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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줄리아나 도쿄』는 읽었지만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읽지 않아서, 『마고』는 읽었지만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는 읽지 않았기에 갖게 되는 어떤 부채감. 한정현은 분명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작가인데 나라는 독자는 '한정현 월드'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으니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첫 소설집 이후 발표된 단편 중 몇 편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도대체 뭘 하려는 작가인지 감도 잡았고. 책의 뒤표지 카피를 참조하자면, 한정현은 흩어진 역사를 그러모아 소설로 그려내는 아키비스트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방면에서 그는 유능하다.
유능함과 별개로 이 작품이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탐정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데 초반부터 범인이 누군지 밝히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윤박 교수를 살해한 사람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를 살해했으리라 의심받는, 그러니까 용의자, 그것도 '여성' 용의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말했다시피 그들은 교수를 살해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교수 사이에 있었던 일을 탐정과 기자가 파헤치는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진실은? 추악하기도 하지만 눈물겹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매일 조금씩 살려"(204쪽)왔다는 진실이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작년 1학기에 들었던 '신화와 역사'라는 수업의 기말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동시대를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가 - 너와 나와 제삼자의 이야기」라는 거창한 제목 아래 써 내려간 조악한 글. 부러 이 글을 언급하는 것은 내가 거기 이렇게 썼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사건이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주목받는 것은 그 사건 전후의 상황과 그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신화와 역사는 항상 이를 조망했고, 그렇게 취사선택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를 내면화하는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선택하여 기록한다. 거시사의 담론에서는 동시대의 모든 것이 조망될 수 없다. 그러나 미시사의 담론에서는 가능하다. 이름도 생소한 20세기의 인물 ‘정웰링턴’을 복기하는 것은, 엘리트 담론과 거대 담론에 의해 주변화되고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던 역사적 소수자를 역사의 주체로 수용하고 그들의 생생한 삶을 역사화하는 시도 그 자체다." (정지돈의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문학과지성사, 2020)에 관해 썼다)
한정현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소설로써 "이면의, 너머의, 곁의 계보를 구상"(210쪽)하고 싶다고. 나는 그가 잘 해내고 있다고 믿는다. 그의 소설을 통해 '그런 사람'이 그저 '사람'이 되기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들이 사랑하기를, 그리하여 이 모든 "낙관"(182쪽)이 세상과 우리를 감화하기를 바란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