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를 다시 읽는다 1 - 한국 근대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윤해동, 천정환, 허수, 황병주, 이용기, 윤대석 엮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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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식민지 시대에 한국은 근대화를 이룩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직 수탈과 저항으로만 상징되는가? 일제의 식민지로서의 한국을 설명할 때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간의 대립은 식민지 시대를 논하는데 있어 전형화 된 양 극단의 논쟁이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수탈과 저항’ 또는 ‘개발’은 식민지 한국을 설명하는데 매우 익숙하게 출현한다. 하지만 이 책의 1부는 이러한 양 극단이 가지는 논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제까지 근대를 설명하는데 있어 주류적 위치를 차지했던 방식과는 다른 각도에서 한국의 근대를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근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서술해나가려 한다는 것은 즉 서술의 은연중에 바탕을 이루던 민족주의나 근대화의 시각을 버리고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근대의 식민지를 바라보려는 시도와 연관이 있다 할 수 있다. 1부의 첫 번째 논문에서 나온 ‘회색지대’라는 말도 ‘전 민족적 저항’과 ‘전 민족적 협력’의 양 극단 속에 저항적 협력과 협력적 저항이라는 그 성격의 진정을 파악하기 힘든 사례가 많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회색지대에서는 완전한 저항도 완전한 개발도 의미가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세 번째 논문에서 현재까지 나타나고 있는 ‘조회’의 내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된다. 일반적으로 조회가 일제의 국가주의의 잔재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것이 식민지 이전에도 국가 의례를 수반하는 의식으로 존재했음을 들어 내셔널리즘과 국민국가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근대와 현대를 통틀어서 나타난 것이라 피력한다. 이는 근대의 잔재들을 감정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자칫 또 다른 배타적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근대를 새롭게 인식시키려는 과정에서 식민지 자체와 그 시대의 상황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양극단의 두 점에 위치하지 않으려는 처음의 집필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논문은 식민지 근대의 성격을 해명하려는 측면이 강한데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유교적 예는 허례허식으로 비판받고 그 자리에 의례가 대신 정착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존의 유교적 전통과 예를 대체하는 ‘문명적 의례’의 성격인데, 유교적 예를 실질이 아닌 형식, 내면이 아닌 외면, 진정성이 아닌 허위성이라고 단정 지은 것과 문명적 의례를 앞의 조건들을 두루 통합해서 합리적으로 결론내린 것으로 보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물론 근대화의 성격상 이러한 규정은 피해갈 수 없지만 문제는 그것이 식민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에서 이러한 상황들이 일어났음을 언급하는 것은 식민지로 인해서 의례가 규정되고 그로 인해 더욱 근대화에 다가갔음을 의미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네 번째 논문에서의 S씨의 일기는 식민지 시대에 살다간 한 사람의 일상의 기록은 될지언정 식민지라는 상황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과정에서의 기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자칫 일반적으로 식민지 시대에서 한인들이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인식과는 달리 민간인들은 그저 그 시대를 평소와는 약간의 다른 환경에서 평범히 살아왔음을 보여주어 식민지 시대가 폭압과 수탈로 대변되는 시대가 아니었음을 항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있다. 그의 우울증을 식민지 시대의 불안정과 연결시키는 것은 이러한 느낌을 지우기 위한 억지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논문들이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저 민족주의에 젖어서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기 위한 목적에서라면 이 책에서 1부는 그들을 위한 직접적이고 중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회색지대’는 분명 양 극단이 생각지 못한 점에 속하며 S씨의 일상은 양 극단이 생각지 못했던 일반인들의 삶임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관점 즉 ‘식민지 근대’라는 것으로 귀결하고 포괄시키기에는 각 논문이 너무나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각을 던지기 위한 시도가 자칫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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