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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지음 / 현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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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다는 바다가 더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차피 산에 올라봤자 다시 내려올텐데 왜그리 힘들게 산을 오르느냐'며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안타까워 했었다. 그 당시 나에게 산이란 덥고, 힘들고, 지루한 장소일 뿐이었다. 그에 반해 바다는 재미있고, 시원하고, 사람들과의 추억이 어린 소중한 곳이었다. 그토록 고집스럽게 산을 오르기를 싫어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대로 굳어졌을거라 믿었던 나의 생각이 천천히 바뀌어가고 있었다. 분명 내가 살고 있는 하루 하루는 전혀 다른 나날들이지만 왠지 반복되는 것 같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삶의 지겨움을 느끼기에는 어린 나이인데 이런 낯선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잡아준 것이 산이었다. 외할머니 댁에 휴식 차 주말에 여행을 갔다가 동생과 산을 올랐다. 여름이라 눈부실 정도로 푸르른 나무들이 시원한 소리들을 내며 내 마음 속 어디엔가 쌓였던 피로들, 지루함들을 말끔이 씻어주는 듯한 묘한 기분. 2년 전에 겪었던 경험임에도 그 느낌은 지금 꺼내어 보아도 설레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 이후로 힘든 일이 있거나, 일상의 지루함이 느껴질 때 쯤이면 등산화를 꺼내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오르기 위해 올랐던 산이었지만 지금은 숲의 나무와 산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마음 속 복잡했던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산에 오르고 있다. 분명 등산이라는 행위에 가치를 두지 않았을 때와 가치를 둘 때 산을 오르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목적이 바뀌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라는 행동을 숲을 느끼는 행위로 마음을 옮기고 난 후 자연을 노래하는 소설, 에세이집들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엇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동기에서 만나게 된 책이다. 그간 내가 만났던 산을 이야기한 책들은 나와 같은 평범한 이들이 쓴 수필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꼈던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게 읽어왔었다. 하지만 이 책은 산에 정통한 전문가가 쓴 숲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그동안 접했던 글들과는 분명 다를 것이고, 숲을 노래하는 방법에도 스킬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를 갖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숲을 찬양하는 에세이집이 맞다. 하지만 다른 수필집들처럼 그저 문학적이고 멋진 문구들로 숲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그러한 책들보다 분명 멋스러움은 떨어지지만 읽는 내내 어디에선가 숲에 대해 프로페셔녈틱한 느낌이 들고 그와 관련해 더 깊숙히 이해할 수 있는 것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던가. 이 책이 바로 그 문구에 적합한 책일 것이다. 산림을 전공한 저자의 내공과 자연을 사람하는 저자의 마음, 그리고 도시라는 닫힌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숲이라는 자연의 공간을 공유하려는 저자의 심경이 적절하게 어울러져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제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산에서는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우리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매해 느끼는 감동이지만, 매해마다 느껴지는 감동의 깊이와 느낌은 약간씩 다르다. 아마 그만큼 시간이 흘러 나의 모습이 달라지고, 나의 시선을 움직이는 마음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이 책을 읽고 단풍을 감상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분명, 작년에 보았던 단풍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숲과 자연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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