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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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남한산성' 책을 리뷰하기 전, 김훈 작가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김훈 작가는 1948년 5월 5일생으로 대한민국의 소설이고,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칼의 노래', '흑산' 등이 있다. 나는 지금껏 김훈 작가의 작품 중 '흑산'과 '남한산성'을 순서대로 읽었는데 이 두개의 책을 읽으면서 김훈 작가의 특징을 한 줄로 요약해봤다.

 

 "우리에게 단순한 방법으로 울림을 주는 작가" 이 말을 조금 더 살을 붙여 설명하자면, 단순한 일상에서의 언어나 단문형식들로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 혹은 역사에 관한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문체를 활용하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김훈 작가는 간단해 보이는 문장을 통해서 문장의 심미성이나 정밀하면서도 섬세한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를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표현한다. 물론 내가 소설이나 글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장이나 등장인물들을 분석하며 읽는 바탕으로 쓴 나의 견해일 뿐이다. 한 명의 예술가가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계속 반복하고, 다시 반복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듯이 김훈 작가의 책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글의 완성도와 견고함이 돋보였다. 글에 대한 줄거리를 모두 소개하긴 너무 많다고 판단돼 내가 집중적으로 책을 보고 의문을 가졌던 부분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글의 초반 부분에 김상헌이 사공을 죽인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조정이 파천했다는 급보를 받고 혼자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강을 건너야 했으며 마을에 딸라 홀로 남은 늙은 사공이 언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사공은 같이 산성으로 가겠느냐는 권유에 마을에 남아 살다가 청병이 오면 길을 건너게 해주고 곡식이라도 얻으려 한다. 송파 나루에서 사공의 인도로 강을 건넌 뒤 김상헌은 울음을 참으며 사공의 목을 벤다. 이 줄거리 내용은 내가 남한산성 토론 발표 중 소개한 줄거리를 따온 것이다. 여기서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 김상헌이 사공을 죽인 이유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점을 매우 유심히 읽어보고 그 이유에 대해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매번 읽을 때마다 생각이 바뀐다. 처음 이 문장을 정독한 순간은 이 무슨 해괴한 행동이며, 잔인한지 김상헌의 윤리성에 대해 비판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김상헌이 사공의 비루함, 비열함 등으로 죽일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공을 죽인 것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위해' 이 부분을 주목하며 고민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읽는 순간 다른 이유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인 조선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소(小)를 희생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나는 사공이 뒤에 쫓아오는 청병들에 협조할 수 있단 생각을 할 수 있어 죽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 해서……." (52p) 이 부분에서 청병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조금이라도 청병이 오는 시간을 지체시키기 위해 김상헌이 사공을 죽인 것일 수 있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약간의 생각이 바뀌었는데 김상헌은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이였던가……." (52p) 라고 백성들을 보며 절망한 적이 있었고, 이를 청병이 오는 상황과 같이 생각해보면 일부러 사공을 죽였다고 말해도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내 생각엔 사공이 청병에 길을 알려주는 것과 관계없이 어차피 청병에 죽임을 당할 확률이 높고, 이러한 상황을 모두 고려해봤을 때 '김상헌이 내릴 수 있었던 최고의 선처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문득 떠오르게 된다. 이는 김훈 작가가 표현한 그 시대에 알맞은 내용적인 분위기나 슬픈 배경을 깊이 있게 표현한 많은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제부터는 내가 지금까지 남한산성을 읽는 바탕으로 김상헌을 말할 것이다. 김상헌은 최명길과 달리 우리가 잘 아는 척화파의 입장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척화파가 자신들만의 명분만 중요시하고, 본질적으로 나라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척화론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절대적 관념이었다.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김상헌과 최명길의 주장을 각각 듣는다고 해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인지 김상헌의 손을 들어줬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에 항복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비난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김상헌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시했던 대의명분은 진심으로 손뼉 쳐줄 만하다. 나라, 임금을 위해 모든 것을 그 위주로 판단하고 고뇌하는 그런 모습들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물론 김상헌의 태도를 평가했을 때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상헌의 신념에 대한 꾸준함, 한결같음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최명길뿐만이 아닌 김상헌을 언급하는 이유인 것이다.

 

 "전하,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길 터인데, 이 문서가 과연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339p) 이는 김상헌이 임금에게 다그치는 문장인데 척화파의 입장에서의 김상헌이 아닌 임금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김상헌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보였던 문구였다.

 

 남한산성을 읽고,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로선 책의 상황을 파악하면서 인물들의 관계에서 나오는 대사나 내용을 보고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라고 되새겨보며 읽는 책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김훈 작가가 남긴 하나하나 말에 집중한 것일 수도 있고, 김훈 작가의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속은 섬세함을 넘어 온몸에 전율을 주는 문장들을 보며 매혹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와 관련된 책이 아니다. 조금 과정되게 설명하자면 이 책의 스토리 안에 갇혀 공감할 수 있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슬픔을 직설적이며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였다. 정말로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을 읽으니 이런 명헌 혹은 문구가 떠오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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