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sylvania -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머무르고 즐기고 떠나온 소소한 나날들
이연희 지음 / 어라운드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날, 습관처럼 연 인스타 앱에 아주 인상적인 파란색 슈즈를 신은 발이 떴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룸메이트의 포스팅이었다. 

인스타에서 자주 보던 친구가 아니라 흠칫 반가워하는데.. 사진 캡션 왈, 


"로얄 블루 플랫으로 시작하는 결혼식 주! Royal blue flats to kick off wedding week!" 


앗, 이 녀석.. 드디어 그 약혼남과 결혼하는구나! 



나보다 더 긴 약혼 기간을 지낸 몇 안되는 친구.. 

나처럼 연애 드라마 쓰느랴 그렇게 된건 아니고, 워낙에 일 욕심이 많았던 친구라 이차저차 기약 없이 약혼 상태로 수 년째 였던 친구다. 


우리 둘의 시작은, 사실 그다지 부드럽지 않았다. 

가히 난잡한 파티 생활로 나에게 적잖은 쇼크를 안겨 줬던터라 뭔가 친구로 마음 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두달이 지나 생활 가운데 내게 의외의 친절함을 보여줬으며.. 

기숙사 생활을 마칠 즈음엔 내게 무척 따뜻한 정을 표현한 친구였다. 

두 학기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와 몇년을, '보고 싶어! Miss you!' 를 남발하며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었는데.. 

개인적인 이유로 페이스북을 정리하면서 뚝, 연락이 끊어졌었더랬다. 

후에 메일로 몇번 근황을 주고 받긴 했지만.. 최근 몇해는 연락이 서로 없었던 우리.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시점에 친구의 결혼 소식을 마주했다는게,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잊으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하루하루에 묻히다 보니 어느새 그 자취를 감춘.. 특별한 날들에 대한 고찰이 가능했던 독서 시간 덕에, 

간만에 이 친구와 인사를 했고 반가움이 잔뜩 묻은 문장들이 가득한 메세지를 주고 받았으니 말이다. 




BON VOYAGE..? 

: 여기로 여행가라고? 


출산 후 사실 사적 사색에 잠기게 하는 종류의 책은 많이 못 읽었다. 

처음이라 모든게 참 어설프고 떨리는 엄마의 모습으로 정신없이 보낸 10개월.. 

종종 먼지같이 지나가 버린듯한 하루들 앞에 아쉬움이 짙어지고 있었는데, 간만의 서점 나들이 중 시선을 붙잡은 이 책. 


'이런 멋진 책은 어디서 만드는거지?' 하고 보니 어라운드의 책이란다. 


하지만 이 책, 여행서적 아닙니다. 

여행서적이라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불리고 분류될 색채나 정보가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사실 이 책은 일상 에세이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정말 멋진 점! 

'펜실베니아'는, 일상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 나만의 특별한 일상을 마주하게 한다는 점이다. 


흔히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설렘을 위해 여행을 한다고들 하는데, 

이 책은, 돌아보니 설렘으로 가득했던 일상에 대한.. 

해서 마치 많이들 하는 여행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여행스러운 모습인 일상에 대한 근사한 스크랩 북이다. 




PENNSYLVANIA 

: 그녀의 펜실베니아.. 그리고 나의 펜실베니아 


가만가만 보여진 그녀의 경험.. 그녀의 기억들 가운데 나 역시 맨발로 빗길을 걸은 적이 있음을.. 

방 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도 나만의 스타일로 열심을 내어 배치한 잡동사니들이 있었음을... 

너무나 좋아라했던 학교 근처 카페와, 그곳의 오픈 마이크 시간.. 나른히 앉아 세상 시간 혼자 다 가져본 적이 있었음을 속속들이 기억해냈다. 


그녀의 펜실베니아는, 사실 그 시기와 위치 만큼이나 나의 로드 아일랜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추억이라는.. 아주 하찮을지라도 지금의 나를 나이게 한 퇴적된 시간의 흔적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나에게도 무척 사적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BON VOYAGE! 

: 일상을 일상으로 충전하기 

 

아무리 피곤하고 지루한 삶일지라도, 결코 매일매일이 똑같을 수는 없다. 

무언가는 다르다. 무조건, 무언가는. 


그 차이를 세밀히 관찰할 수 있다면, 

난 피곤하고 지루한 삶을 덜 피곤하고 덜 지루하게.. 오히려 기대되고 신나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 책이 더더욱 멋졌다. 

읽으며 때때로 황홀하기까지 했다. 

현재를 살면서, 지금 이 순간 너머의 과거 또한을 살 수 있으니.. 추억한다는건, 참으로 너무나 아름답다 생각이 됐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 내 일상을 일상으로 충전할 수 있는, 힘과 아이디어가 생겨서 이기도 했다. 




문득 교환학생 시절 캠핑을 하며 함께 밤새 진로에 대해.. 피곤함을 무릅쓰고 진지한 대화를 나뒀던 다른 친구 생각이 난다. 

그 친구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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