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랑베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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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천재가 있다. 천재는 위험하다.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오로지 정신으로만 도달하려고 한다. 그가 진리를 향해 다가갈수록, 진리는 그에게 심연을 보여준다. 육체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보며 그는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파멸한다.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존재해 왔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며, 인간을 인간으로 있게 하는 하나의 조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명이란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게 되어 있고, 그 인생을 전부 하나의 목표에 걸어버린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들은 천재이고, 사회 부적응자이며, 인간일 뿐이다. 그들이 인간다운 것을 꿈꾸는 순간, 심연은 그들에게 진정한 절망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있다는 서양의 이원론은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파멸하는 천재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지만, 그의 육체는 시간이라는 한계 속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발자크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루이 랑베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 랑베르는 당시 신부로 재직하고 있던 삼촌의 도움으로 방돔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화자는 루이를 만나게 된다. 이후로 그가 루이를 지켜보는 시선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루이와 그는 다분히 폐쇄적인 기숙학교의 환경 안에서 둘만의 비밀스러운 우정을 쌓는다. 루이가 나이를 뛰어넘는 조숙한 천재라는 사실, 또한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루이의 위대한 사유들의 편린을 통해 루이의 일생을 천천히 회고하면서 그의 사상을 조금씩 드러낸다.

방돔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군데를 떠돌며 루이의 사상은 점점 무르익는다. 기숙학교 시절 생각해냈던 의지론으로 대표되는 루이의 사상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위대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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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루이에게 의지사유생생한 힘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신념을 전달하고자 그것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에 의하면 그 두 가지 힘은 말하자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사유는 느리고도 빠른 것이며, 무겁고도 민첩하고, 밝은 동시에 어둡다. 루이는 사유에 생명체의 모든 특성을 부여했다. 그는 사유가 두드러져 보이게 했으며, 휴식하고, 잠에서 깨어나고, 자라고, 늙고, 작아지고, 쇠약해지고, 활발해지게 했다. 그는 이처럼 이상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사유의 모든 행위를 명시하면서 사유가 행하는 삶을 포착했고, ‘사유라는 실체의 모든 현상을 인식하게 된 직관을 가지고, 사유의 자발성, , 그리고 자질을 증명했다.

 

- P73 중에서

 

본문에 드러나 있듯 루이는 들끓는 사유와 신념 하나만 가지고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위대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정신과 육체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정신이고, 육체는 덧없이 스러지게 되어 있다. 루이의 인생은 그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육체는 정신과 따로 존재할 수 없고, 그 육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정신은 진리의 경지까지 오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인간다운 감정, 즉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앞둔 그가 일종의 단절 상태에 빠진다는 결말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이 발자크의 인간극철학 연구에 속해 있다는 사실, 또한 19세기 프랑스의 지식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감안할 때, 이 소설의 내용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당시 프랑스의 지식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풍속 소설로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단순히 철학적인 문답으로 끝날 수도 있는 내용이, 발자크의 손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한 인간의 인생을 전부 살아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 루이 랑베르의 인생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점은 그의 사상이나 진리를 추구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진리를 추구하려는 강철 같은 의지, 그것이 굽혀졌다고 해서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숭고한 정신. 발자크는 인간은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가져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위대함은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온 생애를 걸쳐 무언가를 추구했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것이다. 또한 그 목적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정당하게 평가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위대해지는 것이다. 수많은 천재들이 그렇게 탄생되었고, 사라져 왔다. 그러나 이 소설을 통해 발자크는 위대함이 천재의 조건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속성이라는 사실,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필연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비록 모든 일이 죽음, 패배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더라도 그렇다고 말해 준다.

때문에 이 조숙한 천재에 대한 기록은 한 천재의 일생으로 평가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 소설은 위대한 인간에 대한 소설이 아니고, 강력한 의지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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