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꾼다면 주식을 하라 - 인문학으로 풀어 쓴 주식 이야기
남궁혁 지음 / 파레시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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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혁명을 위하여

 

자본주의를 직접 볼 수 없으니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주식시장을 봐야 한다. 그러나 주식시장만 봐서는 자본주의를 온전히 볼 수 없다. 샘물에 비친 나르키소스가 가짜인 것처럼 주식시장도 가짜이기 때문이다. 주식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올 때 현실 자본주의의 많은 걸 끊고 들어온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악몽을 끊고 들어온다. 주식시장에서는 오로지 주식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한 사람들이 많다. 그 광경은 손에 땀이 차도록 마권을 움켜쥐고 모니터를 응시하는 경마장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주식시장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렇게 물으며 끝내 주식시장은 경마장이나 강원랜드와는 다르다고 믿는다.

 

빈자가 키우는 부자

주식시장이 경마장과 다르다는 신념은 이렇게 나타난다. 주식이라는 단어는 투기와 함께 쓰지 않는다. 주식은 늘 투자라는 단어와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이에 비해서 부동산에는 투자보다 투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거울이다. 우리는 앞에서 이를 시뮬라시옹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주식시장은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시장으로 남아야 한다. 주식시장이 무너지면 자본주의가 무너진다. 그러니 주식시장의 본모습이 투기든 투자든 주식시장을 투기판이라고 불러선 안 된다. 그리고 대체 비판 시장으로 부동산을 지목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부동산은 투기라고 할 수 없다. 투기라면 사행성이 있어서 오르고 내리고 큰 이익을 보고 큰 손해를 봐야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대체로 일관되게 이익을 준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러니까 그건 투기가 아니라 투자다.

부동산투자는 아주 일관되게 자산계급에게 돈을 몰아준다. 부동산은 주식처럼 가격의 출렁임이 심하지 않다. 부동산 정책은 정부의 토목 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길을 닦으면 땅값은 올라간다. 길을 닦았는데 땅값이 내리는 경우는 없다. 즉 토목공사가 많아질수록 땅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가난해진다. 그런데 토목공사 비용을 누가 대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지불한다. 피케티에 의하면 프랑스의 경우, 하위 50%는 간접세를 합하여 소득의 40~45%를 세금으로 부담한다. 이에 비해서 상위 5% 이상은 그보다 낮은 비율의 세금을 부담한다. 특히 상위 0.1%는 소득의 35%만을 세금으로 낸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누진세가 약하기 때문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담배에 붙은 세금, 내 아이가 먹은 과자에 붙은 세금으로 길을 닦는다. 그러니까 도로를 닦는 비용은 가난한 사람이 더 대고, 그 혜택은 주로 부자들이 누린다. 일단 도로를 닦으면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길이 하나 더 닦이면 당장 세입자는 임대료를 더 내야 한다. 지하철이 멀리 갈수록 고속철이 멀리 갈수록 땅값은 끊임없이 오른다. 이건 정부와 경제 세력이 손잡고 벌이는 일종의 국민 착취 행위다. 부자들은 토목 사업에 예산을 쓰는 건 찬성하지만 복지 예산에는 쓰는 건 극렬하게 반대한다. 복지에 예산을 쓰면 땅값이 오를 수 없고 그러면 자산 가치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는 데 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융통성 있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말한다.

이제 밥 굶는 사람은 없잖아

개인적으로 이 말을 격렬하게 싫어한다. 컨베이어 벨트 밑에서 죽은 젊은이나 스크린 도어 사이에서 죽은 젊은이가 밥을 굶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슬픔을 가져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송파에 살던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우리를 울린 건 그들이 밥을 굶어서가 아니다. 세 모녀는 전날까지도 잘 먹고 전기세와 장례비까지 챙겨서 남겨두고 자살했다. 이들이 밥을 안 굶어서 괜찮다는 것인가. 빈곤이 없다는 건 밥을 굶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빈부의 차가 적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결핍을 퍼뜨리는 건 자연이 아니라 시장경제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부자라면 좀 창피할 것 같다. 도로 닦는 비용이라도 좀 더 내든지. 적어도 이제 밥 굶는 사람은 없잖아?’ 되묻지는 말자. 아무튼 명확한 건 길이 뚫리면 가난한 사람들은 즉시 더 가난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곳에 투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도덕적으로 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부동산에 투자하지 말고 주식시장으로 가라는 말이다. 주식시장에는 투자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투기판이다. 부동산이 늘 돈 있는 사람들만이 활동하는 시장이라면 주식시장은 가난한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돈을 털어 들어오는 시장이다. 더구나 주식시장에서는 언제든 돈을 빌려준다. 세상에서 돈을 빌리기 가장 쉬운 곳이 주식시장이다. 금융업체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곳이다. 이런 시장을 투기판이라고 하면 누가 오겠는가? 명분도 좋다. 투자를 통해 우리 기업을 살린다는. 기껏해야 퇴직금을 가지고 달려든다. 하기야 강원랜드나 경마장을 운영하는 정부가 주식시장이 설령 투기판이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쓸 까닭도 없다. 실제 카지노에서 쓰는 옐로우칩이라는 말이 주식시장에서도 쓰인다. 돈을 따기 위해 제3국의 주식시장에 선진국의 투기자본이 몰려다닌다. 이들은 여차하면 작은 나라 정도는 한 주먹으로 날려버릴 만큼의 힘이 세다. 이런 게 무슨 투자인가. 차라리 대포라고 해라.

