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네
유동훈 글.사진 / 낮은산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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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진첩 스타일의 책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사진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참 모호해 보일만큼 다들 사진들을 참 잘 찍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멋진 사진들의 풍요 속에서도 눈의 즐거움을 떠나 마음에 담기는 사진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어떤 동네'라는 책은 달랐네요. 기쁜 마음으로 한 권 샀습니다.

이런 책을 만나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리고 더불어 다른 이들의 사진에 대한 의견과, 사진을 통한 감성도 궁금해지지요. 그래서 가장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들을 만날 수 있는 서평이나 감상평에 눈이 가게 됩니다. 때때로 그런 다른 이들의 의견과 감상은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덮어주는 역할도 하기에 책을 읽은 것과는 또 조금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만난 한 의견은 좀...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독단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된장님의 글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상대방에 대하여 깎아내리고자 하는 의도가 풍깁니다. '가난한 골목을 사진으로 찍을 때'라는 제목은 이미 글의 내용을 보지 않아도 이 책의 저자처럼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담고 있는 제목인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은 제목 바로 옆에 놓인 별 두 개의 평점을 보며 단순히 추측이 아님을 확인하게 됩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모범답안인 양 올린 자신의 사진까지... 어찌 보면 단순한 평가나 감상평이 아니라 아주 작정을 하고 글을 쓰신 것 같습니다.

물론 평가란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단순히 점수를 적게 주었다고 그것 자체를 잘못되었다 얘기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그 내용이겠지요. 그런데 글을 읽다 보니 된장님의 주장에 대한 부분에 대한 생각 말고도 글을 읽으며 들었던 이 모호하면서도 애매한 느낌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된장님의 글은 그 글의 길이만큼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고 계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얘기할 내용이 많아 글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또렷하게 드러내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지나친 추측은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구요, 일단 드러난 이야기만을 가지고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된장님의 주장 중 일부에 대해 저도 일견 동의하는 부분 있습니다. 가난한 자건 부한 자건, 아픈 자건 건강한 자건 그냥 있는 그대로 소소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그 삶 자체를 드러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사진에 대한, 최소한 이런 가난한 이들과 그런 배경에 대한 사진철학이신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선 굳이 태클을 걸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각만이 옳다고 얘기하거나, 그런 시각을 다른 이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가 됩니다. 된장님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너무 신봉하는 나머지 '어떤 동네' 저자의 의도와 시각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쳐 한편으론 저자의 의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하네요. 

책 표지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그냥저냥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살아가거나 해바라기를 하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하는 모습을 조용히 사진에 담아도 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마치 작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듯한 저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책 저자의 의도는 된장님의 의도와는 분명 얼마간 차이가 있습니다. 된장님은 겉표지 사진만 보셨나본데 그 사진과 함께 있는 글도 같이 읽어보셨다면 참 좋았을 것 같네요. 동네 골목을 지나간 바람이 왜 다시 대추리를 지나는지, 폭격으로 부숴진 이라크 집 편지함에 다다라야 하는지, 용산 철거민과 제3세계 어린 노동자들의 눈물 앞에서 멈추게 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굳이 책 표지와 함께 적어야 했다면 그것은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분명 된장님이 그토록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 그 골목길에 대한 시각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중 어떤 것이 우월하다거나 어떤 시각은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저자의 시각 역시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반론하고픈 또 다른 지점은 책 내용에 대한 오해입니다. 된장님은 아이들을 담벼락에 세워 놓고 찍은 사진들도 마음에 들지 않고, 아이들의 맑은 웃음도 작위적으로 보인다며 비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는 단순히 아이들의 웃음을 찍은 사진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진들은 보통 놀고 있거나 또래들과 함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멀리서 드러나지 않은 채로 촬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요. 그리고 그 촬영자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그 사진 속 대상자들의 본래의 모습들을 된장님의 주장처럼 가감없이 드러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드러난 사진을 보자면 그 아이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은 바로 아이들 앞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진들은 단순히 관찰자적 입장에서 찍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된장님이 얘기하는 종류의 사진에서는 찾기 어려운 '관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얼굴과 표정 속에 자신들을 찍고 있는 이에 대한 마음까지 드러나고 있는 이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 너무 쉽게 찍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굉장히 상투적인 장면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그 내면을 살펴보면 그 동네에서 20년 이상 사진을 찍어왔던 이가 아니면, 그 아이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이가 아니라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장면인 것이죠. 

이런 '관계'의 측면은 책 전체에서 곳곳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된장님이 모범답안처럼 자신있게 제시한 사진들 속에선 볼 수 없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골목 한 켠 시멘트 틈을 뚫고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그대로 담아도 괜찮겠지만, 골목이웃이 꽃밭과 텃밭을 일구는 것을 조용히 그려내도 괜찮겠지만 거기엔 그 꽃과 그 꽃밭을 가꾼 이 사이의 관계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어둡고 칙칙하게만 보이는 골목에도 무언가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기실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론 다른 곳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모습일까요? 이 책에선 조금 다르게 접근합니다. 책을 보면 꽃밭을 정성껏 가꾸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할머니의 사연이 같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꽃과 꽃을 키우는 할머니의 '관계'를 통해 우린 다시 어떤 동네의 이야기를 보다 가깝게 우리의 가슴 속으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이자 가치 있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삶과 함께하지 못했던 이들이라면(단순히 물리적으로 함께 했었던 것이 아닌) 절대 발견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매우 조용한 관찰자이면서도, 매우 적극적인 참여자기이도 합니다. 일반적인 경우엔 사진작가의 개입이 없어도 사진을 보는 데에 큰 문제가 없겠으나 이 사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작가의 개입을 통해 우린 그 사진에 대해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 이런 작가의 개입은 사진을 각자의 감성으로 보게 만드는 데 얼마간 장벽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신 앞에 말한 바대로 사진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만드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작가는 그런 자신의 위치를 굳이 아닌 것처럼 꾸미지도 않을 뿐더러 나름 조용한 관찰자의 입장도 견지하고 있기에 그 사진과 사진 속 대상으로의 이끔이 그다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친절하고도 친근한 형을 따라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럼으로 인해 그 형 없이 나 혼자 돌아다닌다면 결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된장님이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하나는 왜 저자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은 정보들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계신지 의문스럽네요. 과연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그러신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핫 저도 글이 길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된장님의 의견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해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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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2011-01-1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름대로님의 글을 읽고 나니 된장이란 분이 왜 저자가 밝히지 않은 정보들을 마치 자신이 특종기사를 쓴 기자인 것처럼 밝혀놓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군요.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나름대로 2011-01-19 16:4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