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와 광대 - 중세 교회문화와 민중문화 현대의 지성 133
유희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사제와 광대-중세 교회문화와 민중문화(유희수, 문학과지성사, 2009)는 중세인의 삶을 생생하게 조망하는 책이다. 흔히 중세는 기독교와 교회에 의해 지배받은 사회였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배자를 중심으로 본 역사에 불과하며, 실제의 중세 민중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이교적인 전통문화를 많이 보존하고 있었다. 중세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문화를 교회의 규범을 대변하는 공식기독교가 아니라 평신도들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민중기독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세문화는 문자해독자 문화와 문맹자 문화, 성직자 문화와 평신도 문화, 교회문화와 세속문화가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이룩한 문화다.

 

저자는 이처럼 중세의 문화를 성()과 속(), 즉 각각 사제광대로 대변되는 교회문화와 세속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중세 문화사의 핵심은 교회의 규범이 어떻게 민중의 현실과 대립하고 타협하고 그들의 삶에 침투했는지의 과정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12개의 장에 걸쳐 중세인의 삶 면면을 다루며 그 속에서 교회문화와 세속문화의 갈등과 접변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열두 장이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라는 두 개의 큰 주제로 나뉜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삶의 본능, 타나토스는 죽음의 본능이라고 한다. 에로스의 장에서는 중세인의 성과 사랑, 결혼과 친족 등의 풍속을 다루며, 타나토스의 장에서는 유언, 저승, 구원 등 죽음에 관한 중세인의 생각을 주로 다룬다.

 

사제와 광대는 유럽 중세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며, 당시의 교회문화와 민중문화가 어떻게 부딪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교회의 규범이 현실의 문화에 맞추어 완화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세라고 하면 교회가 높은 곳에서 민중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구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성적인 욕망을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매춘을 필요악으로 인정하는 등의 사례를 보며 종교라고 해도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또 민중이 생각만큼 교회에 일방적으로 억압받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교회의 가르침을 자기 식대로 수용하고 전통문화를 보존하거나 교회 규범과 융합시키는 등 충분히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몇몇 주도적 개인과 그들의 행위를 중요시하는 정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역사학에서 벗어나 정치사회문화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개인이 아닌 일반 민중 전체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의 큰 흐름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역사인구학이나 심성사, 일상생활의 역사 등 다양한 갈래의 역사 연구를 통해 시대를 살아간 개개인의 역사를 밝히고자 한다고 들었다. 사제와 광대역시 그 흐름 속에서 중세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사료 가운데에서 뽑아내 되살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구 기록부, 설교집, 유언장, 가계도 등에서 당대 사람들의 삶과 의식에 대해 그만큼이나 많이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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