 

악마의 돌쩌귀, 이자율

자본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국경 너머 외부로 갈 수 없으면 내부에서 움직인다. 소위 파생상품이다. 돈을 빌리기 위해서 잡힌 저당물을 근거로 다시 대출을 하고, 이를 다시 쪼개서 팔고, 이 대출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 보험을 만들고, 그 보험을 다시 팔고 하는 식으로 끝없이 상품을 만들어 사고판다. 상품이 상품을 낳는 이 무한질주는 2008년 미국의 금융산업이 파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미국의 금융 산업은 파산으로 수렴되는 구조였다. 금융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지만, 실제 파산에 이르면 나라가 흔들린다며 정부가 자신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소란을 피운다. 물론 구제비용은 가난한 국민이 낸다. 그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두고 마치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는 돈이 증식되는 과정을 쫓아서 자본의 속성을 파악하고 자본론을 썼다. 노동가치에 대한 것이 1권에 집중되었다면, 특히 권은 자본에 관한 이야기다. 전 세계 기존의 자본 시장을 뒤엎고 다니는 헤지펀드를 시작한 사람도 마르크스를 연구하던 사회학자인 알프레든 윈슬로 존스다. 자본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존재다. 돈은 스스로 다닌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돈은 이자율을 따라 흐른다. 주식시장을 이해해야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항하지 않으면 노동에 기반을 둔 사람들의 삶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금융위기는 실물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이미 IMF 경제위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체험했다. 금융시장과 실물 경제는 무관한 것 같지만, 이자율이라는 돌쩌귀로 이어져 있다. 인터넷 없는 현실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자본시장 없는 실물경제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실물 경제가 아무런 이상이 없어도 우리나라를 파산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이자율이다. 이자율은 악마의 돌쩌귀다.

 

혁명을 꿈꾸자

주식시장은 국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어진다. 우리 집 책상 위에서 미국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이건 세계 개미들의 연대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이제 혁명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온라인이 폭발해서 오프라인으로 나와야 한다. 자본 시장은 세계를 잇는 또 다른 실크로드다. 우리는 21세기 자본을 쓴 피케티의 제안을 잘 생각해야 한다. 그는 이미 돈이 돈을 버는 속도를 노동이 따라갈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에 관한 자료를 제시한다.


미국은 2010년 기준, 최상위계층 1%가 노동소득의 12%를 가져가고, 10%35%, 하위 50%25%를 가져간다. 여기서 놀라운 건 가장 부유한 10%1977년에서 2007년까지 성장한 국민소득의 3/4, 가장 부유한 1%60%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노동소득이라는 명목으로 가져간 소득은 곧 자본으로 바뀌어 자본소득을 낳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IMF사태 이후 전문경영인이라는 이름으로 최고경영자들의 임금은 폭증했지만, 하위 계층에서는 최저임금을 갖고 다투는 중이다. IMF가 하층 소득을 상층으로 옮기도록 한 것이다. 실제 사회적으로 임금의 많고 적음이 논의되는 건 최저임금에 관한 것일 뿐, 최고 경영자들이 받는 최고 임금에 대해서가 아니다. 여기에 재산에 의한 소득, 즉 자본수익까지 포함해서 보면 2010년 미국의 상위 10%50%의 소득을, 하위 50%20%의 소득을 가져간다. 자본소득만을 떼어 보면 차이는 더 커진다. 상위10%70%, 하위 50%5%만 가지고 간다. 미국도 국민의 50%는 오늘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피케티는 세금으로 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경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 소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이 3% 이상으로 가파르게 올라가지 않는 이상 노동자가 소비를 통해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대한민국은 그렇게 성장할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인구의 대부분이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과 통한다. 피케티가 소득세를 80% 이상으로 올리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부자들이 소유한 자본에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자는 의견이다. 이미 IMF 구제금융에서 경험했듯이 신자유주의는 신식민주의라는 늑대가 쓴 양의 탈이다. 물론 이젠 그 탈마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헤지펀드로 대표되면서 주식시장을 타고 움직이는 자본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피케티의 말대로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는 건 쉽지 않다. 모든 나라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자본시장의 불공정을 없애는 일이야 말로 세계를 바꾸는 혁명의 출발이 될 수 있다. 불공정한 자본의 흐름을 막아야만 효율적 시장을 내세워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모두 빼앗아 가는 주식시장이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주식시장이 효율적 시장임을 확인하기 위해 한 실험에서 펀드매니저의 실력이 원숭이의 실력보다 못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유명한 헤지펀드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었을까를 생각해야한다. 그들이 돈을 번 건 실력이 아니라 제도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공정한 제도를 어떻게 하든 뒤엎는 것이 헤지펀드다. 이제 그들이 만든 제도를 다시 뒤엎을 필요가 있다. 공매도는 그들이 쓰는 좋은 제도 중 하나다. 이것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하자. 우리만으로 안 되면 국제적인 연대도 시도해야 한다. 좌파라면 여기에 참여해야 한다. 이곳에서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p249~262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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