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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약국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1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3월
평점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과 소설선에 이어, 첫 에세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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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으로 나무를 보면 고흐처럼 그리게 되는 걸까, 생각하”(174쪽)는 사람의 이야기. 김희선은 “실편백나무, 굴참나무, 산수유나무”를 “내 영혼의 나무 세 그루”(173쪽)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꽃에 관해서는 얘기해 본 적은 있어도 좋아하는 나무에 관해서는 없어서, 한참 기억 속을 떠돌다가··· 올봄 어느 비 오는 날 산수유나무로 가득한 숲을 거닐었던 기억. “별 무더기 혹은 등불처럼 마음 구석구석을 밝혀주”(176쪽)는 노오란 꽃 아래서 잠시 내가 충만해졌던 순간. 나 역시도 산수유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구나.
김희선의 산문을 읽다 보면 언어로 무언가를 남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는 “그러고 보면 도시엔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다”(112쪽)고 말하는 사람. 기록하는 나 역시도 사라지는 존재이기에, 나와 마주하는 모든 것도 영원할 수 없겠지. 그 사실을 품은 채로도 여전히 올곧은 그의 시선으로 자연과 사람과 동물—할머니, 꿩, 문어, 강아지, 귀뚜라미, 펭귄—을 활자로 영원히 붙박을 때, “우리의 이야기 역시 영원토록 끝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를”(277쪽) 나도 못내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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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상에 적당한 크기를 가진 알약들로 구성된 조제약”(212쪽) 같은 산문집. 기분이 울적하고 왠지 모르게 지치는 날에 꺼내 들어 물과 함께 꿀꺽 삼킨다면 금세 힘을 나게 해줄 글입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원활한 관계 맺음에 어려움을 겪는 분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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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데 김희선은 “허구의 원숭이도 실존하는 원숭이라고 믿는 사람”(89쪽)이라는 점에서 나와 크게 다르다. (아마 그의 MBTI는 N이겠지···) 이렇게까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의 작품은 20년도에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천리안 브라더스』 밖에 읽어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더 읽어볼 결심. 소설 속에서 어디까지 다녀올 수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
P.S. 작가는 춘천에서 태어났고 때문에 산문집 곳곳에서 춘천을 발견할 수 있다. 5월에 춘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이런 우연이 신기하고 반가워서 써본다. 그의 글을 읽으며 미리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벌써 춘천을 사랑할 준비가 다 되었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