실제적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역시 연구문헌의 종류이다. 기존에는 흔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모범근로자수기'를 선별적으로 분석해 평범한 노동자의 생활을 추론해 낸 부분은 상당히 새로운 접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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