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절제 사회 - 유혹 과잉 시대 어떻게 욕망에 대항할 것인가
대니얼 액스트 지음, 구계원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유혹이란 내가 나의 욕망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일 때(혹은 그렇게 믿고 있을 때)는

탐스럽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거대해져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되면, 그때는 저 붉은 빛이 매력이 아니라 공포가 된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내가 이 책의 리뷰어가 되겠다고 자청했을 때 유혹의 열매는

그저 달콤해 보이기만 했다.

출판사가 내건 조건들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고, 책에서 발췌한 유혹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몇몇 사례들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례 1: 잠자리를 함께해서는 안 되는 남자와 데이트하러 갈 때는

일부러 후줄근한 속옷을 입었던 여자)

그러나, 리뷰 마감 시한을 며칠 앞두고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 되자 담당자의 문자 메시지 알림은

통상적인 것들조차도 가슴을 철렁철렁하게 만들었다. ㅋㅋㅋ

 

자기 절제의 문제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이 책에 있다.

 

"자명종 시계의 문제점은 자명종을 맞출 때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 그것이 울릴 때는 말도 안 되게 보인다는 것이다."

- 렉스 스타우트,  '로데오 살인' 중에서 - (p.242)

 

그럼, 자기 절제란 뭐지?

저자인 대니얼 액스트에 따르면... 이렇다.

의식적인 개입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욕망과 열망을 1차적 욕구라고 하고,

그 외에 우리가 실제로 선호하는 다른 중요한 욕구를 2차적 욕구라 부르기로 했을 때,

자기 절제는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떤 것인지 판단한 다음,

보다 마음이 덜 끌리는 욕구의 도전에 대항하여 선호하는 욕구를 고수하는 것, 을 의미한다.

(p. 28 참조)

그러니까... 무조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더불어

더 큰 만족감을 위해 코 앞의 사소한 만족감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 자기 절제라고 할 수 있겠다.

담배를 끊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비만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

순간의 쾌락을 위해 도박에 빠지지는 않는 것, 등등...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 먹자 책장을 열기도 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유혹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빈번히 자기 통제에 실패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몇 가지 항목들을 실제로 기록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새로운 점들이 발견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기 절제의 실패로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는 것.

저자는 그것을 '유혹의 민주화'라는 단어로 설명하였다.

옛날에는 각자가 속한 집단이나 종교, 국가가 도덕이나 윤리, 규율이라는 형태로 상당 부분

그 짐을 덜어 주었는데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와 인터넷, 통신의 발달 등으로 유혹은 도처에 있는 반면 

절제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살짝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

 

또 한 가지는, 처음 생각했던 몇 가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심각한 

자기 절제의 실패 케이스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심지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감추고 있었던 어떤 성향이었다. 쩝.

 

자기 절제가 필요한 부분은 일상 생활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데,

나의 경우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미리 리스트 업 해 놓은 것 중에 심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 경중을 따져서 구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진실로 병적인 것과 미래를 위한 혹은 나 자신을 위한 재투자에 해당하는 것과

단순히 소모되고 소비되고 마는 것의 구분도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드러내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숨은 일인치,

그러나 그 부정적인 영향력은 궁극의 빙산이었던 '그것'을 찾아 자각하는 일,

그것도 꽤나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자기 절제가 필요한 것 중 대표적인 하나인 '미루기'를 이 책에서 배운 방법들을 통해

실천해 보았다. 설명해 보자.

 

리뷰를 쓰기 위해선 책을 통독해야 하는데, 문학작품이 아닌 404쪽짜리는 거의 처음이고,

일정도 처음 계획과 달라져서 난관에 부딪혔다. 

생각보다 마지막에서 진도를 뽑는 게 수월치 않았다.

그러다 마감 시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1. 환경을 바꾼다.

 

2. 자기 절제에 치명적인 '외로움'을 제거하고,

   동병상련의 동지들을 '임의의 친구'로 삼기 위해 도서관을 선택한다.

 

3. 침대(잠)라는 유혹, 인터넷이라는 유혹, 음식과 음악이라는 유혹을 제거하여

   집중력을 방해하는 모든 유혹으로부터 '사전 예방 조치'를 취한다.

 

4. 만족의 지연

   오늘 이 자리에서 책을 다 읽고 가야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다.

   배고파도 참아야지.. (눈물..)

 

5. 보상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면 뿌듯한 내가 될 수 있지!!

   숙제를 끝낸 행복감을 위해.. 참자... (눈물...)

 

5. 울랄라~~ 집에서 그리고 이동 중에 짬짬이 읽느라 열흘 넘게 걸리던 분량이

   불과 다섯 시간만에 끝났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것은 리뷰 미션을 기한 내에 완수하지 못했을 때의 수치심을 상상하자,

이것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었던 혹은 이런 저런 유혹에 질 수 있었던 내게 자기 통제력을

갖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결심 머그를 받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보상이 아니라,

미션 실패라는 훨씬 현실적인 두려움이 더 강력했다.

 

 

 

 

그렇다면 자기 절제가 정말 의지만의 문제일까?

