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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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두 살 소녀, 케이틀린. 시애틀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이 소녀가 좋아하는 건 물고기. 학교가 끝난 뒤 엄마가 일을 마칠 때까지 아쿠아리움에서 시간을 보내는 케이틀린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다 혹은 아쿠아리움에 빗대어 상상하기를 즐겨 한다. 도시 전체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호 군락지 같고,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향해 집중하는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 맛조개 같다. 자신이 수조를 들여다보듯 자신의 아파트 또한 누군가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있지는 않을까.

책의 초반부는 위험이 찾아오지 않은 수조안처럼 잔잔히 열두 살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을 소개한다. 어둡지만 안전한 곳, 나의 집, 엄마, 아쿠아리움. 그리고 서서히 친구가 된 노인이 자신과 완전히 타인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잔잔하던 물속은 포식자가 나타난 깊은 바닷속으로 변한다. 엄마는 이전에 알던 엄마와 다른 사람인 듯 무섭게 변하고, 자신의 울타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케이틀린은 폐어가 된 듯 깊고 깊은 물속으로 몸을 웅크린다.

 

우리 이전에 일어난 일들, 이전 세대에 빚진 것들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나만의 삶은,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보상받을 때까지 유예되어 있었다. 그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값을 치르기 위해 그 어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도, 심지어 그대로 믿을 수도 없다. - 본문 135쪽

 

 

나 이전에 생긴 문제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걸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왜 사람들은 더 나아질 수 있는 미래가 있음에도 불행한 길을 자처하는 걸까.  용서는 힘들고, 내가 받은 상처로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입히지 않는 건 불가능한 걸까. 망각과 적당한 타협을 허용할 수 없을 만큼 큰 잘못이 가정을 파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럼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는 수수방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넋 놓고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걸까.

엄마 셰리가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딸이 알기를 원하며 케이틀린에게 '자신을 돌보라'고 강요하는 태도는 참 불편했다. 방식이야 어쨌든 작가는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대하는 가족원들의 태도와 관계의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 과정에 희망이라고 볼 수도, 암담하다고 볼 수도 있는 요소들이 들어갔지만, 적어도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차가운 도시 같은 현실적인 변화가 있었달까.  용서로 향하는 각자의 발걸음이 합쳐진 책, 묵직하고 조금은 불편한 소설, 아쿠아리움이었다.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단다. 우리 삶은 단 한 번뿐이야. 그래서 용서받길 바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 본문 181쪽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 - 본문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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