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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9년 9월
평점 :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너무 열심히 탐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기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뛰어가다 그만 발가락 뼈에 금이 가고 말았다. 깁스를 하고 보니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참으로 갑갑하고 불편하다 싶었는데 책을 읽기에는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고 말았다. 하늘을 바라보면 맑고 청명해서 놀러 나가기에 제격이지만 나갈 수 없으니 그 청명함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고 허한 마음을 책으로 달래게 된 것이다. 허전함과 아쉬움을 채워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독서라 더 즐거웠고, 특히나 옛 향기 그득한 글들이라 정신과 영혼이 맑아졌던 것이다. 조선 유생들의 그 마음, 그 발자취 그대로 한 번 따라가 보련다.
조선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었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읽은 책을 이해하며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따라 가다 보면 조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흔히 말하듯 과거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열쇠이며,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에 이 책은 뜻 깊은 독서이다. 그들의 사상과 철학, 삶을 바쳐주는 관념들은 우리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또 그 손자로 전해져 왔을 것이며 비록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 한다 할지라도 생각의 저변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과 존재는 홀로 된 것이 아니요, 이렇게 과거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여러 전통들과 생각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에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하겠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무지한 본인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어졌다 하겠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내용과 장르가 존재했다. 조선 지식인들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공자 왈, 맹자 왈 유교책만 읽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더니 귀신 이야기, 호러 소설들이 이미 이 때 대 유행을 했다니 참 신선하다. 그 때도 어른들이 저속한 소설을 읽는 젊은이를 걱정했다니 지금과 너무 똑같아 헛웃음이 날 정도다.
그 때도 이랬구나 새롭게 안 사실 두 번째, 리플러들의 존재가 그것이다. 글을 읽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남기고 싶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구인가 보다. 창작하고 싶은 마음을 다른 작품에 대한 생각 몇 마디 적는 것으로라도 대신하고 싶은 거다. 책을 읽고 여백에 단 한 두 마디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 십분 이해할 것이다. 춘향의 애틋한 사랑에, 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월매의 모성에, 의리를 지킨 이몽룡의 사랑에 이러 저런 마음들을 남기고 싶었던 거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세 번째는 유머, 해학집이다. 조선이 사회 질서가 엄하고 경직되어 있었다는 선입견을 깨고 자유로운 인간의 웃음을 허용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의 말대로 조선은 유머를 인정하는 건강하고 유연한 사유의 사회였다.
아픈 가운데 지루하지 않게 도와준 책,
생각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책.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
이번 독서의 즐거움은 여러 가지였는데 조상들의 생활사를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역시나 율곡 선생은 정말 똑똑했고 천재였음을 알게 되었고 현재의 인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학문의 입문서인 천자문을 어려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왠지 모를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고, 의와 충, 효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했던 선비들의 삶에 숙연해졌고, 좋은 시 한 수 짓기 위해 여러 밤 고심했을 문인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학술적 자료와 역사적 증거들 나열에 다소 딱딱하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신빙성이 있고 신뢰가 가는 책이다. 조선 지식인들이 읽은 책이 뭐 그렇고 그렇겠지 선입견을 갖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보다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조선도 이랬구나 공감하며 신나고 즐거운 조선 여행을 떠나보길 바란다.