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정무광.정재승 옮김 / 승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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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차드 파인만의 첫인상은 굉장히 독특하고 특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그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점 조차도 이상했다. 어릴 적부터 어느 정도 과학에 관심도 있었고 구독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과학동아를 탐독했던 기억도 있는데 이런 과학자를 담배피고 술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는 점에 대해, 나의 무지가 부끄럽다기보다는 그저 이상했다. 이 사람은 누구길래 지나가다 이름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찾아 본 그의 사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봉고를 연주하면서 너무나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유명한 과학자라는 사람 사진이 음악가 같은 모습이라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민 아인슈타인의 사진만큼 인상적이었다. 


- 알고 보니 파인만은 정말 대단한 과학자였다. 노벨상 수상자에다 이미 물리학자로서 세계적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을 잇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또한 그는 물리학계의 대스타였다. 이 책의 역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파인만을 칭송해 마지않는다. 교양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도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도 파인만을 언급하길 좋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레너드 믈로디노프도 그의 책에 파인만을 자주 등장시킨다. 얼마 전에는 그와의 길지 않은 인연을 가지고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을 낼 정도다.


- 리차드 파인만이 1963년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비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3번의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제목만 보자면 과학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원론적인 강의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첫 강의 제목은 '과학의 불확실성에 대하여'이고 과학이 무엇인지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발견하는 즐거움' 때문인데 사람들은 과학을 골치 아프고 복잡하기만 한 것으로 오해한다고 아쉬워 한다. 실제로 과학은 정말 재밌다. 우리는 회전하는 공 위에서 살고 있고 이 공은 불타는 공의 주위를 돌고 있다. 세상에는 이런 공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너무나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다. 이런 생각들은 웬만한 영화나 소설보다 더 재밌다. 고3 때의 내가 이런 것들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두 번째 강의는 '가치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과학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과학의 영역은 가치 판단을 포함하지 못한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점은 늘어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과학 바깥에 위치해 있다. 얼마 전 읽은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강의는' 비과학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다. 제목 그대로 비과학적인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초능력, 독심술, UFO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푸트니크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국에 대한 언급도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이런 비과학들이 도처에 산재한다. 사이비 교주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고 개중에는 푸른 기와집까지 진출한 케이스도 있다. 혈액형은 또 어떤가. 수혈 가능 여부에 따라 사람들을 4개의 타입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철 지난 일본발 유사과학이 한국에서는 지나치게도 길게 유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파인만은 실험의 결론이 아무리 받아들이기 힘든 방향으로 나온다고 해도 결코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오히려 과학은 우리의 고정관념이 잘못됐음을 증명하면서 발전해 왔다. 갈릴레이가 새로운 낙하운동 법칙을 발견했을 때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도, 양자역학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이런 이론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심지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가장 큰 반대자였다. '자연의 상상력은 인간의 상상력보다 위대하다'라는 파인만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에서 믈로디노프는 물리학자들을 그리스인과 바빌로니아인,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그리스인은 정리와 증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공리와 논리적 체계에서 나온 진술만을 참으로 여겼다. 반면, 바빌로니아인들은 실재하는 물리적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느냐 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질 뿐, 더 큰 논리나 체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아폴론적 인간과 디오니소스적 인간으로 분류하는 방법과도 유사하다. 리차드 파인만은 명백한 바빌로니아인이다. 이 책 가장 처음에 나오는, 파인만에 대한 마크 캑의 헌사를 소개하며 글을 줄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천재가 있다. '평범한' 천재들과 '마술사들'. 평범한 천재란 당신이나 나와 같은 사람들인데 다만 수십 배 더 똑똑할 뿐이다. 그들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은   신비롭   지 않다. 그들이 한 일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 역시도 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마술사들은 다르다. 그들이 한 일을 이해하고 난 후에도 칠흑 같은 어   둠만 남아 있을   뿐이다. 리차드 파인만은 최고 수준의 마술사다. -마크 캑Marc Kac,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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