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아이들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다 읽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기립박수라도 쳐야 하나 생각했다. 이 신들린 듯한 작품을 너무나 멋드러지게 번역한 역자조차도 후기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내가 감히 뭐라고 평을 할 수 있을까. 소설 같은 삶을 살아온 살만 루시디, 이 천재 작가의 혼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다. 루시디가 이거 쓰고 탈진은 안했나 궁금할 정도.ㅎㅎ

1988년 발표된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파트와를 선포한 이래 숱한 살해 위협 속에 살아야 했던 인도 작가 살만 루시디. 이 책 <한밤의 아이들>은 그가 <그리머스>에 이어 1981년 발표한 두번째 작품으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라는 부커상을 루시디에게 안겨주었고, 1993년에는 부커 오브 부커스, 2008년에는 베스트 오브 더 부커에 오름으로써 세 번의 부커상 수상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세상엔 필력이 뛰어난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만으로 '이야기꾼'이라는 타이틀을 갖지는 못한다. 하지만 살만 루시디의 경우, <한밤의 아이들>의 페이지를 몇 장 채 넘기기도 전에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알 수 있다. 작품소개에서 이 소설을 <천일야화>에 빗대고 있듯이 <한밤의 아이들>은 역사와 현실을 넘나들며 피클통에 가득찬 피클처럼 신화와 환상, 꿈을 꾹꾹 눌러담아 놓은 작품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제된 문장이 아닌, 입으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듯이 전개되는 살만 루시디의 서술 방식은 마치 소설 속의 화자 살림 시나이가 내 눈 앞에 앉아 직접 옛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동화 같기도 하고 신화 같기도 하고, 거기에 역사마저 뒤섞여 어느 순간 허구와 사실이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니 이 작품을 '소설'이라는 말로 정의하기엔 왠지 좀 부족하다. 

 

루시디의 엄청난 상상력, 타고난 재치와 유머는 이 허무맹랑한 소설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양념이다. 이 소설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그 두리뭉실한 이미지만 안고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 하지만 내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역사를 잘 모른다는 점은 많이 아쉬웠다. 국가와 개인의 역사, 운명이 쉴새없이 뒤엉켜 흘러가므로 이 지역 역사를 알면 <한밤의 아이들>과 더욱 혼연일체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한 인간의 운명이 비단 현재에 존재하는 것일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다는 그 설정이 참 맘에 들었다. 구멍난 침대보를 통해 조심스레 한 인간을 알아가고, 그래서 전체가 아닌 부분부분으로 점차 사랑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발상도 혀를 내두를만 하다. 이 작품을 '사이의 문학'이라고 칭한 역자의 표현이 이 소설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게 아닐까 싶다. 인도와 파키스탄, 현실과 환상, 역사와 개인, 남과 여, 그리고 루시디와 살림!  

문법, 문장구조 같은건 애초에 '개나 줘버린' 베스트 오브 더 부커, 타고난 이야기꾼.. 루시디에게 그 어떤 타이틀이 아까우랴. 왠지 내 마음과도 같은 역자 해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이 막나가는(?) 작품을 '진짜진짜 정말로' 멋지게 번역해준 번역가에게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날마다 '웬수덩어리'라고 부르던 책을 내려놓게 되어 속이 다 후련하다. 치열하게 싸웠으니 후회는 없다. 잘 가라, 내 사랑."  

 

 

     
 

나는 누구-무엇인가? 내 대답은: 나는 나보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 내가 겪고 보고 실천한 모든 일, 그리고 내가 당한 모든 일의 총합이다. 나는 이-세상에-존재함으로써 나에게 영향을 주거나 나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고 사건이다. 나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나 때문에 일어날 모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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