 

저자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정말 엄청난 자료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정치, 심리학, 정신분석학, 경제학, 신경과학, 문학, 고전, 영화, TV 애니메이션 등등

각 분야의 다양한 예제들을 통해서 흥미롭게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진정 '절제'가 필요했던 건 자료에 대한 그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들이 눈을 핑핑 돌게 한다.

 

미국 작가인 만큼 미국의 정치, 경제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그 부분은 내겐 조금 지루했지만

그 외에 다양한 심리학 실험과 여러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서 인용된 내용들은 어찌나 적절한지 

곧잘 웃음을 빵빵 터뜨리게 만들었다.

특히 성과라면, 플라톤의 <향연>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급상승했다는 것!!!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고향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 뱃전에

자신을 묶어 달라 했다는 오디세우스는

이 책에서 자기 절제에 있어서 사전 예방 조치의 전범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재능은 쾌락에 빠져들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하는 능력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일종의 이상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 현재나 미래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 때마다, 혹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마다,

오디세우스의 자제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한 19세기 비평가는 약간의 과장을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오디세우스는 결코 자신의 욕구나 열정을

충족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p. 122)

 

그러니까 우리의 오디세우스는 자기 절제가 결코 부처님 가운데토막처럼 되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몸소 입증하고 계신 거다.

즐길 건 즐기고 삼갈 것은 삼갈 것, 진정 타이밍의 귀제라 아니할 수 없도다!!!!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자기 절제가 정말 의지만의 문제일까?

 

최근에는 뇌의 전두엽과 관련된 연구도 활발하고, 유전의 문제도 논의되고 있고,

뇌의 종양처럼 병적으로 뚜렷한 원인들이 자기 절제를 방해하고 분노나 충동성, 공격성을

촉발하여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고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역 이용하여 모든 잘못을 '무슨 무슨 증후군' 탓으로 돌리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도 통하는 세상이 되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법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혹은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기 절제에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이 당장 해결되지는 않는다.

몸무게를 고통 없이 금방 감량할 수 있다던가,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부자가 되는 획기적인

방법을 알게 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가진 문제와 그 해결의 단초를 명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처방전일 뿐이다.

처방전을 약으로 바꾸고, 시간에 맞춰 꾸준히 복용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의 몫이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것이 여럿 있었지만,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 딱 두 가지만 여기 소개하자면...

'습관' 그리고 '만족의 지연' 이라는 개념이었다.

 

요즘은 프로이트 덕분에 사람들이 아는 게 많아져서

자신의 부적절한 습관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쉽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그 습관을 차곡 차곡 쌓아온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햄릿의 대사를 인용한 이 부분이 내겐 매우 의미심장했다.

 

오늘 밤만 참아 보시지요.

그러면 다음번에는 참기가 좀 더 쉬워지고,

그다음에는 더더욱 수월해진답니다.

습관이란 타고난 천성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녔기에

악마를 굴복시키거나 몰아내 버리지요.

(-p.133)

 

 

만족의 지연,

이것은 지금 당장 욕구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보다 먼 미래의 만족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보류하는 것을 말한다.

흔한 예로, 몇 년 후의 내집 마련을 위해 지금 당장의 외식도, 새 옷도, 여행도, 자제하고

저축을 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얼마만한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문제에 상상력과 비전이 개입한다고 보았다.

상상력과 비전이 부재하는 사람은 즉각적인 보상과 단기적인 욕구의 충족에만 매달려

인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약이나 알콜, 도박 중독자들처럼..

 

만족을 지연하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또한 너무 지나친 지혜도 어리석다고 한다.

그래서 몽테뉴는 지혜에도 자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속된 말로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육신...  엥?

농담이고... 귀한 초콜릿을 선물 받아 안 먹고 아끼고 아끼다 결국 썩어서 버린 경험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 마퀴나스라는 한 칼럼니스트의 일화는 웃음이 빵 터지게 했다.

그는 한 달간 금주한 끝에 술집으로 달려가 이렇게 외쳤단다.

"나는 내 망할 의지력을 정복했소. 스카치 더블 한 잔 주시오!!"

 

하하.

 

만족의 지연, 에 관해서는 참 오만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나의 인생을 바꿀 만한 결정, 혹은 나를 극한의 갈등 상황에 이르게 한 선택에 있어서

결정적 키워드는 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면서 또한 대단히 합리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양날의 칼처럼...

그런 절박함은 내 심장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려주기에 

혼란 속에서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실수는 있었을지언정 후회는 부르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한 번 더 멈칫하게 된다.

다시 그런 선택의 상황에 서게 된다면 그땐 섣불리 저 카드를 빼들 수는 없을 것 같다.

 

하~ 뭐든 중용이 어렵구나. ;;;

 

 

워낙 풍성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공감 가는 주제에 관한 책이어서 말이 한없이 길어졌지만

결론적으로, 이리저리 춤추고 구르는 욕망과 유혹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 책은 우리가 처한 환경을 돌아보는 시발점으로 보면 좋겠다.

세상의 유혹에 무지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지 말고 적을 파악하자는 것!

 

이제 더 세세하고 날카롭고 흥미진진한 발견은 통찰력 있는 여러분 각자의 독서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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