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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사이
케이티 기타무라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통역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이 나라, 저 나라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왔으며 계약직 통역사로 일하며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정착할 나만의 ‘집’을 갈망하고, 사람 사이의 내밀한 관계와 언어 사이의 미묘한 벽을 예민하게 느낀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그 안에는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과 주인공 사이의 친밀함 혹은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바람난 아내를 두고 이혼 소송 중인 남자 친구를 사랑하면서도 그와 그의 아내 사이의 깰 수 없는 벽에 소외감을 느끼고, 친했던 친구가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은근한 호감을 보이자 친밀했던 사이에 어느 순간 벽이 생긴다. 친구를 계기로 친해지게 된 어느 남매와 생각보다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고 가까워지지만 그들이 공유한 비밀을 알게 된 후 그들과의 관계가 어느 순간 멀어진다.
이렇듯 이 작품에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친밀감과 거리감이 묘사되며 은근한 긴장감을 유도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가장 메인이 되고,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관계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통역을 맡게 된 서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관계다.
이 전직 대통령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국제적인 범죄자로 그를 안다면 저절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닌 전직 대통령이 주인공의 능력을 인정하고, 주인공을 신뢰하자 그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전직 대통령에게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이 친밀감이 역겨우면서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가 차분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솔직히 이 책이 ‘재미’가 있냐?라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어떤 극적인 사건의 기승전결이 펼쳐지는 작품이 아닌, 주인공이 느끼는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위주로 묘사되는 작품이라 누군가는 살짝 지루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 쓰인 작품이냐? 물어본다면 바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누구나 살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느끼는 은근한 거리감과 알 수 없는 친밀감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걱정을 느껴 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 사이의 선과 거리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든 이 작품은 단순히 작품에 공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지금 나의 인간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가 누군지 궁금해 찾아보니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작품의 주인공과 같이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쩌면 이런 저자의 특성이 있기에 정착과 방랑, 거리감과 친밀감에 대해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을 집필할 수 있었던 거 같다.
※ 이 책은 문학동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